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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사람을 키우자, 기업을 키우자
  • 입력 : 2015. 09.25(금) 00:00

한가위다.

연중 가장 좋은 철에 맞이하는 전통의 명절. 그러나 '더도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라던 분위기는 갈수록 예같지 않아 보인다.

그럼에도 고향 나들이 교통정체는 아직 살아 있고 연휴중 가족, 친지와의 만남에서 자연스럽게 숙성되는 '추석 민심'은 정치권과 언론에 초미의 관심사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둘러싼 정치권의 이합집산이 이미 행동에 들어간 시점이어서 추석민심의 향배에 대한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클 것이다.

바로 그래서 필자는 제안한다. 올 추석 연휴, 적어도 호남에서는 정치 얘기를 잠시 쉬자고.

정치가 중요하지 않아서거나 정치를 주제로 한 토론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다. 호남 지역사회 저변에 자리잡은 '정치과잉'을 한번쯤 돌아보자는 뜻에서다.

지난 2년 '대한민국을 생각하는 호남미래포럼' 활동에 참여하면서 절감하는 것이 우리 고향의 정치에 대한 유난한 관심과 식지않은 열정이다.

한편으로 정치를 혐오하면서도 거의 모든 것을 정치적으로 이해하려 들고 참여를 희망하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로 삼으려는 모순된 태도는 한국사회 전반의 것이긴 하지만 호남에서 특히 더하다는 생각이다.

오랜 기간 중앙 권력으로 부터 소외되고 핍박 당해 온 박탈감과 불안감, 보상심리 같은 역사적, 사회적 배경을 이해하더라도 이쯤에서 한번은 스스로를 냉정하게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단도직입으로 자문해보자. 정치가 호남의 절박한 문제를 해결하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 국회의원을 싹 바꾸면 호남의 상황이 과연 달라질까? 대통령을 만들어 내면 또 어떨까? 만들어 낼 수는 있겠는가?

그러자면 어떤 전략을 선택해야 할까? 특정 정당에 표를 몰아주던 투표행태를 바꿀 수 있을까? 새누리당 후보에게까지 표를 나눠주는 여유와 용기가 생겼는가? 그렇지 않다면 어떤 선택이 있는가?

"정치가 밥 먹여주나"는 속언부터 "빨리 망하려면 정치를 하라" 거나 "정치는 허업"이라는 자탄의 술회에 이르기까지 정치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실은 정치에 대한 기대의 반증이다.

그러나 개인적으로 우수한 사람도 일단 정치권에 들어가면 정쟁 구도의 일원이 되어 제 역할을 못하는 상황을 국민들은 반세기 넘게 지켜보았고 정당이 골백번 혁신을 외쳐도 달라지는게 없다는 것도 상식이다.

바로 1인1표 대의민주주의 한계다. 정치가 변화를 이끌고 싶어도 유권자의 수준을 넘어서는 것은 불가능하다. 표를 의식하지 않는 정치인은 존재할 수가 없고 유권자의 이율배반만큼 정치도 흔들린다.

정치인은 표를 위해서라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해결을 방해할 수도 있다. 심하게는 없던 문제를 만들어 낼 수도 있다.

정도의 차이가 있어도 본질은 같다. 트럼프, 아베, 치프라스의 예에서 보듯 미국, 일본, 유럽의 정치판 상황이 닮아가는 이유다. 한국이라고 다르겠는가.

추석 연휴에 정치 얘기를 쉬자는 얘기는 현실에서 결코 충족될 수 없는 정치에 대한 과잉 기대와 몰입에서 호남부터 먼저 벗어나자는 제안이다.

최근 중국의 IT사업가 마윈이 21세기 바람직한 경제체제는 자유주의 시장경제가 아니라 빅데이타 처리기술에 기반한 계획경제라고 대담하게 주장하고 나선 것같은 맥락과 수준에서 대의제에 대한 근본적인 성찰이 필요 한 시점이지만 호남 입장에서 눈앞의 절실한 과제는 산업화 시기에 벌어진 경제적 낙후를 가능한 짧은 시간에 극복하는 일이다. '21세기 청해진 건설'을 호남의 비젼으로 강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지역사회의 분위기를 정치에서 경제와 문화로 크게 바꾸는 전환점이 필요하다고 보는 것이다.

지구촌은 '제3의 산업혁명'으로 일컫는 문명의 대전환이 진행중이다. 60-80 년대 산업화,민주화 시기의 논리와 행태는 말할 것도 없고 90년대 이후 정보화 시기의 가치관과 전략조차 이제는 구식이다.

미국, 일본, 중국, EU가 저마다 전혀 새로운 차원의 경제, 산업 체제를 모색하는, 모든 것이 불확실한 무한 경쟁의 소용돌이 속에 바로 호남의 기회가 있다. 대담하게 발상하고 과감하게 도전해야 한다.

KTX 개통, 나주 혁신도시 16개 기관 이전, 유니버시아드 개최, 아시아 문화전당 개관 등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2015년은 호남이 새출발을 할 절호의 기회다.

그 첫걸음이 국내와 정치와 과거로부터 벗어나 경제로, 문화로, 세계로, 미래로 방향을 선회하는 일이고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사람이 있다.

호남미래포럼 결성의 배경, 활동의 초점은 그래서 "사람을 키우자, 기업을 키우자"에 모아진다.

9월초 포럼은 광주, 전남 두 분 교육감을 초청해 현황 설명을 듣고 자류토론 형식으로 의견을 교환하는 기회를 가졌다. 다행스럽게도 두 분 교육감이 모두 사명감과 능력을 갖춘 분으로 개성 있는 정책을 통해 성과를 거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장만채 전남 교육감은 "뜻깊은 간담회였고 고향 선배님들과 좀더 깊은 논의를 할 기회를 다시 가졌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전해와 그 열의와 진지함에 많은 회원들이 기대를 갖게 됐다.

20세기에 정치인 김대중을 키워 한국의 민주화를 선도한 호남 아닌가. 이제 주커버그, 손정의, 마윈 같은 세계를 주도할만한 기업인, 문화예술인을 키워 21세기 통일 대한민국의 중심에 설 차례라고 본다.

기업과 예술의 세계는 정치와는 달리 다수결이 아니다. 사람을 길러 기업을 일으키고 정치까지도 바꿀 수 있다면 호남의 열망은 성취되는 것 아닌가.

자칫 견해가 갈려 얼굴을 붉히기 쉬운 실속없는 정치얘기를 그만 참고 2세 교육 바로 시키는 얘기, 창업하는 얘기로 의욕을 충전하는 한가위가 되기를 소망한다.

문병호 호남미래포럼 공동운영위원장ㆍ 전 중앙일보시사미디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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