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리는 일… 희미해져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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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다리는 일… 희미해져 가고 있다
기다린다는 것 와시다 기요카즈 저
김경원 옮김| 불광출판사 | 1만3000원
  • 입력 : 2016. 01.22(금) 00:00
"기다리지 않아도 좋은 사회가 됐다. 기다릴 수 없는 사회가 됐다."

일본 간사이대학 문학부 와시다 기요카즈 교수가 신간 '기다린다는 것'의 머리글을 통해 독자들에게 가장 먼저 한 말이다.

그렇다. 요즘은 기다리는 일이 지나치게 어려워졌다. 약속 시간에 만나기로 한 상대가 당장 눈 앞에 보이지 않으면 잠시 기다려 보기보단 곧장 휴대전화 버튼을 누른다. 메시지를 보내거나 전화를 건다.

버스정류장에서 버스를 하염없이 기다릴 필요도 없다. 스마트폰 버스 도착 알림 앱(APP)을 이용해 원하는 버스정류장에 목적지까지 가는 버스가 몇 분 후에 도착하는 지까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기다릴 필요 없이 시간에 맞춰 나가서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된다. 회사는 최단 시간에 성과를 내기 위해 하나부터 열까지 계획을 수립하고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에서 포기도 빨라져서 도중에 아니다 싶으면 지체 없이 방향을 틀어 버린다.

조금씩 '기다리는 일'이 우리 시야에서 사라지고 있다. 이 책은 이렇듯 희미해져 가는 '기다림'의 행위를 철학적 관점에서 고찰했다.

저자는 요양시설에서 치매 노인을 보살피는 과정, 문학 작품에서 묘사된 기다림의 양상을 두루 살핌으로써 기다림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선다. 언어적 정의를 넘어 실제 삶에서 기다림이 어떤 모습으로 현상하고, 그것이 우리 삶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지 밝힌다.

이 책의 첫 장은 휴대전화 이야기로 시작한다. 저자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휴대전화를 소지하게 되면서 기다리는 일이 힘들어졌다고 말한다. 기다릴 수 없는 상태가 되기 전에 손가락이 먼저 움직인다는 것. 하지만 동시에 우리는 상대를 마음에 새기고 시간의 흐름 속에서 때가 차기를 기다리는 일, 무언가를 향해 자신을 부단히 열어두는 자세마저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보살핌의 현장에서는 기다리는 일은 또 다르다. 기다리는 사람과 기다리게 하는 사람의 관계가 친구나 가족처럼 통상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치매 노인의 간호에서는 더욱 그러한데, 간호사들의 보살핌 수단 중 하나가 '패칭 케어(Patching Care)'다. 일상적인 행위들이 조각처럼 짜여서 알게 모르게 보살핌이 이뤄지도록 하는 방식이다. 재촉하거나 쫓아가는 일 없이 자연스럽게 분위기가 잡힐 때까지 기다린다는 점이 일반적인 기다림과 조금 다르다.

저자는 말한다.

"기다림에는 우연의 작용을 기대하는 일이 포함돼 있다. 그것을 먼저 가둬서는 안된다. 기다림이 미래에 찾아올 지도 모를 무언가를 기다리는 일이라면, 우연처럼 무언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도록 항시 내 안에 공간을 비워둬야 한다."

주정화 기자 jhjoo@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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