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칠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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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황칠의 도전
  • 입력 : 2016. 02.19(금) 00:00

예로부터 황칠(黃漆)은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대륙을 차지한 중국의 황제들은 황칠 용상에 앉아 천하를 다스렸고, 광대한 세계 제국을 건설했던 칭기즈칸도 원정길마다 황칠 천막(오르도)과 황칠 갑옷을 챙겼다고 한다. 마르코폴로는 그의 저서 동방견문록에서 "테무진의 갑옷과 천막은 황금색으로 빛나는데 불화살도 뚫지 못하는 황칠이라는 비기(秘技)를 사용했기 때문이다."라고 썼다. 당나라때 발간된 통전이나 북송의 손목이 지은 계림유사 등 수많은 역사서에도 황칠은 '신비의 나무'로 기록돼 있다.

80년대 초반 해남으로 귀농한 한 농부가 해안가 야산에서 대규모 황칠나무 자생지를 발견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황칠은 문헌으로만 전승되던 잊혀진 나무였다. 한학자인 아버지의 유고를 정리하다 우연히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에서 '황칠' 이라는 시를 발견한 그는 10여 년을 틈틈이 서남해안 섬과 해안을 샅샅이 훑었다. 황칠나무가 어디엔가 자라고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성이면 감천이랄까. 마침내 그는 해남 두륜산과 완도 상황봉, 보길도, 진도 첨찰산 등에서 대규모 황칠나무 자생지를 확인했다. 종자를 채취하고 삽목을 통해 번식에도 성공했다.

두릅나무과에 속하는 황칠은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만 자생하는 우리 고유의 종이다. 황금빛 비색이 탁월한 데다 내열ㆍ내구성도 강해 예로부터 특수 도료로 사용돼 왔다. 체내 독성물질을 배출시키고 면역력을 회복시키는 효능도 뛰어나다. 고대 중국에서는 황실에서만 사용되는 최고의 약재였다고 한다. 진시황이 찾던 불로초가 황칠나무였다는 얘기도 전해진다. 인삼처럼 사포닌이 풍부해 학명도 덴드로 파낙스(Dendro-panax)다. '나무 인삼'이라는 뜻이다.

전남도 산림자원연구소가 최근 황칠나무를 활용한 '황칠 김치'를 내놨다. 황칠나무의 기능성 성분을 김치에 첨가해 식감과 맛을 향상시켰다는게 전남도의 설명이다. 황칠은 오래전부터 항암효과와 항산화 기능이 뛰어나 신약이나 기능성 음료 등으로 활용돼 왔다. 도료나 염료는 물론, 전자파를 100% 흡수해 스텔스의 원료로도 주목받고 있다. 황칠을 활용한 비누나 천연 건강식품도 인기가 많다. 수천 년을 이어온 우리의 문화이면서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가진 황칠의 도전이 더없이 반갑다.

이용환 논설위원 hwany@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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