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ㆍ18 농성' 본질은 '불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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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칼럼
'5ㆍ18 농성' 본질은 '불신'이다
  • 입력 : 2016. 05.10(화) 00:00


1980년대 학창시절을 보낸 터라 36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도 5ㆍ18구(舊) 묘역이나 유영보관소를 찾으면 '그날의 참상'이 떠올라 숙연해진다. 그런데 5ㆍ18을 직ㆍ간접적으로 경험하지 않은 세대가 그 장소를 찾는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역사적 참극에 대한 박제화된 이미지를 무표정하게 받아들이지는 않을까. 그래서 5ㆍ18 정신을 보편적인 인류의 가치로 승화시키고 예술로 발현하기 위해 건립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이하 ACC)의 역할이 중요하다. 예술로 표현되는 '5ㆍ18 정신은 자연스레 그들에게 스며들 수 있기 때문이다.

ACC의 모태는 5ㆍ18정신이다. 건축물 배치에서도 읽혀진다. ACC 민주평화 교류원으로 이름을 바꾼 옛 전남도청 뒤로 지하 4층의 공간에 문화정보원, 문화창조원, 예술극장, 어린이문화원이 들어서 있다. 5ㆍ18 정신을 ACC콘텐츠의 원류로 삼겠다는 상징적 배치라 할 수 있다.

안타까운 점은 ACC와 5ㆍ18단체가 매번 충돌하고 있다는 것이다. ACC건립 당시 아시아문화전당 추진단과 광주 5ㆍ18단체들은 1980년 5월 당시 시민군의 마지막 항전 장소였던 옛 전남도청 별관 존치 문제로 첨예하게 대립했다. 그로 인해 ACC 완공이 상당기간 늦춰졌다. 최근엔 '오월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오사모)' 회원들이 옛 전남도청 앞 5ㆍ18민주광장에서 계엄군이 발포한 총탄 흔적과 본관 1층 상황실 등의 복원을 주장하며 한달 동안 천막농성을 했다. 농성은 접었지만 대립은 지속될 전망이다.

ACC와 5ㆍ18정신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데, 양측이 갈등을 빚으면서 '피로감'도 누적되고 있다. ACC측은 올 하반기 민주평화 교류원 문을 열겠다는 입장이지만 5ㆍ18단체와의 갈등이 지속되면 개관 시기는 더 늦춰질 수 밖에 없다. ACC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는 민주평화교류원이 지금처럼 문을 닫고 있으면 ACC는 뿌리 얕은 나무와 다를 바 없다.

해결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파도 아래 흐르는 조류를 들여다봐야 한다. 5ㆍ18단체의 항의와 농성이 파도라면, 그 아래엔 5ㆍ18 정신을 폄훼하고 있는 세력, 그 세력의 발호를 방조하고 있는 정부와 정권에 대한 깊은 '불신의 조류'가 흐르고 있다. 무엇보다 노골적인 5ㆍ18 폄훼가 횡행하고 있지만 정부가 엄단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는 데 대한 불만이 자리하고 있다. 물론 5ㆍ18을 폄훼한 일베(일간 베스트) 회원 일부는 형사처벌을 받았고 5ㆍ18을 북한군이 위장해 일으킨 '폭동'이라고 주장해 온 극우논객 지만원은 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그러나 그들에 대한 사법처리는 명예훼손에 대한 단순 고소ㆍ고발 사건 수준을 넘지 못했다. 만약 정부가 나서 5ㆍ18 정신을 훼손한 세력을 엄단하겠다고 공표했다면 5ㆍ18을 부정하고 폄훼하려는 시도는 중단될 것이다. 그럼에도 5ㆍ18 정신을 공공연하게 왜곡하고 있는 일부 매체에 정부 광고가 실렸다니 할말이 없다.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논란도 마찬가지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5ㆍ18이 정부 기념일로 제정된 1997년부터 이명박 정부 첫해인 2008년까지 공식 기념식에서 참석자 전원이 함께 부르는 제창 방식으로 불렸다. 그러나 2009년부터 제창이 사라졌다. 공식 식순에서도 빠져 식전공연으로 대체됐다. 이후 5ㆍ18단체와 정치권이 줄기차게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 요구를 하고 있지만 정부는 아예 외면하고 있다. 그 틈을 비집고 '김대령'이란 필명의 재미사학자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북한 김일성 주석을 찬양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5ㆍ18은 사회주의를 실현하려는 음모에서 시작됐다는 주장을 담은 책을 내기도 했다. 억장이 무너질 일이다. 그 때문에 작은 자극에도 5ㆍ18 관계자들 가슴속에 쌓여 있는 '불신의 조류'가 꿈틀거리고 저항과 분노의 파도는 더욱 거세게 일렁이게 되는 것이다.

올해도 5ㆍ18단체와 야권이 나서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과 5ㆍ18 행사 공식 기념곡 지정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4ㆍ13 총선이후 정치권 기류가 변하면서 보수 진영 일각에서도 '임을 위한 행진곡' 제창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이번엔 정부가 긍정적 결정을 할 것이란 관측이 있다. 제발 그랬으면 좋겠다. 나아가 5ㆍ18 정신을 문화로 담아내는 ACC에도 이런 주문을 했으면 한다.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이제 5ㆍ18정신을 마음껏, 거리낌없이 예술로 표현해달라고…. 그럴 때 '불신의 조류'는 잦아들 것이다.


김기봉 문화체육부장 gbkim@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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