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서수남과 하청일이 친구들이 석우장, 천정필과 함께 '아리랑 브러더스'를 결성, 12곡의 번안가요집을 프린스 레코드에서 출반했다.
대표곡은 '동물농장'이었다. '킹스턴 트리오'의 의상 컨셉인 청바지와 굵은 줄무늬 남방을 즐겨 입었고, 'Brothers Four'의 공연 스타일 따라하기를 즐겼다.
1965년 고(故) 김상국이 후배였던 고 박상규와 장우를 포섭, '송아지 코메츠'트리오를 결성하고 지방순회 쇼단에서 활동하며 '수양버드나무 밑'과 불경 '천수경' 두곡의 취입곡을 남겼다.
1967년 박상규와 장우가 '코코 브라더스'를 결성하고 얼마 후인 1968년 2월 송창식과 윤형주의 '트윈 폴리오'가 탄생한다. 그들의 등장 후 통기타의 열풍은 가히 메가톤급 인기를 누리게 된다.
원래는 무교동의 쎄시봉에서 결성된 '트리오 쎄시봉'이 시작점이었으나 멤버였던 이익균의 군 입대로 듀엣으로 재편하게 되고 TBC라디오에 첫 출연한다.
트윈 폴리오는 번안가요 '하얀 손수건'과 '웨딩 케익'을 부른다. 두 곡은 엄청난 히트를 치며 대학가와 포크계의 통기타 스탠다드 넘버가 되기도 한다.
1968년 한대수의 첫 무대 등장은 그야말로 가관이었다. 구겨진 부츠, 장발, 기인같은 풍모로 등장했다. 언더그라운드의 전설이 된 한국최초의 '히피'이자 '싱어송 라이터'로 불렸다. 한대수는 1971년 김민기 1집 '바람과 나', 1974년 양희은 3집 '행복의 나라로'의 작곡자로 대중 속에 파고들기 시작했다.
그러나 얼마 후 한대수에게 시련이 다가왔다.
김민기와 신중현처럼 그도 유신정권의 '마녀사냥감'으로 사지가 절단 당했다고 해야 할까? 그의 2집 '고무신'의 마스터 테잎이 강제 회수, 파괴됐다. 자신의 분신이었던 1, 2집의 '능지처참'은 한대수의 정신적 사망을 의미하기도 했다.
그 후 유신 군사정권하의 숨막힘은 그를 다시 미국으로 내몰게 된다. 사실상 음악적 도피가 된 셈이었다. '바람과 나', '행복의 나라로'는 언제 들어도 신비스러움이 묻어있고 신선한 명곡으로 우리들 마음 속에 남아있다.
●통기타 봇물이 터지다-전성시대 도래(1969년)
1969년. 통기타 가수 서유석(전 핸드볼 국가대표 골키퍼)의 등장 또한 놀라움 그 자체였다.
특유의 허스키하고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1970년에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의 테마 '아름다운 사람', '철날때도 됐지', '사모하는 마음', '파란 많은 세상' 등을 발표, 국내 포크계에 또 하나의 신선함을 던져준다.
명동 YMCA의 '청개구리'로 불리며 TBC의 명 PD겸 MC였던 이백천의 뒷바라지로 서유석, 김민기, 양희은, DJ 임문일, 투 코리안즈의 김도향과 손창철 등이 통기타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 때가 이 즈음이다. (이 무렵 국소남과 이장순은 월남전에 참전 중이었다.)
1970년. 이필원이 숙명여대 박인희와 혼성듀엣 '뜨와에므와'를 결성, '약속', '썸머 와인' 등을 히트시키고 그 여파로 '사랑해'를 부른 '라나에 로스포' 한민과 은희의 탄생에 결정적 역할을 하게 된다.
이후 숙이와 용이, 블루진, 원플러스원, 바블 껌 등이 줄을 이어 탄생하게 되고 1973년 DJ 이종환의 쉘브르가 종로2가에 들어서며 통기타의 메카로 자리를 잡게 된다. 한마디로 '통기타의 전성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누가 뭐라해도 국내 통기타의 전성시대를 1970년대라고 말을 하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우후죽순이라 해야 할까. 통기타의 파도가 너무나도 거세게 급물살을 타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통기타, 대학가에 활화산처럼 유행(1970년)
앞서 이야기했던 것 처럼 기타는 원래 서양악기다. 미국에서 반전시위 등이 거세게 일었던 1960년대의 미국 반전가수 '밥 딜런', '존 바에르'의 거센 통기타 바람이 태평양을 건너 암울하고 서슬퍼런 군사 독재하의 한국에도 그 바람이 거세게 몰아친다.
청년문화가 태동하고 대학생이면 통기타곡 몇곡 정도를 치지 못하면 대학생도 아닌 그런 시절이었다.
1970년대 초가 바로 그런 시대였다. 그 통기타 문화가 대학가나 청년들의 일상에 파고들어 꿈틀대기 시작하고, '아침이슬'이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등의 연주는 포크기타의 교과서적 표본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때 이런 노래가 있었어!
1970년대 통기타 가수와 히트곡을 살펴보자. 70년대에 히트했던 노래들로 58명(듀엣, 솔로)의 포크가수가 부른 108곡을 골라보았다.
양희은 아침이슬
김민기 혼혈아, 아침이슬, 아하누가 그렇게, 친구, 바람과 나
투 코리언즈(김도향, 손창철) 벽오동
쉐그린(이태원, 전언수) 동물농장, 얼간이의 짝사랑
은희 꽃반지 끼고
최안순 산까치야
김세환 잊지못할 사랑(Don't forget to remember)
어니언스(임창제, 이수영) 편지, 작은새, 사랑의 진실
김정호 이름 모를 소녀, 하얀나비
송창식 꽃보다 귀한 여인, 상아의 노래
윤형주 라라라, 두개의 작은별, 우리들의 이야기
이필원 추억, 소녀, 고독
박인희 얼굴, 목마와 숙녀(Talk song), 그리운 사람끼리, 모닥불, 봄이 오는 길
이연실 새색시 시집가네, 비둘기 집, 목로주점
홍민 고별, 망향, 석별
이용복 마음은 집시, 1943.3.4 일생, 달맞이꽃, 그 얼굴에 햇살을
투에이스 금과은(오승근, 임용제) 사랑을 미워해, 처녀 뱃사공
바블껌 아빠는 엄마만 좋아해, 짝사랑
석찬 하얀천사의 노래, 황혼
한대수 물좀주소, 행복의 나라로
이장희 그애와 나랑은, 그건 너
양병집 타복네,역
4월과5월(백순진, 김태풍) 화, 옛사람, 바다의 여인
둘다섯(오세복, 이두진) 긴머리 소녀, 밤배
블루진(임용제, 김명자) 서글픈 사랑
에보니스(최기원, 윤영민) 영원히 사랑하리
산이슬(박경애, 주정이) 밤비야, 이사가던 날
서수남, 하청일 산이 더 좋아, 팔도유람
이정선 섬소년
이수만 행복, 모든 것 끝난 뒤
김만수 푸른시절, 영아
권태수 작연 연인들(with 김세화)
최백호 내마음 갈 곳을 잃어, 그쟈
전영 어디쯤 가고 있을까
장은아 고귀한선물, 이거리를 생각하세요
논두렁, 밭두렁(김은광, 윤설희) 영상, 다락방
채은옥 빗물, 너
이종용 너, 바보처럼 살았군요, 겨울아이
이영식 겨울이야기(with김세화)
버들피리(이연원, 박승순) 님 찾아가리, 눈이 큰 아이
김의철 저 하늘의 구름따라
윤연선 고아, 얼굴
윤정하 찬비, 나비하나
장재남 빈 의자
이동원 사랑의 꽃
아도니스 정
김인순 여고 졸업반
박미성 내 곁에만
세모와 네모 안개비
조동진 행복한 사람, 제비꽃
하남석 바람에 실려, 밤에 떠난 여인
김홍경 눈이 큰 아이
박용강 쇼윈도속의 그녀
정태준 시인의 마을, 촛불
박은옥 회상, 윙윙윙
노사연 돌고돌아 가는길
김태곤 송학사
김홍철 요델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