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엄중한 시대야말로 진정한 '씻김'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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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이 엄중한 시대야말로 진정한 '씻김' 필요
이윤선의 남도인문학-씻김굿
  • 입력 : 2016. 11.18(금) 00:00
망자가 저승으로 가는 길을 닦아주면 좋은 세상으로 갈 것이라고 믿고 살아있는 자가 깨끗이 길을 닦아주는 의식인 '길닦음'의 한 모습. 진도군 제공
이론은 '현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고안된 개념들의 유기적 그물(網)'이라고 정의된다. 현장 혹은 현실을 설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간 남도를 주목하면서 이론적인 틀을 강구해온 이유다. 일종의 목마름이었다. 폴 엘뤼아르는 '타는 목마름으로' 자유를 노래했다. 나는 그 '타는 목마름으로' 남도를 노래해보고자 했다. 목마름에 대한 공명(共鳴)이 있었을까? 글쎄 잘 모르겠다. 오늘 다시 남도의 씻김굿에 대해 주목한다. 이 시대야말로 진정한 씻김이 필요한 시대라 생각하는 까닭에서다.


씻김굿이란 무엇인가?

씻김굿의 기능이 무엇인가? '죽은 이의 영혼을 깨끗이 씻어주어 이승에서 맺힌 원한을 풀고 극락왕생하기를 비는 굿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정의되어 왔다. 죽은 자는 모두 이승에서 원한이 맺혔다는 뜻으로 읽힌다. 과연 그러한가? 표면적으로는 현실부정의 논리 같다. 여기에는 이승의 삶이 더렵혀졌다는 혹은 더럽다는 전제가 작용한다. 대개 이를 생시의 죄를 씻는 것, 곧 부정을 없애는 것으로 풀이한다. 이승의 삶이 고달팠으니 저승에 가서는 좋은 곳으로 가라는 사설들이 이를 대변한다. 그렇다면 씻김굿을 받은 망자들은 어떤 저승으로 갔으며 또 어떤 복락을 누리고 있을까? 이승을 부정적으로만 해석한다면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민중들의 언설과는 어떤 심리적 괴리가 있는 것인가?


남도의 씻김굿, '영돈마리'의 절차들

남도 씻김굿은 대개 열두거리가 있다고들 한다. 그 중 전형을 가지고 있는 거리는 아무래도 '이슬털이'다. 이 씻기는 대목을 전형으로 삼기 때문에 전체 굿의 이름을 씻김굿으로 호명하는 것이니 말이다. 거기에는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이 있다. '이슬털이'의 내면과 외면을 말해야 할 이유다. 씻김굿의 여러 절차가 끝나고 '이슬털이' 순서가 되면 고인을 상징하는 '영돈마리'를 한다. '영돈'은 '영혼(靈魂)을 넣은 돗자리'라는 뜻이다. 망자의 옷을 돗자리에 말아 세운다. 돗자리 위에는 누룩을 놓는다. 누룩 위에는 또아리(똬리)를 놓는다. 그 위에는 복개 혹은 주발(뚜껑이 있는 밥그릇)에 넋(한지로 오린 신체)을 오려 넣어 올린다. 맨 꼭대기에는 솥뚜껑을 놓는다. 솥뚜껑 아래는 이어서 연행할 '길닦음'에 쓸 '질베(길을 상징하는 베)'의 끝을 연결해둔다. 망자가 미혼이었을 경우 솥뚜껑은 바가지로 대체되기도 한다. 이것이 망자를 상징한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하지만 왜 이런 형식을 갖게 되었을까. 연행에는 맑은물, 향물, 쑥물이 사용된다. 맑은물은 청계수요 향물은 향불과 같은 이치다. 쑥물 또한 기능적, 신화적으로 설명될 수 있다. 이 세 가지의 물을 각각 작은 그릇에 담고 솔가지 혹은 빗자루로 찍어서 씻는다. 찍어낸 물들로 망자를 상징하는 '영돈'을 쓸어내린다. '질베'로는 세 가지의 물 즉 삼합의 물기들을 닦아낸다. 신칼로는 연신 솥뚜껑을 두드리며 무가를 연창한다. 여기서 솔가지나 빗자루는 '영돈'을 씻는 역할을 한다. 무가가 진행되는 동안 '영돈'은 발끝에서 머리끝까지 깨끗하게 씻겨 진다.


'영돈마리'에 사용하는 누룩의 비밀

'영돈마리'를 하는 문화권에서는 모두 누룩을 사용한다. 남도의 씻김굿만이 아니다. 지역에 따라 '온누룩'을 사용하는가 '누룩가루'를 사용하는가가 다를 뿐이다. 하고많은 것들 중에 왜 누룩을 사용했을까? 망자의 싱징물이라면 누룩 외에도 더 근사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누룩의 효능이나 기능에 대해서는 구구절절 토를 달 필요가 없을 것이다. 누룩효모는 발효의 대명사다. 전 세계의 발효문화 중에서 동아시아 특히 우리나라의 것들이 주목된다. 심지어는 간장, 된장을 담을 때도 전통적으로 누룩을 사용했던 적이 있다. 물론 일부 농가는 지금도 그렇게 한다. 기본적으로 누룩은 술을 만든다. 술은 마시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신을 경배하는데 사용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집안에서 특히 종가집의 며느리가 감당해야 할 가장 큰 일 중의 하나가 술을 만드는 일이었다. 연간 줄줄이 제사를 지내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제사가 중요하다. 이슬털이에서 누룩을 사용하는 것은 단순히 망자의 신체 이미지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사용했다기보다는 이 술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항대립의 경계를 넘는 기술이 그 비밀이다.


경계넘기와 변칙범주의 증류주

이승에서 저승으로 넘어가는 곧 경계 넘기에서 술이 왜 필요할까? 이슬털이가 경계를 넘는 방식이라면 여기서의 술은 경계를 넘기 위해 필요한 장치이거나 기술을 의미할 것이다. 경계를 넘기 위해 발효라는 장치가 필요하다는 뜻인가? 여기서 발효(醱酵)는 무엇인가? 여러 가지 뜻들이 있지만 기본적으로는, '미생물이 자신의 효소로 유기물을 분해 또는 변화시켜 특유한 최종산물을 만들어내는 현상'을 말한다. 우리말로 삭힌다, 띄운다, 익힌다 등의 용어로 설명된다. 하지만 발효 자체에 의미가 있다면 간장을 만들어 내는 메주를 사용했을 수도 있다. 망자의 신체 이미지를 나타내는 것이 목적이라면 오히려 얼굴 형태의 메주가 적당할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발효 자체보다는 '술'이라는 키워드가 더 중요했기 때문이다. 여기서는 지면일 짧으니 소략할 수밖에 없다. 술은 신(조상)의 은유라는 점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음복의 예에서 이를 알 수 있다. 제사상에 올랐던 술은 조상의 단계에 진입한 것이고 이를 후손들이 나누어 마신다. 왜? 조상과 합일하기 위해서다. 마치 교회에서 성찬식을 할 때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셔 신성을 획득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빵과 포도주가 예수의 메타포인 것처럼. 이'거듭남'의 의미는 다른 지면을 통해 설명하겠다. 따라서 '이슬털이' 의례에서 술 만드는 행위를 모사하는 것은 망자가 조상(신)의 단계에 진입할 수 있는 권위를 획득하는 과정에 다름 아니다. 즉 변칙범주의 경계넘기를 이행하고 있는 것이다.



남도인문학 TIP

이슬털이와 레비스트로스의 이항대립 이론

이슬털이는 비로소 '길닦음'으로 갈 수 있는 핵심적인 의례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는 일종의 이항대립이며 '변칙범주'다. 죽음을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상징으로 만들지 않으면 다음 과정으로 넘어갈 수 없는, 레비스트로스의 언술대로라면 삶과 죽음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범주에 속한다. 이슬털이에 사용되는 누룩이 이 이항대립 즉 이슬털이의 이전과 이후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주목한다. 이를 위해 레비스토르스의 변칙범주 즉 이항대립 이론을 인용한다. 그는 신화의 이항대립구조를 설명하면서 위험적이고 모순적인 이항대립적인 관계를 잠정적으로 해소시켜주는 존재가 신화, 나아가 영웅들이라고 말한다. 기호나 상징은 대립되는 다른 기호나 상징과 구분될 때 의미를 획득한다는 것. 기호의 의미는 고립되어서는 의미를 가지지 못하고 관계를 맺어야만 의미를 획득한다. 그 관계는 일차적으로는 이항대립으로 맺어진다. 말/무언, 소음/침묵, 색/무색, 색채도가 다른 색들의 대립 등이 이에 해당한다. 여기서 이항대립(binary opposition)이란 두 개의 관련된 범주(category)들로 이루어진 하나의 체계가 형성된다.

'영돈마리'와 증류주의 발효

홍주를 예로 설명한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지만 소주나 고량주는 복발효 증류주에 해당된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은 쌀과 누룩으로 빚어서 익힌 술이나 술지게미를 솥에 넣고 그 위에 시루를 놓은 다음 솥뚜껑을 뒤집어 덮는다. 뒤집은 솥뚜껑의 손잡이 밑에는 주발을 놓아둔다. 솥에 불을 때면 증발된 알콜의 증기는 솥뚜껑에 미리 부어 둔 냉각수에 의해 응축된 다음 솥뚜껑의 경사를 따라 손잡이를 타고 뚝뚝 떨어져 주발에 고이게 된다. 이보다 조금 발전한 것이 고리(古里)라는 증류장치를 만들어 쓰는 경우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방식은 후자의 것이다. 모두 이슬처럼 방울이 맺혀 있는 것을 한 방울씩 받아내는 방식이다. 곧 이슬을 털어내는 방식이다. 이슬털이에서 반드시 누룩을 사용하는 이유나 굳이 이슬털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는 이유가 바로 술 만들기(삭히기, 익히기)와 관련이 있다는 증거다. 굳이 표현하자면 솥뚜껑은 소줏고리의 뚜껑이며 그 안에 망자의 넋이 발효 되는 과정이랄 수 있다.

남도민속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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