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도 엄마가 있었다면 물어보면 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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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내게도 엄마가 있었다면 물어보면 될텐데…"
아동양육시설 퇴소생 현실
집구하는 법ㆍ공과금 수납 몰라
주민센터에서도 헤매기 일수
친구에게도 시설 출신 말못해
고아 티날까 남 시선 기피도
월 20만원 지원 턱없이 부족
주말엔 아르바이트만 2개씩
세상살이 알려줄 '지원팀'절실
  • 입력 : 2017. 03.17(금) 00:00
아동양육시설 아이들은 만18세가 되면 시설을 떠나 '자립'에 나서야한다. 하지만 준비 없이 내몰린 이들에게 세상은 낯설기만 하다. 당장 지낼 곳을 구하는 것부터 문제다. 한창 꾸밀 나이에 '옷 한 벌' 사는 것도 수차례 고민하고, 공과금 내는 방법을 마땅히 물어볼 데가 없어 속으로 울음을 삼켜야 한다.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생존이 위협받는 삶. 이들 퇴소생들의 '서러운 홀로서기'를 직접 들어봤다.



●'시설출신'이란 사회 편견에 눈물

지난 2013년 광주지역 한 아동양육시설을 퇴소한 민채원(24ㆍ여ㆍ가명)씨는 그나마 운이 좋은 케이스였다. 민씨는 퇴소와 함께 '자립지원관'에 들어가 거처 문제를 해결했다. 퇴소생들이 만25세까지 머물 수 있는 공간으로 광주에는 단 한 곳이 존재한다. 정원이 30명에 불과해 경쟁이 높다. 대개 시설에서 모범적으로 생활했던 아동들만 받는다.

시설보다는 낫지만 외박과 통금 제한 등 엄격한 규율이 존재한다. 대학생인 민씨에겐 불편이 따랐지만 당장 자립이 힘든 상황에서 가릴 처지가 아니었다. 민씨는 "시설을 나오면 더 자유로워질거라 생각했지만 희망사항일 뿐이었다"며 "함께 시설을 나온 동기들도 다들 차라리 시설에 머물 때가 마음이 편했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부모 없이 스스로 앞가림을 해야하는 '세상살이'는 녹록지 않았다. 대학 등록금을 장학금으로 메꾸기 위해 눈코 뜰새 없이 공부를 해야했다. 정부로부터 지급되는 월 20만 원의 생활비로는 각종 교재와 자격증 시험비, 생필품을 감당하기에도 빠듯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는 데도 돈이 필요했다. 주말이면 아르바이트를 2개씩 나갔다. 한창 꾸밀 나이였지만 옷 한 벌 사면서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자립지원관에 머무는 동안은 남자친구도 못 사귀었다. 혹 '시설 출신'이라는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서다. 퇴소 직후 주변에 이런 사실을 털어놓았다가 오히려 상처만 받았다. 사소한 실수도 '부모 없이 자라서 그렇다'는 이유로 읽혔다. 대학에서 사귄 친구들에게 속내를 털어 놓지 못한 이유다. 겉으론 애써 밝은 척 했지만 전보다 더욱 홀로 고민하고 힘겨워 해야하는 시간이 길어졌다.



●"내게도 엄마가 있었으면…"

같은해 퇴소한 김민희(24ㆍ여ㆍ가명)씨는 이 같은 편견이 싫어 아예 광주를 벗어났다. 시설 출신 꼬리표를 떼고자 일부 퇴소생들은 일부러 타지역으로 이주한다. 수도권 대학을 진학한 김씨는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소년소녀가정 전세주택 지원'을 받아 자취를 시작했다. 집을 구하는 것부터 시련의 연속이었다. 조건에 맞는 전셋집을 직접 찾으러 다니는 것도 고역이었다. 대다수 집주인들은 LH사업이 번거롭다며 꺼려했다.

5평 남짓한 혼자만의 공간이 생겼을 땐 비로소 '어른'이 된 줄 알았다. 하지만 당장 각종 공과금을 납부하는 것부터 막혔다. 퇴소생들을 위한 지원책이 존재하는 건 알지만 어떻게 신청을 해야되는지,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서류는 어떻게 떼는 지 등 모든 게 낯설기만 했다. 시설에 살 적엔 신경쓰지 않아도 되는 부분이었다. 자립 교육을 받긴 했지만 직접 맞딱뜨린 것은 차원이 달랐다.

"내게도 엄마가 있었다면 물어보면 될텐데…." 자립과 함께 새삼 고아임을 느낀 순간 설움이 복받쳤다. 김씨는 "주변의 다른 퇴소생들을 보면 일상생활 기술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주민센터를 찾아가도 헤매기 일쑤"라면서 "시설에 있을 때는 담당 선생님들이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수동적인 성향이 굳어져 그런 것 같다"고 말했다.

김씨는 지자체에 '자립지원전담팀'이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일상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퇴소생들이 쉽게 활용할 수 있는 통합 창구 얘기다. 정부는 현재 시설마다 자립지원전담요원을 최소 1명씩 배치시키고 있다. 하지만 사후 관리 측면에서 떨어진다는 게 퇴소생들의 이야기다.



● 꿈 꾸는 것조차 사치인 삶

광주지역에서 해마다 퇴소하는 시설 아동의 절반 가량은 대학에 진학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어려움 속에서도 꿈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간다. 뚜렷한 목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머지 절반은 오히려 더 열악한 여건에서 단순 생산직과 서비스업을 전전하며 미래에 대한 꿈을 꺾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실패하면 회복할 수 없는 게 현실인 까닭이다.

8년 전 시설 문을 나선 A(28)씨는 경제적 자립을 위해 곧바로 생산직에 취업했다. 공부와는 거리가 멀다는 판단이었다. 고등학교 졸업자인 그에게 높은 임금의 일자리는 언감생심. 지난해 아동자립지원단이 실시한 조사에 의하면 고등학교 이하 퇴소생 평균 임금은 165만 원이다.

후회 끝에 뒤늦게 대학 문을 두드린 A씨는 또 한번 좌절을 겪어야 했다. 시설 출신에게 주어지는 각종 혜택은 '취업 경험'이 있는 자에겐 해당되지 않았다. 학자금 대출을 받아 겨우 입학은 했지만 당장 수입이 끊긴 데다 얼마 안되는 저금도 월세와 각종 생활비를 충당하기엔 한계가 따랐다. 휴학을 거듭하던 그는 결국 대학 졸업을 포기했다.

공무원을 꿈꾸는 B(26)씨의 절망은 '현재진행형'이다. 학원을 다니는 것은 꿈도 못꾼다. 인터넷 강의료, 독서실비, 교재비 등 첫달에만 100만 원 이상이 들었다. 정부 지원을 받을 순 있지만 각종 사용 내역에 대해 까다로운 심사를 받아야 한다. 번번이 시험에 미끄러지면서 절망은 커져가고 있다. B씨는 "취업까지 부모 등 주변으로부터 도움을 받을 수 있는 평범한 가정의 학생들에 비해 시설 출신들은 단 한 번이라도 어그러지면 생존 자체가 위협받는다"며 "우리에겐 꿈 꾸는 것조차 사치라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신혜령 한국아동복지학회 이사는 "한국의 복지가 전반적으로 수준이 높아진 것 같지만 시설 아동들의 어려움은 의외로 부각되지 않고 있다"면서 "시설 퇴소시 취업을 보장받고 나가는 것도 아닌데다 퇴소생들이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지 찾는 과정도 부족하다. 관련 법을 확대하고 지자체가 이들을 위한 지원시설을 확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정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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