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건, 목포 다도일우(하강어주) |
공재 윤두서, 소치 허련으로 이어지는 남도 남종화의 맥은 근현대기를 거치면서 광주의 허백련과 목포의 허건에 의해 계승되어졌다. 남농 허건은 한국 남종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이를 창조적으로 발전시켜 현실의 시각과 실질적인 대상을 연구하는 새로운 남종화를 창작했다. 그리고 허건의 새로운 감각의 남종화는 목포를 중심으로 하여 새로운 화파를 형성하였으며 이들 예술가들은 남도를 예향으로 만드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한국 남종화맥 계승자
허건(1908~1987)은 전라남도 진도군 운림산방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처음에는 우산(又山)이었으며 후에 남농(南農)으로 바꾸었다. 우리나라 남종화의 맥을 남도에 정착시킨 할아버지 소치 허련과 아버지 미산 허형의 그림을 보고 자랐으며 이들에 이어 남종화를 남도에 뿌리내리게 하였다. 허건은 남도의 실경을 근간으로 산, 바위, 계곡, 소나무 등을 전통적인 필법과 구도로 재해석하여 작품을 제작하였다. 이러한 표현방법은 허형의 “작대기 산수를 그리라.”는 가르침에 따른 것이며 이런한 기법은 사물에 대한 작가의 인식을 강조한 화법이다. 소치 허련의 남도 남종화를 계승 발전시킨 허건은 1981년 허련, 허형, 허건의 삼대에 거친 서화를 목포시에 기증하였으며 1982년에 허련의 거처이자 남도 남종화를 상징하는 운림산방을 복원하여 1987년 진도군에 기증하였다.
작품 활동
허건은 1923년 16살 때 목포로 이사하면서 목포를 상징하는 예술가로 성장한다. 목포 북교보통학교 5학년 때 전국초급학교 서화작품전(풍경화)에서 2등상을 차지하면서 화가의 길을 선택하게 된다. 1938년 선친 허형이 타계하자 집안의 살림이 곤란에 빠졌으며 이를 타개하기 위해 전통과 현대의 회화양식을 폭넓게 연구, 이해하여 작품 세계를 열어나갔다. 또한 1942년 뛰어난 예술적 재능을 보인 동생 허림이 요절하자 가족과 동생의 유족까지 합한 생계를 작품 활동으로 이어 나갔다.
허건은 1953년 목포에 있는 죽동(竹洞)집을 구입하였다. 죽동의 화실은 허건이 작품 창작을 하는 장소였으며 목포 최고의 사랑방으로 당대 명사들이 목포에 오면 첫 번째로 방문하는 장소였다. 허건은 1957년 김기창, 이유태, 김영기, 김정현, 박래현, 천경자 등과 백양회(白陽會)를 만들기도 하였다. 이 후 광주, 전주, 서울, 제주 등 전국 각지에서 개인전과 초대전을 개최하면서 작품 활동을 하였다. 허건은 많은 제자들에게 남도 남종화를 가르쳤으며 남농상(南農賞)을 제정하여 후배 화가와 서예가들을 후원하기도 하였다. 1983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이 되었으며 1987년 81세로 타계하기까지 일생동안 목포를 지킨 남도화단의 거목이다.
시기별 작품
1940년대 허건은 채색화를 그렸으며 감각적인 필선과 깊이 있는 색을 사용하여 자연과 삶에 대한 느낌을 표현한 독창적인 작품이다. 이러한 채색화는 1950년대부터 허건을 상징하는 신남화로 변화된다. 신남화는 맑고 깨끗한 남종화 사상을 바탕으로 작가의 개성을 담아 그린 독자적인 작품이다. 1950년대 작품은 남도의 풍경과 정취를 기반으로 남종화의 기법과 정신세계를 표현하여 농담이 풍부하면서 때로는 거칠게 대상을 나타냈다. 1960년대 이후 작품 경향은 남종화의 기법과 사상을 가지고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는 온화한 능선과 아담한 풍경을 표현했다. 이 시기 작품은 삶에 대한 자신감과 활기가 작품에도 나타나 시야가 넓어지고 무한한 공간을 상징하는 여백이 많아진다. 특히 1970년대에 많이 그린 소나무는 소나무가 의미하는 기백과 인내의 정신을 나타내면서 생명력과 활기가 넘친다. 따라서 신남화는 남도의 산, 물, 사찰, 소나무 등 사실적인 소재에 남종화의 기법과 정신을 담아 그린 작품이다. 신남화는 세상을 움직이는 원동력인 기(氣)와 남종화가 나타내는 보편적인 이치인 천리(天理)가 함께 나타나 있다.
새로운 남도 남종화 : 신남화
허건은 1950년 9월에 탈고한 '남종회화사'에서 '신남화'라는 명칭을 사용하였다. 허건이 말한 ‘신남화’는 한국의 남종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켜 재해석한 작품을 말한다. 남종회화사에서 “예술은 민족성을 잊어서는 안된다. 남화는 중국에서 왔어도 조선의 남화를 그리고 유화는 서구에서 건너왔지만 조선의 유화를 그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허건의 신남화는 중국의 남종화가 아닌 우리나라 풍토에 기반을 두었으며 남종화를 근간으로 작가의 개성을 넣어 새롭게 전개한 남종화이다. 또한 허건은 '남종회화사'에서 예술의 목적에 대해 “모든 예술은 사람을 고무하고 감동과 기쁨을 주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즉 이러한 생각을 가진 허건은 우리 자연을 소재로 민족적 정서가 담긴 신남화을 그렸으며 신남화는 사람들에게 감동과 기쁨을 주는 작품이다.
남도 실경을 근간으로 만든 신남화
허건이 풍경을 직접 보고 느낀 모습을 표현한 신남화는 목포를 중심으로 한 남도의 풍경에서 기원한 작품이다. 실경을 바탕에 둔 허건의 산수화에 대해 청강 김영기는 다음과 같이 평하였다. “남농의 산수화에 나타나는 기엄(奇嚴)하고도 평엔(平円)한 산형봉만(山形峯巒)으로 변하는 데 주목된다. 이러한 그의 자연에서 취득한 전형적 표현은 오직 남농만이 개척해온 호남풍의 산수화로 우리 근대미술사의 일면을 차지할 것이다.” 김영기는 허건의 작품은 독자적인 양식의 신남화로 근대미술사의 중요한 작가로 평가를 받을 것으로 이야기했다. 그리고 허건은 신남화에 대해 남종화를 독창적으로 변화시킨 작품으로 실경을 근간으로 한 작품이라고 말하였다. “신남화는 남화의 옛 전통을 바탕으로 한 독창적인 변용입니다. 남화 고유의 부드러운 선, 수묵 위주의 필치를 살리면서 나 자신의 독특한 초묵과 필선, 그리고 계산된 화면 배치를 구사하죠. 또 명산대찰 위주의 관념적인 산수에서 벗어나 직접 현장에 가서 실경을 스케치하여 사실감 있는 그림을 그렸지요. 내 작품에 많이 나오는 유달산 기슭의 산과 밭, 다도해 풍경 등이 그것입니다.” 즉 허건의 신남화는 허련, 허형의 남종화의 기법과 정신을 계승하면서 실질 풍경을 남종화에 적용시켜 남도 남종화를 새롭게 변혁한 작품이다.
허건화파 형성
허건은 해방 후인 1946년 남화연구원(南畵硏究院)을 개설하여 문하생을 받아 후진을 양성하였다. 그리고 1953년부터 허건이 작품을 제작하는 죽동화실은 호남 남종화단의 중추역할을 하는 장소이자 제자들을 가르치는 장소였다. 허건이 독창적으로 만든 신남화는 많은 제자들에게 이어져 허건을 스승으로 모신 남농계가 한국화단에 형성된다. 허건의 제자들을 만하는 남농계의 화가들은 남종화의 전통인 깨끗하고 보편적인 사상을 근간으로 이를 재해석한 독창적인 작품을 그린 화가들을 지칭한다. 필자는 뛰어난 화가들을 많이 배출한 허건과 허건의 제자들을 화파로 정립 할 필요성을 제기한다. 화파의 정립을 통해 남농 허건을 중심으로 하는 남도 남종화파에 관한 연구가 본격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남화연구원에서 허건에서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는 조방원, 신영복, 김명제, 곽남배 등이 있으며 이들은 각기 독자적인 작품 세계를 이룬 대가들이다. 1959년 조방원이 국전추천작가가 되었으며 신영복, 이옥성도 국전에 특선을 하면서 남농계가 형성한다. 그리고 허건의 문하에 박항환, 문흥록, 이옥성, 박광식, 박재현, 곽권옥, 윤의중, 손기종, 하철경, 손기종, 허림의 아들인 허문, 허건의 장손자인 허진 등이 수업을 받아 남농계가 형성된다. 허건은 제자들의 개성을 존중하여 “철저히 내 그림을 본뜨지 말고 개성 있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가르침에 따라 허건의 제자들은 남종화의 기법과 사상을 근간으로 독창적이면서 감각적인 채색을 사용한 작가의 개성을 강조한 작품을 그렸다. 독창적인 작품세계를 이루어 낸 허건 제자들의 작품은 남도와 더 넓게는 한국 화단을 다양하고 풍성하게 하고 있다.
허건의 남종화의 기법적인 측면과 정신을 계승한 조방원, 김명제, 박용규, 박춘묵 등은 각자 자신들의 제자들을 양성하였다. 허건의 수제자 조방원은 1978년 무등산 광주호 근처에 묵노헌(墨奴軒)을 짓고 제자들에게 ‘그림은 선(禪)과 통한다.’ ‘마음이 곧 그림이다.’고 가르쳤다. 조방원의 제자로는 박광식, 윤의중, 오견규, 정재윤, 강석관, 류희성, 조광익, 조선, 김광옥, 김송근, 이선복, 박광현 등이 있으며 이들은 1987년 묵노회를 창립하여 활동한다. 또한 허건의 제자 김명제는 순천에서 제자들을 가르쳤으며 목포의 박용규, 여수의 박춘묵이 제자들을 가르쳐 남도 남종화의 화맥을 전승시키고 있다.
남농 허건은 남종화를 새롭게 해석하여 변화된 신남화로 한국남종화를 현대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한국화단의 거목으로 한국화단에 활력을 주었다. 또한 허건은 많은 제자들을 가르쳐 남도 남종화의 전승에 기여하였으며 제자들은 신남화를 독자적으로 해석하여 독자적인 화풍을 이루게 된다.
동양의 산수화는 수묵의 짙고 옅은 조화를 이용하여 하늘과 사람이 일치되고(天人一致), 초자연적인 표현을 한 지성과 철학, 미가 결합된 예술이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자연이란 인체처럼 살아서 생동하는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자연을 표현하는 산수화는 기운생동(氣韻生動)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제되었다. 특히 남종화의 산수화는 하늘의 이치(天理)와 도(道)를 담고자 하는 작품으로 산과 물을 통해 욕심이 없는 깨끗한 마음을 담았다.
즉 동양의 산수화는 순수하고 순정한 사유를 기본으로 맑고 담박한 기호를 담아내 인간 정신의 보편적인 깨달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산과 물을 통해 도(道)를 담고자 한 산수화는 유교 철학과 관련이 있으며 이러한 내용은 '논어'에 있다. '논어'에는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 지혜로운 자는 동적이고, 어진 자는 정적이기 때문이다."(知者樂水, 仁者樂山, 知者動, 仁者情)라는 구절이 있다. 이를 해석하면 지혜로운 사람이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이 자신과 비슷하여 쉼 없이 흐르는 움직이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너그럽고 어진 사람이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의 장엄과 관용이 자신의 내면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산과 물 등 자연에 대한 감상은 인간 내면의 정신세계에 의해 이루어지며 사람의 성품에 따라 좋아하는 대상이 달라지게 된다. 따라서 산과 물을 통해 자연을 표현한 산수화는 화가의 자연에 관한 인식과 인품을 나타낸다.
예술가는 자신의 정신과 인품을 담아 산수화를 그리며 작품을 감상하는 사람 역시 산과 물을 통해 자신의 성품을 깨달게 되는 것이다.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사ㆍ미술학 박사 오병희의 미술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