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영묵, 1980년대부터 광주포크음악 이끈 '연주 마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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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
오영묵, 1980년대부터 광주포크음악 이끈 '연주 마술사'
국소남의 통기타는 영원하다 41. 광주 통기타 전성시대Ⅱ
MBC 별밤서 음악생활 시작
1987년 꼬두메로 둥지 옮겨
연주ㆍ작편곡ㆍ프로듀싱 전념
  • 입력 : 2018. 02.20(화) 21:00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는 오영묵
1927년 2월16일. 일제 강점기 시절 경성제국 방송이 우리나라 최초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다. 외국의 경우 1936년 영국이 세계 최초로 TV방송을 내보냈고 1940년 영국 CBS가 컬러TV 시험방송을 개시했다.

1954년 미국이 컬러TV NTSC방식 방송을 시작했다. 우리나라는 1956년 대한방송㈜이 흑백TV 방송을 시작했다. 1964년 민방인 동양방송이 상용방송을 시작했고 1969년 MBC가 개국했다. 1973년 KBS가 주식회사로 창립했고 1980년 KBS 컬러 TV방송이 본격 시작됐다.



●컬러TV의 등장, 인류 최대 발명품



컬러 TV의 등장은 일대 센세이션이요, 기술의 대변화요, 문화적 혁명이었다. 미국 영화에서나 봤던 총천연색 스크린을 안방에서 볼 수 있게됐다. 인간이 개발한 기술적ㆍ문화적 혁명이었다.

라디오는 귀신상자라 여겼던 시대에 진공관에서 트랜지스터로, 영상체인 흑백 TV가 컬러 TV로 세상은 그렇게 변해가고 있었다. 반세기 전, 국내 TV보급률은 1962년 3만대에서 1970년 38만대, 1980년 600만대에 이르렀다. 1962년 3만대에서 20년만에 200배가 넘게 보급ㆍ확장됐다.

1969년 MBC가 개국하며 TV 삼국시대(KBSㆍTBCㆍMBC)가 열리더니 1970년 TBC 드라마 '아씨', KBS의 '여로'는 온국민을 TV앞으로 앉혀버린 선풍적 인기 드라마였다. 아직도 올드팬들의 기억에 각인돼 있는 흑백 TV의 전성기였다. 국내TV 국산 1호는 1966년 생산된 금성 17인치 TV였다.



●M-TV개국, 보는 음악시대 1981



'음악은 귀로 듣는 것'이라는 정의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 있을까. 세상은 오래 살고 볼 일인가보다. 변치 않을 것 같던 진리가 문화적 변화에서 따라 '귀로 듣는 시대'에서 '눈으로 보는 시대'로 바뀌고 말았다.

1981년 8월1일 이전에는 음악은 귀로 듣고 즐기는 것으로 여겼다. 음악은 라디오를 듣거나 음반을 사서 들으면 됐다. 1981년 8월1일 이후 음악이 '보고 즐기는 것'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1981년 8월1일, 이날의 혁명적 변화를 선도했던 M-TV가 개국하고 첫 전파를 발사한 날이기 때문이다. M-TV의 개국은 팝(Pop)의 흐름을 바꿔 놓은 일대 사건이었다.

'비디오가 라디오 스타를 죽인다'는 제목부터 의미심장한 버글스의 'Video killed the radio star'란 뮤직비디오로 포문을 연 M-TV는 24시간 뮤직비디오를 틀어주는 음악 전문 케이블 채널이었다.

M-TV의 등장이 음악의 상업화를 가속화시키는 심각한 부작용을 낳은 것은 명백한 사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M-TV와 뮤직 비디오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고 그것을 무시하고는 시장에서 견뎌낼 수가 없는 시대가 돼 버렸다. 컬러TV가 시작된 1980년 M-TV가 숨고르기를 시작하고 비장의 카드를 세상에 던졌던 사실을 문화적 변화요, 흐름으로 읽을 수밖에 없다.




● 오영묵, MBC 별밤 노크 1981



오영묵. 1961년 해남 태생, 두말할 것도 없다. 광주 포크의 절대 강자다. 필자와 이장순이 1978년 별밤(방송)에서 발을 빼자 걸출한 재목들이 별밤을 노크했다. 이 칼럼에 소개된 김종률(임을 위한 행진곡), 하성관(빙빙빙)에 이어 1981년 오영묵이 별밤에 들어왔다.

필자는 솔직히 1978년 이후 오영묵과 방송을 해본 기억은 없다. 1983년 별밤 제1회 정기발표회 전 황금동 연습실에서 그와 첫 만남이 있었다.

오영묵. 그는 노래를 크게 부르거나 기교를 부리지도 않았고 큰 덩치에서 나올 것 같은 베이스 톤에 성격은 조용하고 말씨 또한 부드러웠다. 기타를 치는 것이나 외모는 꼭 '아침 이슬'의 김민기와 빼닮았다. 외모는 오영묵이 더 출중했지만…. 필자는 그를 보면서 광주 포크계의 큰 기둥이 되겠구나 직감했다. 눈으로 보고 귀로 느끼는 그의 음악성과 음악에 대한 열정에 마음이 갈 수 밖에 없는 후배였다.



●그의 연주 영혼마저 숨 죽이는가!



2008년 필자가 쓴 '광주 포크 30년 약사'에서 오영묵을 이렇게 썼다. '오영묵! 광주의 뮤지션들은 그를 통기타의 달인이라 부른다. 1981년 MBC 별밤을 통해 음악생활을 시작했고 1987년 창작음악그룹 꼬두메로 둥지를 옮긴다. 헤아릴 수 없는 음반제작과 연주가 그의 녹음실을 통해 세상에 빛을 내고 있다. 한보리와 더불어 꼬두메의 쌍두마차를 견인해 오고 있는 그를 보노라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그의 연주엔 정교함이 있고 굵고 가느다란, 크고 작은 광음과 화음들이 오선지를 유린해 나간다.

광주는 일찌기 오영묵이라는 연주 마술사를 보유하고 있었다. 광주의 보배요, 자랑이 아닐 수 없다. 없어서는 안 될 음악인으로 각인되고 있다. 광주는 앞으로 그를 더 주목할 것이다. 그의 노래, 연주, 작,편곡, 프로듀싱을 포함한 모든 것들을.'



●그의 약력 부끄럽거나 얇음이 없다.



그는 △1988년 조선대(전자공학과) 졸업 △1987년 창작음악그룹 꼬두메 활동, 팀 음반, 공연 다수 참여 △1992년 전남과학대 생활음악과 4년 출강 △1995년 꼬두메 녹음실 설립 △2003년 (현)AN'T Sound Contents 대표 △시를 노래하는 달팽이들의 포엠 콘써트 70여회 공연ㆍ제작 △2003년부터 아시아 청소년 음악 페스티벌 집행위원회 집행위원, 심사위원

△중국 장맹 감독영화 '철 피아노' 음악감독 선임(2010년 촬영) △2017년 7월 중국 1240관 개봉 상영(대만 금마장 영화제 음악감독상 후보 노미네이트) △ 2018 한중 합작영화 '안중근' 프로젝트 음악감독 선임 △2009년 광주 정보문화산업 진흥원의 교육사업 '방송전문인력 양성' 방송음향 강의ㆍ2D 애니메이션 '천자무공' 26편 음악ㆍ음향 감독

△동신대 실용음악학과 컴퓨터 음악ㆍ레코딩ㆍ음반제작 출강 중 △광주시립극단 음악감독 '오방선생' ' 전우치' 등 다수 △2014 광주사직 국제포크음악제 총감독 △현 광주음향예술인협회 광주지부장 △그 외 음반제작 200여 편 △방송콘텐츠 제작 200여 회 △2Dㆍ3D 플래시 애니메이션 포스트 프로덕션 다수 제작 △2017년 광주사직 통기타의 거리 기념음반 '사직길 연가' 프로듀싱 △광주문화재단 광주미디어아트 플랫폼 홀로그램 극장 올해 첫 신작 인형극 '어린왕자' 선물 음악감독

△월드 요들 페스티벌 in 곡성 총감독 역임 △광주 MBC라디오 특집 다큐'상처야 훨훨 날지 마라' 음향감독 △시 노래 운동 30주년 기념 공연 △1995년 꼬두메 녹음실 설립 △2018년 광주영상센터(사직공원 내 구KBS) 광주음악산업진흥센터로 녹음실 이전 AN'T Sound Contents로 개명ㆍ운영중 △대표곡=밤ㆍ혼자되는 연습ㆍ숲으로 갔지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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