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힘의 기술 '시김새'… 남도음악에 주목할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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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삭힘의 기술 '시김새'… 남도음악에 주목할 이유
이윤선의 남도 인문학 - 시김새
사전적 의미의 시김새 뜻은
판소리에서 소리 하는 방법
국악 음의 앞뒤 꾸며주는 음
  • 입력 : 2018. 04.05(목) 21:00
(사)한국판소리보존회 공연 모습. 광주문화재단 제공


'시김새'는 무엇인가?

국어사전의 설명으로는 '판소리에서 소리를 하는 방법이나 상태' 혹은 '국악에서 주된 음의 앞과 뒤에서 꾸며주는 꾸밈음'이라 한다. 음악용어다. 그것도 한국음악에서 주로 사용하는 용어라는 점이 중요하다. 일명 서양음악에서는 시김새가 그리 중요하지 않다는 얘기다. 무슨 뜻인가? 시김새가 한국음악의 특성이라는 말이다. 개념 정의가 쉽지는 않다. 하지만 많은 이들이 보편적으로 언급한다. 판소리나 민요를 아는 사람들 중 시김새를 모르는 이는 없다. 딱히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라도 대강의 쓰임새를 알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의 설명을 들어 범박하게 표현하면 '소리(음악)를 꾸미는 형태나 방식'이다. 쉬운 예를 들어본다. 현재 남도음악이라 호명하는 판소리나 민요 등의 성악곡 혹은 가야금이나 젓대 등의 기악곡 연주에서 주로 사용하는 기법들이 있다. 대개 한 옥타브 안에 주된 음을 세 개 배치한다. 이 세 개의 음을 중심으로 음악을 만들어낸다. 남도음악을 3음계라 말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반음까지 합하면 여러 개의 음들이 존재할 터인데 굳이 세 개의 음만 배치한 이유가 뭘까.



남도음악, 옥타브 안에 3음만 배치했던 이유

3음만으로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음을 장식하는 기법들을 통해서다. 어떻게 장식하는가? 윗음은 꺾고 가운데 음은 평으로 흘려내며 아랫음은 심하게 떤다. 이를 이데올로기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상중하 위계와 서열이다. 트기 윗음을 꺾는 다양한 방식을 '다루친다' 혹은 '타루친다'라고 한다. 다섯 개의 음으로 확대하면 음양오행 등의 의미가 부여된다. 옥타브 내에 다른 음들도 있지 않나? 물론 있다. 문화권에서 따라서 다섯 개, 여덟 개, 스물 한개, 심지어 인도에서는 서른 개 넘게 나누어 인식하기도 한다. 옥타브란 용어 자체가 여덟 개로 나눈다는 뜻에서 온 말이다. 발이 여덟 개인 문어를 옥토퍼스라 한다는 데서 이를 짐작할 수 있다. 어쨌든 이들 세 개의 음을 적절하게 장식해서 음악을 만들어낸다. 세 개 외의 음들은 미분음(음으로 분화하지 않은 음이라는 뜻)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꺾고 흘리고 떠는 방식이나 결과를 통칭 '시김새'라 한다. 왜 음을 곧이곧대로 내지 않고 흔들거나 꺾어서 장식하는 것일까? 남도음악 혹은 한국음악이 가지는 기능과 관련이 있다. '시김새'라는 용어가 어디서 온 것인지 추적해보면 이를 알 수 있다.



'시김새'의 동사형은 '삭히다'이다

'시김새'는 명사다. 익힌다, 띄운다, 삭힌다, 발효(醱酵)시킨다 등 여러 가지 동사로부터 파생되었다. 현재 민요나 판소리 등 국악 전반에 걸쳐 사용되고 있다. 물론 이 용어가 어디서 시작되었는지 본래적 뜻이 무엇인지 면밀하게 추적된 적은 없다. '시김새'의 여러 양상들에 대해 연구가 진행되긴 했다. 하지만 이렇다 할 규명이 이루어졌다고 말하긴 어렵다. 대개 음을 장식하는 기술이라고 성글게 해석된다. '식음새(飾音새)'라고도 한다. 음을 장식하는 모양새라는 뜻이다. 김지하는 '삭히다'의 명사형이 '시김새'라고 주장해왔다. 그는 판소리를 비롯한 한국음악에 '흰그늘'이 있다고 주장한다. 그늘이면 그늘이지 '흰그늘'은 또 뭔가? 드러나지 않는 이면의 그늘이라는 뜻이다. 혹자는 이를 '한'이라고도 하고 '흥'이라고도 한다. 간단치 않은 정의다. '한'을 구조적으로 분석한 이들도 있다. 딱히 같은 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전혀 다른 말도 아니다. '삭히다'의 동사에서 '시김새'라는 명사가 왔다는 점을 곰곰이 생각해보면 '흰그늘' 혹은 '시김새'가 삭혀내는 개념이며 기술이라는 점을 짐작해볼 수 있다. 백대웅은 '시김새'가 '곰삭다'에서 온 말이라고 주장한다. '곰삭다'의 '곰'은 '푹 고아내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뼈까지 고아서 먹는 풍습이 이를 대변해준다. 끓이다, 익히다 등과 관련된 용어로 모두 삭히다와 관련되어 있다. 오히려 한 단계 더 나아가 해석했음을 알 수 있다.



'발림'과 '너름새'도 같은 말인가?

의문이 생긴다. 소리만 꾸미는 기능이 있나? 아니다. 춤을 중심으로 한 몸짓에도 꾸밈과 장식이 있다. 이를 넓게 말해 춤이라 호명할 뿐이다. 동작의 꾸밈을 나타내는 개념이다. 우리말로 흔히 '너름새'라 한다. 본래 이 용어는 너그럽고 시원스럽게 말로 떠벌려서 일을 주선하는 솜씨를 뜻한다. 풍물놀이에서는 쇠재비, 징재비, 장구재비, 북재비 등 앞치배들이 풍물을 손에 든 채로 두 팔을 벌리고 우줄거리는 몸동작을 이르는 용어다. 혹은 풍물놀이에서 가락을 멋있게 치라는 뜻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판소리를 할 때 몸을 움직여 춤사위를 연출하는 '발림'과는 어떻게 다른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리의 극적인 전개를 돕기 위해 몸짓이나 손짓으로 하는 동작을 말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판소리에서의 동작을 '너름새'라고 하지는 않는다. 주로 풍물놀이의 춤동작을 이르는 용어다. 동작이나 기능은 유사하지만 각기 용어의 차용이 다름을 알 수 있다. 왜 유사한 현상을 부르는 이름이 다를까. 기능이 다르기 때문이다. 성악이나 기악에서 리듬을 일정하게 잘라 단위화한 것을 '장단(長短)'이라 한다. 풍물에서는 같은 기능을 일러 '가락'이라 하고 의례에 따라 '~차(채)'라 한다. 삼채굿이니 오채길굿이니 하는 표현이 그것이다. 이 또한 기능이 다르기 때문에 호명도 달리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졸고를 통해 주장한 바들이 있으므로 지면을 따로 해 설명하겠다.



시김새가 남도음악에 특화된 이유가 있을까?

이보형은 시김새란 용어가 오래전부터 쓰였던 것은 아니라고 한다. 홍정수는 시김새가 변주적 성격, 장식적 성격, 즉흥적 성격이 있다고 말한다. 지금까지 전통음악 이론에서 시김새의 음은 음계에서 고려되지 않는다고도 한다. 재론이 필요하다. 김정희는 시김새들의 변이를 분석해 특히 육자배기토리권에서 특화된 현상을 주장했다. 다른 말로 하면 남도음악의 특성을 발견했다는 뜻이다. 이들 기능이 왜 한반도 서남쪽 즉 해양문화권에서 발현되었을까? 특히 시김새를 말하기방식의 음악적 변주로 해독해내는 시각이 탁월하다. 하지만 국악계나 한국음악계에서 이를 주목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애석한 일이다. 송혜진은 김치와 한국음악이란 글에서는 시김새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민속음악의 현장을 오래 경험한 학자 이보형에 따르면 민속음악인들 사이에서는 주로 '소리를 굴린다', '쑤신다', '돌려 낸다', '민다' 는 등의 술어로 시김새 하는 방법은 설명해 왔지만, '시김새란 무엇이다'는 식의 개념은 없었던 듯하다. 그러나 시김새는 연주자의 기량과 완성도, 스타일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모든 음악가들은 시김새를 어떻게 해야 할 지를 두고 깊이 생각하며, 스승은 제자에게 제 맛 나는 시김새를 낼 수 있도록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은 수 없이 반복 연습해가며 '맛'을 익힌다."



시김새는 음악의 맛을 내는 기술이다

시김새를 맛에 비교해 설명한 것은 매우 적절한 시도다. 나는 이를 젓갈과 비교해 오랫동안 고찰해왔다. 시김새는 악기로 말하면 농현(弄絃)이다. 성악에서 시김새로 소리를 장식하듯이 기악에서 음을 흔들거나 꺾어 장식함을 말한다. 이 또한 몇 편의 논고 분량이 필요하므로 따로 지면을 마련하여 설명한다. 앞선 칼럼에서 술을 삭힌다는 데서 마음을 삭인다는 뜻으로 치환되는 흔적을 추적한 적이 있다. 이른바 남도의 씻김굿 의례 중 '이슬털이'가 그것이었다. 그 음악적 총체는 겨루기와 끼어 넣기 방식이 만들어낸 시나위에 들어 있음도 살펴본 바 있다. 예컨대 남도의 씻김굿 시김새 중 최다출현 빈도를 보이는 것이 꺾는 음인 이유를 설명하는 방식이다. 한 예만 들어본다. 꺾는 음 즉 '꺾는 목'은 통상 단2도 정도를 미끄러지듯 하강시키는 기술이다. 이를 겹겹이 이어서 발성하는 방식을 '거드렁제'라 한다. 판소리 단가를 맺을 때 통상 "~거드렁 거리고 놀아보세"라고 한다. 그냥 '거드렁 거리고 놀자'는 뜻이 아니다. 시김새의 꺾는 음은 일정한 유형을 가진 판형 즉 템플릿(template)이라는 점을 주목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시김새는 음식을 삭히는 기능과 연결되어 있고 마음을 삭이는 기능과 연결되어 있다. 물론 어떤 특정한 시기에 발달한 시대적 특성이기도 하다. 이 기술의 반복과 프렉탈 구조, 나아가 시대적 배경에 대해서는 좀 길게 설명할 수 있는 지면을 만들어볼 예정이다.



삭힘에서 삭임으로

구조주의 인류학의 아버지라 했던 레비스트로스가 일찍이 반음계를 소개한 적이 있다. 그가 쓴 명저 신화학 중에 날것과 익힌 것에 관한 논의 중 나온 얘기다. 이에 대한 전경수의 비판은 따로 소개하겠다. "브라질 인디언이 무지개에 고통과 죽음을 연계시키는 것처럼 서구인들 역시 '반음계(크로마티크)' 장르는 슬픔과 고뇌를 표현하기에 훌륭하다고 생각했다. 강화된 반음계가 고조되면 영혼을 할퀸다. 저하되더라도 힘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은 진정한 비탄의 소리를 듣는다. 반음계(크로마티즘)에 대해 리트레 사전은 루소 논문의 초반부를 인용해 이렇게 첨가했다. 대화에서 '반음계', '반음계적'이라는 것은 사랑의 슬픔을 호소하는 듯한, 부드러운, 애처로운 구절을 의미한다." 나는 이를 남도 시김새의 특성 중 꺾는 음의 반음으로 연결해 해석한 적이 있다. 이를 거듭 반복해 발성하거나 연주하는 프렉탈 구조가 황해로부터 남도에 이르는 황해문화권 혹은 한반도 전반을 관통하는 시김새의 방식이다. 내 논의에 동의한다면 이 프렉탈음악을 연구하는 것이야말로 오늘날 당면한 사회적 상실과 죽음의 손실들을 힐링시킬 음악연구라 할 만하다. 한국음악 중 민속음악 특히 남도음악, 더 좁게는 씻김 음악을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시김새의 템플릿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다른 음악들과의 변별성을 분석해내면 보다 쉽게 힐링의 기술들을 발견할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이를 삭힘의 기술이라 주장해왔다. 물론 이 기술은 세계 어떤 문화권이든 존재한다. 그러나 음악 용어로 문화적 용어로 치환해 사용하는 나라는 많지 않다. 그 중 한반도가 대표적이고 특히 남도문화권이 더 대표적이다. 왜 음을 장식하는 기술을 삭히다는 뜻의 시김새라는 용어로 불러왔겠는가를 깊이 생각해보라. 왜 한국음악 혹은 남도음악에 주목해야 하는지 그것이 우리사회에 어떻게 피드백되어야 하는지 스스로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남도인문학 TIP


'삭히다'는 동사 '썩다'에서 온 말이다. 썩는 것은 없어진다는 뜻이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 썩어 없어지는 것과 무슨 관련이 있을까? 누룩이나 메주 등의 효모작용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썩어 없어질 것들이 썩어 없어지지 아니하고 새로운 콘텐츠로 재탄생되는 과정을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술이고 간장이며 젓갈이고 된장이다. 유목문화권의 치즈나 와인도 모두 이 범주에 든다. 발효하다는 의미의 '삭히다'가 음악 용어로 정착한 이유를 주목한다. 내가 과문하여 유럽 등지에서도 이 발효의 개념이 음악 용어로 정착된 사례가 있는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모든 문화권에 이 기능은 존재한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음의 장식 현상을 '시김새'라는 용어로 개념화시켰고 설명해왔다. 시김새가 좋으니 안 좋으니 평하는 것은 음을 얼마나 잘 다루었느냐에 있다기보다 그 음의 장식 활용을 통해 얼마나 사람을 감동케 했느냐에 초점이 있다. 판소리 청자들이 흔히 "그 소리 참 한(恨)이 있어!"라고 감탄하는 이치다. 응어리진 마음에서 풀린 마음으로 단계를 넘어서게 하는 기술이다. 술밥이 누룩을 만나 술이 되는 이치. 채소가 소금과 젓갈과 곡류를 만나 김치를 만들어내는 이치, 시김새가 단순히 음을 장식하는 개념이 아니라는 뜻이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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