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평화방송 '행복한라디오'를 진행중인 이미랑 |
최인종 1965년 화순태생. 1985년 별밤에 입단한지 33년이 흘렀다. '허스키 보이스', 그만이 가진 개성 있는 목소리다.
쉬다 못해 강한 금속성이 섞여 있는 보이스 칼라의 소유자로 애절하거나 절규하듯 질러대는 고음처리가 일품이다. 항상 뒷자리에서 선배들 모시랴, 후배들 이끌랴 고생도 많았다. 별밤 총무 역할만 20여년, 회장도 몇 년. 평범한 직장인이지만 음악적 열정만큼은 그 누구도 넘보지 못 할 만큼 정력적이다. 그의 독집 디스크를 한번 들어보라! 가창력이 보통이 아니다. 비트가 강한 노래는 최인종에게 물어보면 답이 나올 것 같다.
● 한번 늑대가 되면 양이 되긴 어렵다.
통기타를 맨지 얼마인가. 기타에 미쳐서 늑대가 된지 오래다. 그 늑대가 끈을 놓은들 순한 양이 되긴 애당초 불가능하다. 음악에 대한 열정. 그 열정이 식을 날을 기대하기란 어렵다. 그 끈기와 지속성에 박수를 보내지 않을 수가 없다.
2013년부터 이 지방 출신 남성 5인조 통기타 그룹 '농장다리'를 결성, 활동하다 올해 1월부터 '개미와 배짱이'를 또다시 결성,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ㆍ음반 독집 (2005) △살만한 세상, 그대가 곁에 있기에, 괜찮아요, 다시 시작 하는거야, 한 △Grey Romance, 그대 떠난 후, 세월이 갈수록, 먼 길, 바람 불면 그대에게 가고 싶다 등 수록 ㆍ별밤발표회 : 제4회 1986년~2003년까지 참여
● 추억! 그 겹겹 속의 흔적들
국순철, 한종면 1968년생 광주태생. 국순철과 한종면은 1968년생 동갑내기로 광주가 고향이다. 통기타를 맨지 35년의 세월이 흘렀다. 그 여정 속에 겹겹이 쌓인 추억과 흔적들을 어이 말로 다 표현할까.
이 둘은 1986년 별밤에 노크하고 기라성 같은 선배들 밑에서 종종걸음으로 음악생활을 시작한다. 둘은 고교 동창으로 학내행사나 소풍(행군)때 끼를 발산하며 지내던 사이였다. 본격 음악활동은 대학서부터다. 한종면이 호남대 그룹사운드 '큐피드'에서 싱어로, 국순철은 고교 동창 그룹사운드 연합 써클에서 활동할 때 한종면이 국순철을 콜하면서 그룹 활동을 시작했다.
1986년(대학 1년)봄, 국순철과 한종면, 또 한명의 미술학과생으로 구성된 3명이 1986 강변가요제에 참가, 탈락의 고배를 마신다. 악보를 채보하지 못해 소리모아 박문옥에게 찾아가 채보를 하기도 했다. 이후 미대 동기생 모친이 운영하던 삼양백화점 4층 '모아' 카페에서 통기타를 치며 라이브 무대를 서게 된다. 국순철, 한종면의 언더 데뷔무대였다. 영역의 폭을 넓혀 시내 업소인 타임, 프리타임, 학교 앞 DJ가 있던 카페 등에서 노래를 하다가 선배 DJ로부터 광주 MBC 별밤 가입 권유를 받고 입단한다.(1986년 9월)
이미 별밤엔 기라성 같은 선배들이 즐비했고 그 당시 별밤동기인 한평연ㆍ이미랑 등과 함께 음악적 교류를 한다. 당시 한종면은 별밤 콘서트에서 건반을 맡아 광주ㆍ목포 공연에 참여했고 언더그라운드 활동 영역을 넓혀갔다. 이때 국순철이 의경에 입대했고 한종면은 별밤에서 임채관ㆍ이미랑과 함께 트리오를 결성했다. 각자의 성(性)을 딴 '한임이'라는 팀으로 1989 대학가요제 광주ㆍ전남 본선에서 고배의 쓴잔을 마신다. 한종면도 군에 입대 후 복학, 1992 KBS 대학가요축제에서 '잊혀가는 내 모습(한종면 사ㆍ박동조 곡ㆍ국순철 노래)'으로 동상을 받는다. 별밤에서 본격 음악활동 중 선배 오영묵으로 부터 광주 창작 공연 팀 '꼬두메' 입회 추천을 받는다. 1994년 꼬두메 2집(옴니버스)에 '몽상가의 손목시계'와 '파란하늘 금요일(한종면 사ㆍ곡, 국순철 노래)'을 발표, 이즈음부터 한종면은 싱어 송라이터로서 기틀을 다지고 작곡에 많은 시간을 보낸다. 두 사람은 별밤이 배출한 국소남ㆍ이장순, 정용주ㆍ김형욱, 강용욱ㆍ박경천(바둑이와 강아지) 등이 듀엣을 결성해 활동한 선배들의 바톤을 이어받은 최종주자들이다.(국소남과 기현수의 듀엣은 2000년 이후 결성)
● 기타의 작은 신이 돼 돌아온 한종면
한종면은 1997년 MBC 대학가요제에 국순철 작사, 한종면 작곡, 김근영 노래(동신대) '무지개'로 참가, 도전에 실패한다. 1998년 IMF 시기에 서울로 상경한다. 음악으로 성장하기 위한 결심이 섰던 그해 1998년 별밤의 여성 로커 신미라(예명 신자유)의 소개로 명동 이종환의 '쉘부루 라이브 클럽'에 도전장을 던졌다.(당시 쉘부루엔 한승기ㆍ남궁옥분ㆍ강승모 등이 출연) 이즈음 명동의 '영스타'와 미사리 등에서 실력을 검증받고 2001년 서른이 넘은 나이에 '둘'이란 음반작업을 한다. 개인투자로 마스터링까지 마쳤지만 과감히 포기하고 안산으로 내려와 다운타운가에서 활동한다. 하모니카와 기타연주에 주력, 김영태(내가 부를 너의 이름), 김광일(길, 바람, 아이), 배따라기 멤버인 양현경(아빠와 크레파스ㆍ수선화ㆍ그대는 봄비를 무척 좋아하나요) 등과 무대에서 교류, 음악적 색깔과 개인 사정 등으로 솔로로 독립(2005), 작곡에 주력.
2007년 '무정 부루스'의 강승모 9집(Return to Innocence)앨범에 참여 '미련', '슬픈 하늘' 등에서 하모니카로 연주에 동참하고, 광주로 낙향한다. 악기점에서 근무하다 '들꽃마을 사람들(국소남ㆍ기현수)', 별밤가족, 대한가수협회, 재즈협회 등에서 활동하며 염주동에 '음악이야기' 카페를 운영한다. 최근에는 기현수ㆍ이미랑과 함께 '5번 줄'이라는 포크그룹의 일원으로 활동중이다.
2012년 전국교정시설(교도소ㆍ소년원)을 18차례 순회공연 했다. '들꽃마을 사람들'이 주관하고 문화관광부가 지원한 행사였는데 필자와 기현수 등 여러 뮤지션이 참가했다. 이 순회공연에 한종면도 무대에 섰다. 필자가 느낀 그의 기타 실력은 옛날의 한종면이 아니었다. 대단한 기타 연주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중앙무대에서 연마한 연주 실력 뒤엔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있었을까. 기타의 작은 신이 되어 돌아왔다. 그의 짝 국순철도 기타에 리듬을 얹어 놓을때면 현란하기가 말할 수 없이 자유자재 였다.
국순철은 오래전부터 박현정(여)과 혼성듀엣으로 활동해 왔다. 2006년 들국화 패밀리로, 2014년엔 별밤 패밀리로, 2016년에는 달통 패밀리로 개명해가며 활동하고 있다. 2018년 현재 용봉지구에서 '달통패밀리 라이브'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별밤에 듀오는 이제 없다. 젊은 후배들에 의해 언젠가는 그 맥이 이어져 가길 바랄 뿐이다!!
● 신이 내린 목소리 이미랑
지구촌에 이렇게 청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자가 또 있을까. 신이 내린 목소리다. 존 바에즈나 나나 무스쿠리보다 더 정겹고 청아하고 맑은 목소리의 주인공 이미랑. 1967년 여천출생인 이미랑은 1987년 조선대 2학년 재학당시 출전했던 캠퍼스 송 대회에서 동상 입상(이건환 사ㆍ곡ㆍ작은 요정). 같은 해 전남대ㆍ조선대 캠퍼스 송 입상자들과 함께 MBC 별밤 토요 특집에 출연, 당시 연출자 김승재 별밤 PD의 권유(이미랑ㆍ네 목소리 너무 좋다! 너 별밤 가족에 들어오지 않을래?)로 음악활동을 시작했다. 그해 겨울 우연히 학교선배의 손에 이끌려 예기치 않던 공연 관람을 하게 됐는데 바로 광주 MBC 별밤가족 콘서트였다. 그 후 용기를 내 별밤가족을 찾아 오디션을 보고 본격 별밤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음악의 길에 들어선다. 당시 별밤가족과 꼬두메가 공간은 다르지만 한울타리로 느껴졌고 양 그룹에 몸담고 있던 기현수, 오영묵으로 부터 권유로 꼬두메에도 발을 내딛게 된다.
박동찬의 건의로 포엠 콘서트의 장을 열었던 한보리(작곡ㆍ작사가), 조용필, 나미 등 기라성 같은 가수들의 유명 히트곡 작사가인 김순곤, 2011년 중국영화 '철 피아노'의 음악감독으로 제작에 참여한 오영묵(작곡가), 바위섬 작곡ㆍ작사가 배창희 교수, 광주전남 한국화의 큰 맥을 잇고 있는 장현우 화백, 무등일보 편집국장 출신여균수 기자 등 사회ㆍ문화 제 인사들이 꼬두메 회원이었다. 이미랑은 별밤과 꼬두메에서 음악적 경험을 쌓고 공연과 음반(옴니버스) 작업에 참여하며 빛고을 광주에서 맑고 청아한 목소리로 이름을 알린다. 간간히 소리모아 스튜디오(대표 박문옥)에서 광고음악(CM송)과 캠페인송에도 참여한다.
●최고의 광고 '무등아리랑' 1991
1991년 광주 MBC에서 '무등산을 사랑하자'라는 주제로 무등산 사랑 캠페인송 가사를 방송을 통해 공모했다. 최우수작으로 무등산 사계를 글로 잘 표현한 박천 선생의 '무등 아리랑'이 선정되고 그 글에 소리모아 박문옥이 곡을 붙여 스튜디오에서 녹음, 이미랑의 목소리로 '무등 아리랑'이 탄생됐으며 MBC 방송을 통해 광주권내에 널리 알려진다. 당시 새벽마다 동네 골목골목을 누비던 미화(쓰레기 수거)차량에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필자가 조사한 광주시청 기후변화 대응과 자료에 따르면 광주권내 5개구 청소 미화차량 운용 댓수는 180대다. 일반(쓰레기 봉투수거) 82대, 음식물쓰레기 수거 74대, 재활용품 수거 19대, 기타 지도차량 5대 등이다. (2015년말 기준) 1991년부터 10여 년간 광주권 내 미화차량 스피커에서 새벽마다 이미랑의 '무등 아리랑'이 도심전반과 골목마다 울려 퍼졌다. 계산을 해보니 180대×1대당 (1일 2시간 40회)=7200회(1일), 1년 8만6400회, 10년이면 86만회 노래가 울려 퍼진 셈이다. 이보다 더한 광고 효과가 또 어디 있을까. 청소차량과 '무등 아리랑', 그리고 이미랑. 묘한 인연이다.
그 후 서울 남도학숙에서도 '무등 아리랑'이 매일 기상ㆍ식사시간에 사용됐다. 아름다운 곡이지만 새벽잠을 설치게 한 미운 곡으로도 기억에 남는다고 그곳을 거쳐간 학생들의 이야기도 전해진다.
1989년 대학4학년 때 시작한 아이들 영어학원을 음악과 병행, 학원을 차려 용봉동에서 운영 중이고 광주영어방송 'Sing Korea'에서 고정게스트로 2년간 참여, 광주 평화방송 오전11시05분부터 생방송 '행복한 라디오'를 진행한바 있다. 현재 오랜 시간 음악치유공연(봉사)을 함께하며 경험을 함께 나누고 있는 '오번줄 밴드(기현수ㆍ한종면)'의 멤버로 2017 하반기 음반출시 및 기념공연을 가진바 있다.
● 예명도 예쁜 인디언 수니. 이인숙
이인숙(인디언 수니) 1972년생 목포생으로 이미랑의 친동생이다. 언니 이미랑 같은 독보적인 목소리는 아니지만 개성 넘치는 기타실력에 4번의 앨범을 낸 뮤지션이다. 2018년 현재 광주를 떠나 군산에서 생활하고 있지만 지금도 무대에서 활기 넘치는 활동을 하고 있다. 특유의 그녀만의 가늘지만 거친 음색에 통기타에 음을 얹기라도 하면 그 누구에게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묘한 색깔의 앙상블이 폭발적으로 나온다.
ㆍ2006년 1집 앨범 '내 가슴에 달이 있다' ㆍ2008년 2집 앨범 '비 오는 날 해바라기' ㆍ2017년 3집 앨범 세계 애창곡 모음 (대니 보이, 올드 블랙 죠, Summer time, 월칭 마틸다 등) ㆍ2018년 4집 앨범 '나무의 꿈', '바닥에 빛나는 것들을 업고' 등.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
국소남의 통기타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