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역사의 보물창고 화순 쌍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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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이야기
송태갑의 정원 이야기> 역사의 보물창고 화순 쌍봉사
  • 입력 : 2020. 02.20(목) 12:52
  • 편집에디터

정교한 목조건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쌍봉사 대웅전

시간의 보물창고 쌍봉사

화순에는 화려하지는 않지만 여느 지역에서 볼 수 없는 독특한 사찰들이 더러 있다. 천불천탑으로 유명한 운주사와 큰 바위를 통째로 깎아 만든 옛 돌다리 보안교(普安橋)로 유명한 유마사, 그리고 목조탑과 돌탑 등 보물로 가득한 쌍봉사 등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쌍봉사는 운주사나 유마사와는 달리 인지도가 널리 알려진 편은 아니지만 사찰 안을 들여다보면 가히 문화유산의 보고라고 할 수 있다. 사찰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건물의 디자인이나 배치 등이 독특한 점에 놀라게 되고 보면 볼수록 건축물의 특이함과 조각상의 섬세한 조형미에 다시금 놀라게 된다. 쌍봉사는 화순군 이양면에 있는 송광사의 말사로 사찰창건과 관련해서는 몇 가지 속설이 있다. 신라 문성왕 때(847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철감선사(澈鑑禪師) 도윤(道允)이 절경에 마음을 빼앗겨 이곳에 머물게 되었는데 절의 앞 뒤 산봉우리가 쌍봉이어서 자신의 도호를 쌍봉이라 하였으며 사찰이름도 쌍봉사(雙峰寺)로 명명했다고 한다. 반면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스님이 세운 곡성 태안사 입구에 부도밭이 있는데 혜철스님의 사리가 담긴 적인선사조륜청정탑(寂忍禪師照輪淸淨塔)에 841년 여름 쌍봉사에서 승려들의 여름수행인 일명 하안거(夏安居)를 지낸 기록이 있다. 이를 토대로 쌍봉사는 철감선사 창건 이전에도 이미 사찰기능을 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는 관점도 있다. 쌍봉사는 풍수지리에 입각하여 지어졌다고 하는데 사찰부지 전체를 하나의 배(船)로 간주하였고 우뚝 솟은 목탑형식의 대웅전은 돛대를 상징한다고 한다. 그런 이유로 사찰 내에는 우물도 파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쌍봉사는 계곡을 타고 거슬러 올라가는 깊은 산 속에 위치하는 일반사찰과는 달리 작은 개울을 건너자마자 만날 수 있는 평지에 지어져 있다. 절 입구에 연못이 있어서 그런지 여염집 풍경을 만나는 것처럼 친근한 느낌이 들 정도이다. 절 안으로 들어가는 순간 건물인지 탑인지 분간하기 쉽지 않은 목조로 건립된 대웅전은 쌍봉사의 상징물(Landmark)로서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니다.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불교가 들어왔을 당시 초기에는 대부분 목탑이 건립되었지만, 부식되거나 화재로 소실되기 쉬워 점차 석탑이 일반화되었다고 한다. 쌍봉사의 목탑은 평면이 정사각형으로 높이 12m 3층 전각으로 일반적인 석탑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현재 우리나라에는 법주사의 팔상전과 더불어 단 두 개만이 남아 있을 정도로 매우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이 가치를 인정받아 오래전부터 보물로 지정되어 보전해 왔었다. 하지만 현재의 목조탑은 예전 모습이 담긴 사진과 다소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이유는 무엇일까? 1984년 4월 초팔일에 한 신도가 예불을 드리기 위해 촛불을 켜놓았는데 그것이 넘어지면서 화재가 발생한 것이다.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소중한 문화재가 일순간에 잿더미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후 1986년에 복원작업을 시작했는데 다행히 1962년 해체수리하면서 그려놓은 그림이 있어 이를 토대로 2년 만에 마칠 수 있었다. 이때 전체적인 형태는 유사하게 복원되었지만 건물내부 목조의 섬세한 짜임새까지 완벽하게 복원된 것으로 평가받지는 못했다. 이로 인해 아쉽게 문화재 지정이 해제되고 말았다. 하지만 목조탑 형식의 희귀한 건물이라는 점에서 여전히 소중한 문화유산임에는 틀림이 없다. 또한 내부는 불상을 모시고 불전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데 17세기 목탑 내부공간의 활용과 그에 따른 구조변화를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런 불상사 가운데서도 아름다운 일화가 전해진다. 당시 건물 안에는 3개의 목불상이 있었는데 근처에 사는 농부가 위험을 무릅쓰고 들고 나와 무사히 원형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목조불상의 크기나 무게로 볼 때 보통사람이 들 수 있을 정도가 아니라는 점에서 매우 신묘한 일로 여겨지고 있다. 목조예술의 볼거리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지장전(地藏殿) 내부를 들여다보면 지장보살상을 비롯해 모두 21개의 목조불상이 빼곡히 늘어서 있다. 대개 진흙을 빗어 만드는 경우가 일반적인데 이곳에서는 모두 통나무를 정성껏 깎아 만들었다. 이 조각상들은 1667년에 조각승 운혜(雲惠)스님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그 가치를 인정받아 보물 제1726호로 지정되어 있다. 특히 운혜스님은 17세기 중후반 불교조각에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시왕상(十王像)의 경우 목재는 인도에서 도료는 중국에서 들여와 사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현대의 어느 조각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섬세하고 미려한 선(線)의 향연을 보여주고 있다. 세월이 흘러 색감은 많이 변했지만 그 아름다움의 깊이만큼은 여전히 간직하고 있다. 한편 쌍봉사에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전각이 있는데 바로 호성각(濩聖閣)이다. T자형 맞배지붕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보기 드문 건축양식이다. 일반적으로 한 일자(一) 형식을 취하고 있는 이유도 T자형 맞배지붕은 실제 짜 맞추기가 어려워 기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원래 호성전은 조선 7대 임금인 세조의 위패를 모셨었으나 지금은 철감선사와 중국 선불교의 거장인 조주선사(趙州禪師, 778~897)의 영정이 나란히 봉안되어 있다. 이 두 분이 인연을 맺은 것은 철감선사가 중국에서 유학할 때이다. 불교를 공부하기 위해 정착한 곳이 바로 차 문화가 발달한 당나라 안휘성(安徽省)이었다. 그곳에서 남전보원(南泉普願, 748∼835)의 제자가 되었는데 조주선사는 동문수학하던 동료였다고 한다. 그 후 조주선사는 차를 선(禪)의 경지로 끌어올린 스님으로 유명한데 다선일미(茶禪一味)가 바로 그것이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조주스님에게 도(道)란 무엇입니까? 라고 질문하면 그는 그저 미소 지으며 '차나 한잔하고 가시지요'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의 사상은 철감선사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으며 이를 계기로 차를 사랑하게 되었다고 한다. 쌍봉사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목조만이 아니다. 목탑의 기초석이 다듬지 않은 자연석을 사용하고 있는 점도 특이하고 여지저기에서 볼 수 있는 석축은 통일신라 때부터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시대별로 조금씩 다른 특색 있는 석축양식을 두루 감상할 수 있다. 특히 사찰 뒤편으로 눈길을 돌려 대숲을 끼고 있는 산책길을 오르면 쌍봉사의 숨겨진 보물 철감대사 승탑(국보 제57호)과 탑비를 볼 수 있다. 우리나라 승탑의 백미로 꼽히는 이 승탑은 통일신라 말기의 대표적 양식인 팔각원당형으로 높이 2.3m에 달한다. 탑의 전체적인 균형미도 놀랍지만 세부조각의 정교함은 가히 독보적이다. 지붕의 기왓골 끝자락에는 동전 크기의 수막새를 만들어 일일이 연꽃문양을 새겨 넣었다. 두 개의 단으로 만들어진 밑돌에는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사자의 모습이 각각 새겨져 있는데 저마다 다른 자세로 익살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탑 몸체에는 모서리마다 각각 기둥 모양으로 새기고 또 각 면에는 문비, 사천왕상, 비천상 등을 아름답게 새겨 놓았다. 승탑 옆에 있는 탑비는 현재 몸돌(비신)은 존재하지 않고 받침돌(귀부)과 머릿돌(이수)만 남아 있다. 용이 여의주를 물고 있는 거북을 유심히 살펴보면 오른쪽 앞발을 살짝 들고 있는데 그 모습이 마치 금방이라도 살아 움직일 것만 같은 생동감이 느껴진다. 이처럼 쌍봉사 구석구석에 남아 있는 역사의 흔적들을 들여다보면 우리나라 불교건축과 미술의 깊은 맛을 한껏 맛볼 수 있다.

쌍봉사의 풍경을 지키는 꽃과 나무들 그리고...

유서 깊은 쌍봉사의 골격이 건물과 탑, 석축 등에 의해 만들어졌다고 한다면 마지막 완성은 요소요소에서 자리 잡고 있는 꽃과 나무 등 계절마다 색다른 느낌을 주는 다채로운 식물들에 의해 이루어진다고 할 수 있다. 봄에는 개나리, 옥잠화, 여름에는 팽나무와 느티나무, 가을에는 감나무와 단풍, 그리고 겨울에는 대나무 등이 역할을 분담하며 쌍봉사의 풍경을 지켜가고 있다. 그밖에도 담장을 타고 오르는 담쟁이넝쿨과 마삭줄, 그리고 오래된 석축 사이사이에서 세월의 깊이를 일깨워주는 다양한 이끼들도 톡톡히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마지막 풍경의 완성은 다름 아닌 사람이다. 이것저것 둘러보는 사람들이 귀찮을 법도 할 터인데 절에서 일하신 분이 넌지시 말을 건네주었다. 때마침 점심시간이라는 것을 의식해서인지 맛없는 절밥이라도 한 술 하시겠냐고 물어주는 살가움이 너무 고맙다. 자연은 계절에 상관없이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며 사람들에게 크고 작은 기쁨과 위로를 선사한다. 그러나 제아무리 아름다운 자연풍경도 사람들의 친절한 모습을 대신할 순 없다. 누군가로부터 배려 받고 있다는 느낌은 그곳이 어떤 장소냐에 상관없이 잔잔한 감동을 준다. 그래서일까? 쌍봉사의 풍경이 더욱 정겹게 느껴진다.

가을풍경과도 잘 어우러지는 쌍봉사 대웅전 목조탑

가을풍경과도 잘 어우러지는 쌍봉사 대웅전 목조탑

정교함과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

정교함과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

정교함과 우아함의 극치를 보여주는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

앞쪽의 철감선사탑비(보물 170호)와 뒤쪽의 철감선사탑(국보 제57호 )

쌍봉사의 대웅전이 위용을 자랑하고 있다.

목조건물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는 쌍봉사의 대웅전

대웅전 옆에 잘 가꾸어진 화단이 눈길을 끈다.

잘 가꾸어진 화단이 대웅전을 돋보이게 한다.

쌍봉사의 랜드마크가 되고 있는 대웅전

편집에디터 edit@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