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썩고 말라 죽고’… 봄철에도 새싹 나지 않는 가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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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썩고 말라 죽고’… 봄철에도 새싹 나지 않는 가로수
●무분별한 가지치기 후유증
병해충 무방비·밑동 큰 구멍도
도포제 살포 등 사후관리 부족
전문가 “촘촘한 관리대책 필요”
  • 입력 : 2023. 04.26(수) 18:40
  • 정성현 기자·박소영 수습기자
26일 찾은 전남대사거리 인근에 식재된 나무들이 병해충 등으로 인해 속이 뚫려 있다.
도시 미관 향상과 오염물질 저감·열섬효과 완화 등을 목적으로 식재된 광주 관내 가로수들이 ‘마구잡이 가지치기’로 몸살을 앓고 있다. 전문가들은 ‘병든 나무는 전도 등 기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행정당국의 수종별 관리대책 마련 등을 촉구했다.

● 흉물처럼 변해버린 가로수

“보세요. 곧 5월인데 잎 하나 없잖아요. 그냥 죽은 나무를 전시해놓은 것 같아요.”

김화진(24)씨는 지난 25일 전남대 정문에서 인근 전대 사거리 까지 이어진 플라타너스 길을 보며 ‘나무들에게 미안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버스정류장에서 내리면 항상 (나무들과) 마주하는데, 몸통만 남은 가로수들을 보면 손과 발이 잘린듯한 느낌을 받는다”며 “솔직히 기분이 좋지 않다. 흉측한 미관에 괜스레 죄책감마저 든다. 구멍이 뚫리고 잎이 나지 않는데도 왜인지 별다른 조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의아해했다.

김씨의 말처럼 이곳 길가에 자리 잡은 플라타너스들은 전봇대같이 앙상한 모습을 보였다. 몸통 곳곳에는 비정상적인 혹이 나 있거나 병·해충으로 인한 구멍이 선명했고, 그곳에는 해충이 나무를 갉아먹고 나온 부산물로 가득했다. 인근 전남대 교정에서 보이는 건강한 플라타너스와 아주 상반된 모습이었다.

이런 현상이 발생한 것은 과도한 가지치기 후 도포제 등과 같은 사후관리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북구 공원녹지과 관계자는 “해당 장소는 한국전력에서 가지치기를 담당했다. 전선 엉킴이나 잎이 하수구를 막는다는 민원이 많은 지역이라 기존보다 더 쳐 달라고 요청하긴 했다”며 “가지치기 이후에는 (도포제를 바르는 등) 따로 관리를 하거나 하지는 않았다”고 전했다.

다음날 찾은 동구 남광주시장 인근의 천변길도 몸통만 남은 가로수(버드나무)들로 즐비했다. 해당 나무들은 꽃가루·포자가 날린다거나 새가 둥지를 튼다는 이유로 모조리 잘려나갔다.

광주천변을 자주 산책한다는 김모(72)씨는 “나무가 도저히 살 수 없게 가지치기를 해놨다. 씨앗이 좀 날린다고 이렇게 잘라놓는 법이 어디 있나”며 “생장을 고려해서 잘라야 한다. 이렇게 무차별적으로 잘라놓고 약제도 발라주지 않았다. 나무들 보고 그냥 죽으라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광주시내 도심 가로수가 가지치기로 수난을 겪고 있다. 광주 동구 천변우로의 버드나무들이 무분별하게 잘려있다.
● “전문적인 도심수목 관리 있어야”

전문가들은 나무의 생장을 방해해 속이 썩어 들어가면 전도 등 기타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특히 과도한 가지치기는 가로수 부패의 큰 원인이라고 한목소리로 말했다.

가지치기는 가지를 잘라내는 양에 따라 약전정과 강전정으로 나뉘는데, 이를 구분 짓는 명확한 기준이 없으니 대부분 비용·시간이 절감되는 ‘강전정’을 고수한다. 강전정은 새순이 나기 전인 1~3월 가지 대부분을 잘라내는 것을 말한다.

최진우 ‘가로수를아끼는사람들’ 대표는 “국제수목관리학회에는 (가지치기 시) 나뭇잎의 25% 이상을 제거하지 않도록 규정돼 있다. 나무의 건강에 치명적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잘 지켜지지 않는다”며 “제대로 생육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사후관리도 제대로 되지 않으니 나무가 잘 살수 없다. 나무에 부후균이나 해충이 들어서는 순간 나무 전체가 죽는다고 봐도 무방하다”고 강조했다.

김중태 내일이 빛나는 광주나무병원장은 “썩거나 죽은 나무는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속은 ‘텅’ 비어있다. 이런 가로수들은 바람이 세게 불거나 비가 오면 도로나 인근 건물을 덮쳐 사고를 야기하기도 한다”며 “가지치기는 나무를 위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무분별하게 해서는 안 된다. ‘올바른 가지치기’를 위해 수종별 가지치기 방식을 세분화하고 나무 전문가 등을 활용해 촘촘한 관리 지침을 만들어야 한다. 나무의 생명을 지키는 방법은 병해충 사전 예방이 최고의 수단이다”고 제언했다.

정성현 기자·박소영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