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에서 전쟁같은 삶…난 1톤 트럭이었당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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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전쟁같은 삶…난 1톤 트럭이었당게”
시장의 나의 힘
광주여성가족재단 엮음 | 무료 배포
  • 입력 : 2023. 06.15(목) 16:15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광주의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여성상인 6명의 구술 채록을 엮은 책 ‘시장의 나의 힘’에 소개된 왼쪽부터 박수복, 박금자, 한순덕, 구순자, 정명순, 문경자. 광주여성가족재단 제공
광주여성가족재단이 광주의 전통시장에서 일하는 여성상인 6명의 구술 채록을 엮어 책 ‘시장은 나의 힘’을 15일 발간했다. 책은 재단이 추진하고 있는 광주 여성사 발굴 및 아카이빙 사업의 두번째 결과물이다.

이번 구술 채록집은 서민들이 기술이나 자본과 같은 특별한 진입장벽 없이 경제활동을 할 수 있었고, 산업화 전후 생계유지의 수단으로써 많은 여성들이 유입돼 상업에 종사한 측면, 즉 ‘시장의 공간성’에 주목하고 있다. 구술에 참여한 여성상인들은 1970년대 시장에 진입해 1980~90년대 초반까지 전통시장의 황금기를 보내고, 1990년대 중반부터 쇠락하기 시작한 전통시장의 역사를 온몸으로 살아낸 이들이다. 이들은 시장의 진입 계기와 업종별 노동 경험, 시장 특성에 따른 상업행위의 차이, 일과 가정의 양립, 장사의 기술과 원칙 등을 구술했다.

책에서 소개된 여성상인은 △양동시장의 박수복(1943년생, 장사경력 54년, 식당) △서방시장의 박금자(1949년생, 장사경력 48년, 방앗간) △대인시장의 한순덕(1951년생, 장사경력 45년, 가방판매) △남광주시장의 구순자(1961년생, 장사경력 41년, 수산물판매) △양동시장의 정명순(1958년생, 장사경력 41년, 한복 제작) △말바우시장의 문경자(1960년생, 장사경력 32년, 과일판매) 등 총 6명이다. 연령은 62세부터 81세에 걸쳐 있으며 장사경력은 최소 32년 최대 54년에 이른다.

이들이 시장에 진입하게 된 계기는 다양하다. 리어카에서 호떡과 튀김을 파는 등 거리에 좌판을 열다가 점포를 얻게 된 이가 있고, 부모나 시어머니가 운영하던 가게를 이어 받은 이도 있으며, 시장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친지의 권유로 장사를 시작하게 된 이들도 있다. 여성상인들은 저마다 장사철학을 세웠다. “이득 덜 보고 잘 만들어주면 손님이 따르게 돼 있다(박수복)”, “사고 안 사고를 떠나서 가는 사람을 기분 나쁘게 해서는 안된다(한순덕)”, “막 싸게는 안 드리지만 최고 싱싱하고 좋은 물건을 갖다가 정직한 가격을 드리려는 그 마음으로 제가 장사를 해요(구순자)” 등이 있다.

새벽부터 밤 늦게 점포를 지켜야 하는 상인이자, 아내와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수행해야 했던 구술자들은 그 삶을 ‘전쟁’같았다고 표현한다. 특히 임신과 출산, 양육의 시기에 장사를 겸해야 했던 여성들은 친정어머니나 시어머니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그럴 수 없을 경우 아이를 점포에 눕혀놓고 손님을 맞았으며, 급할 때는 이웃 상인에게 맡겨 놓기도 했다. 기저귀와 분유 등 한 보따리를 싸들고 출근하는 자신을 ‘1톤 트럭’ 같았다고 표현한 구술자도 있었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경험도 소개돼 있다. 시장의 여성상인들의 ‘주먹밥’을 통해 광주 공동체를 실현했다. 광주가 봉쇄되고 군인들이 들이닥치고 자동차가 불타고 총소리가 나는 도시 한가운데, 여성들은 ‘우리 애들 밥이나 먹이자’는 단순하지만 고귀한 연대를 실천했다. 이는 광주가 끝까지 저항할 수 있는 밥심이 됐다. 그 이야기 또한 책을 통해 접할 수 있다.

이들은 광주 전통시장의 산 역사이자 주역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여성상인들에게 시장은 그저 물건을 파고 돈을 버는 생존의 공간을 넘어 여성 경제인으로서 정체성을 그려낸 성장의 공간이었다. 책에 소개된 여성상인들의 이야기는 시대의 변화에 따른 시장의 부흥과 쇠락 등 서민 경제의 역사이기도 하다.

김경례 대표이사는 “전통시장을 자신의 일터이자 삶터로 삼고 최선을 다해 생활을 일군 여성상인들의 생생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런 여성들의 삶이야말로 광주공동체를 만들어온 저력이자 문화적 유산이다”며 “책의 제목처럼 ‘시장은 나의 힘’이고 ‘여성은 광주의 힘’인 것이다. 앞으로 재단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록해야 할 광주여성들의 활동과 삶을 역사로 만드는 일을 지속하겠다”고 말했다.

구술채록집은 무료로 배포되며 구독 신청은 구글 폼(https://forms.gle/4xYGVkhFcgTNEtre9)으로 하면 된다. 자세한 내용은 (062-670-0565)로 문의.
시장의 나의 힘.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