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상화가의 '새로운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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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천상화가의 '새로운 생'
■ 광주신세계갤러리 김보현 1주기 추모전
美 "표현주의에 동양의 정신 소개"
98세 작고 직전까지 작품활동 계속
  • 입력 : 2015. 01.23(금) 00:00
지난해 작고한 김보현 화백의 추모전이 23일부터 광주 신세계갤러리에서 열린다. 김 화백의 '가족'.
지난해 2월 미국에서 98세의 한국인 노(老)화가가 작고했다. 서양화가 김보현이다. 고인은 1955년 미국으로 이주, 추상표현주의에 서예적 기법과 정신을 접목시킨 추상회화 및 낙원을 형상화한 구상회화로 명성을 얻는다. 'Po Kim'으로 더 널리 알려진 그를 기리기 위해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미술계 내외 저명인사들이 모여 추도식을 가질 정도로 김보현의 작품 세계는 그 위상과 독자성을 인정 받아왔다.

한 미술평론가는 "김보현은 2014년 98세로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붓을 놓지 않았다. 이번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작품 '새로운 생'은 그의 최후의 대작이다. 평생 피안의 세계를 응시해 온 김보현은 삶을 마무리하는 시기에 이르러서 외려 화면에서 관념의 세계를 걷어낸다"고 밝혔다.

<그림1오른쪽>광주 신세계갤러리가 미국 추상표현주의에 동양의 정신을 불어넣었다는 평가를 받는 재미 1세대 회화작가인 고(故)김보현의 1주기 추모전을 개최한다. 이번 전시는 지난 12월 신세계갤러리 본점 전시를 시작으로 광주신세계갤러리(1.23-2.24), 신세계갤러리 센텀시티(2.26-3.30), 신세계갤러리 인천점(4.1-4.27)으로 이어지며 5개월간 신세계갤러리 전점을 순회한다. 특히 2월7일 1주기 기간에는 고인이 교편을 잡았던 조선대학교를 비롯해 광주와의 깊은 인연을 염두해 광주신세계갤러리에서 전시가 진행된다.

김보현의 작업은 그의 굴곡 많은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김보현이 '보현(寶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던 것은 그의 화업 60년에서 고작 10여년에 지나지 않는다. 일본에서 미술교육을 받은 후 1946년 귀국해 조선대 미술대학의 교수로 재직하던 김보현은 해방 후의 혼란기에 좌익혐의로 고문을 당하는 등 고초를 겪는다. 역설적이게도 6ㆍ25 발발 후 인민군 치하에서는 친미반동 혐의로 시달렸다. 좌ㆍ우익 모두로부터 정신적, 신체적 고초를 겪은 김보현은 1955년 일리노이 대학 교환 교수 신분으로 미국으로 건너가 40년간 한국은 물론, 한국 미술계와 철저히 단절한 채 '포 킴(Po Kim)'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한다.

김보현의 60년대 추상표현주의는 당대 유행하던 미국적 추상표현주의와 구분되는 독자성으로 현지 미술계의 주목을 받게 된다. 당시 저명화가들이 '무의식'으로부터 영감을 얻어 제스처나 우연적 효과에 집중한 반면, 김보현은 서예의 획을 긋듯 사색과 집중에서 비롯된 의식적인 붓질로 화면을 구성했다.

이번 광주 신세계갤러리에서 선보이는 작품들은 70년대 정밀화와 80~90년대 대표작을 비롯해 작고하기 2년전 제작된 대작 등 30여점이다.

70년대 고도의 관찰력이 돋보이는 정밀묘사화는 추상화인 전작들과의 연계성을 찾기 어려워 보인다. 60년대 말 한국에 있는 가족과의 관계를 비롯해 한국과의 철저한 단절 속에 70년대에 그려나간 정밀묘사화는 심리적 수행의 과정으로 보인다.

"본질을 방해하는 것을 비워내고 대상만을 남겨 초월적 진실을 추구한다"는 작가의 말처럼 목적론적 측면에서 그의 정밀묘사는 전작인 사색적 추상회화와 궤를 같이 한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즈는 그의 정밀회화가 "사실주의와 추상주의가 절묘하게 조화된 수작"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80년대 후반부터는 대작 유화들을 이어갔다. 이 새로운 시리즈에는 추상표현주의의 역동적 필치와 사실적 구상성이 한 화면에 섞여있다.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김보현이 청년시절 고통스럽게 겪어낸 악몽의 반대편에 있는 이상향, 즉 낙원의 파노라마를 엿보게 된다.

광주 신세계갤러리 관게자는 "김보현 작가는 96세의 노구를 휠체어에 의지한 채 거대한 캔버스를 호방하게 채우며 '온 몸으로 그릴 수 없는 것이 안타깝다'는 말을 남겼다"며 "신세계갤러리에서 생의 마지막을 맞아 자신의 신체와 생명력을 캔버스에 오롯이 남겨 놓은 작가를 마주해 보기 바란다"고 밝혔다.

박성원 기자 swpark@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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