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우애로 똘똘 뭉친 남한 최북단 호남향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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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동정
향우애로 똘똘 뭉친 남한 최북단 호남향우들
[출범 60주년 수도권 향우회 현주소] 연천호남향우회연합회
휴전 이후 38선 넘어 본격 이주
전체인구 20%넘은 1만2천여명
"이젠 남부럽지 않게 살아요"
  • 입력 : 2016. 11.18(금) 00:00
송영종 향우회장
휴전선과 접한 남한 최북단 경기도 연천군. 6ㆍ25 이후 우리군이 한탄강과 38선을 돌파해 수복한 곳이다. 한탄강 인근 도로변엔 지금도 38선돌파기념비가 세워져 있는 곳이다.

긴장감이 감도는 최전방 지역의 분위기는 전라도와는 완연히 차이가 난다. 이곳에도 전라도사람들이 생계를 찾아 이동, 자리를 잡았다. 연천군 인구(5만명)의 20% 이상인 1만2000여 명으로 추산되는 향우수에서 호남인들의 이동행렬을 짐작하게 한다. 당시 전국에서 몰려들었지만 호남향우들이 가장 많다는 점에서도 호남인들의 생활력을 알 수 있는 곳이다.

"전쟁의 포화가 빗발쳤던 곳이어서 탄피를 주워서라도 살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이곳으로 이동했다"는 향우들의 회상 속에는 1950년대 이후 절박했던 호남인들의 생활상이 묻어나고 있다.

실제로 향우들은 정착초기에는 군부대와 관련된 일을 많이 했다고 한다. 최전방이라는 특성 때문에 군량미나 군사물품이 유통돼 이와 관련된 일들을 하면서 점차 뿌리를 내렸고, 군 생활을 한 뒤 여기에 눌러앉은 향우들도 10%에 이른다고 한다.

또 일부는 싼 농지를 개간해 자리를 잡아갔고 이제는 땅값이 올라 땅부자가 된 사람들도 상당수에 이른다고 향우회측은 전했다.

수복 직후인 1950년말부터 이곳으로 찾아든 호남향우들은 정착초기 전라도민회라는 이름으로 고향의 정을 나누었다. 그러나 본격적인 향우회 활동은 1992년 '재연천호남향우회연합회'가 탄생하면서부터다.

대부분의 향우들이 자립기반을 다지면서 향우회 활동도 더욱 탄력을 받았다. 경기도내 다른 호남향우회에서 연천향우회를 본받고 싶다고 할 정도라고 한다. 특히 60~70대가 주류를 이루는 연천향우회는 단합이 잘 되는 향우회로 알려져 있다.

본회와 5개 읍ㆍ면 지회로 구성된 연천향우회는 매달 21일 월례회의를 통해 꾸준히 향우간 친목을 도모하고 매년 300명 이상이 참여하는 정기총회를 개최, 전체 향우들의 총의를 모은다.

특히 고향까지 버스로 7시간이 걸리는 먼 곳이지만 이곳 향우들도 고향의 주요 행사때면 적극 참여하고 있다. 여수엑스포, 순천만정원박람회때는 버스를 대절, 2~3차례 고향방문행사를 갖기도 했다.

특히 이곳 향우들은 고향방문때면 일체의 물품구입이나 행사비로 신용카드 대신 현금으로 지불한다고 한다. 고향땅에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기 위한 배려라고 한다.

송영종(74) 연천호남향우회연합회장은 "연천이 제2의 고향이 됐지만 고향을 사랑하는 향우들의 마음은 어느 향우회 못지 않게 크다"면서 "지금까지와 같이 연천호남향우들의 단결력과 화합하는 모습을 보여주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덕균 선임기자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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