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8일 치러진 2016년 제45대 미국 대선에선 많은 사람들의 예상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힐러리가 우세하리라던 언론 예측과 여론 조사 결과를 뒤엎고 트럼프가 당선된 것이다. 미국 사회는 새 대통령을 선출한 기대보단 걱정과 우려, 당혹감과 자괴감에 휩싸였다. 불통과 막말, 인종 차별과 보수편향적인 정책, 잇따른 스캔들로 비호감 정치인 1위로 꼽히면서 소속당의 지지조차 받지 못하던 트럼프의 다선은 그 자체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대선이 끝난 불과 일주일 뒤인 11월15일 미국 최대 온라인서점 아마존은 이른 아침부터 가벼운 흥분이 가득했다. 선거가 끝나면 당선자의 책이 정치 분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이 당연한 현상이었지만 이날 출시된 책은 달랐다. 책의 저자는 본선은 커녕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에서 힐러리에게 패해 고배를 마신 정치인 버니 샌더스 였다. 그의 저서 'Our Revolution : A Future to believe in'은 발매되자마자 단숨에 정치 분야 정상에 오르더니 오후가 채 되기 전에 소설, 에세이, 경제경영 분야의 베스트셀러를 제치고 아마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했다. 미국 대통령 당선인은 트럼프지만 일주일이 넘도록 아마존 대통령은 버니 샌더스였던 셈이다.
이 책이 출간되기 전에, 미국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이 본격적으로 시작되기 전인 2015년 12월 아웃사이더 정치인 버니 샌더스는 유일한 자서전 '버니 샌더스의 정치 혁명'을 출간한 바 있다. 이 자서전은 샌더스의 어린 시절부터 학생운동과 시민운동을 거쳐 정장 양복 한 벌 없는 무소속 사회민주주의자가 버몬트 주 벌링턴 시장 선거에 출마해 당선되고 미국 하원의원과 상원의원을 역임하며 2016년 대선에 출사표를 던지기까지의 정치 역정을 소상하게 담았다. 이번에 출간된 책 '버니 샌더스, 우리의 혁명'은 자서전의 마지막 페이지 다음부터 이어지는 기록이다.
책은 미국 정치 역사상 유례없는 돌풍을 일으킨 2016년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전이 어떻게 치러졌으며 그 성과는 무엇인지 자세히 검토하고 회고한다. 이어 버니크래츠(버니 샌더스+데모크라츠)와 샌더스 키즈들을 위한 샌더스의 정치구상과 미국 사회를 아래로부터 근본 혁신하기 위한 정책 과제들을 다뤘다. 저자는 마치 타운 미팅에 참석한 주민들에게 말하듯 침착하고 알기 쉬우면서도 열정을 가득 담아 정치 혁명 과제를 설명한다. 책은 이처럼 한때 관심을 모았던 유력 정치인의 회고록에 그치지 않는다. 앞으로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에 더 많은 시간과 지면을 할애한 책이다. 저자는 "이 책은 역사를 만든 우리의 선거운동을 설명한다. 하지만 우리의 선거운동이 어땠는가보다 더 중요한 것은 간절한 마음으로 미래를 바라보는 것이다. 그러면 경제적ㆍ사회적ㆍ인종적ㆍ환경적 정의라는 원칙을 토대로 미국이 나아갈 새로운 길이 펼쳐질 것이다. 그 길은 우리의 자녀와 손주를 위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다. 싸워서 반드시 얻어내야 할 길이기도 하다. 투쟁은 계속돼야한다"(본문 17p)라고 주장한다.
지난해 가을부터 대한민국은 한국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은 적폐에 항의해 촛불을 들었고 그 결과 새 정부의 조기 출범이 이뤄졌다. 수개월동안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의 힘은 앞으로 어디를 향해야 할까. 이제야말로 우리 사회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우리 자녀와 손주들을 위한 큰 구상과 사회적 합의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때가 아닐까. 이 시점에서 이 책은 대한민국 독자에게도 큰 울림을 줄 것이다.
오민지 기자 mjoh@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