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설갑수>5·18을 유엔으로 가져간 하얀 셔츠의 사나이 김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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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기고·설갑수>5·18을 유엔으로 가져간 하얀 셔츠의 사나이 김양래
설갑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영문판 역자
  • 입력 : 2023. 09.20(수) 12:50
설갑수 번역가
얼마전 소천한 김양래 518 기념재단 상임이사는 1980년대 말 학번인 내게는, 망월동 묘역을 안내하던 ‘하얀 셔츠 입은 훤칠한 사내,’ 광주 비디오를 만든 전설의 인물이었다.

2016년, 그 전설적 인물이 나와 닉마마타스가 번역·편집한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 의 영문판 5·18 재단에서 개정출판하고 싶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또한, 내게 이듬해 5월에 뉴욕의 유엔본부에서 항쟁기념 행사를 개최하려 하니 도와달라고 요구했다. 요원한 얘기였다. 박근혜 탄핵 이후, 한국은 여전히 극우 황교안 대행 체제 하에 있었다. 그런데, 그가 4월 20일, 불쑥 뉴욕에 왔다. 정부를 설득 하여, 5월 26일에 유엔의 공간은 잡았으나, 연사도 프로그램도 못 정했으니, 여하튼 한 번 해보자고 말했다. 그가 뉴욕에 머무는 5일 동안, 우리는 움직이며 회의를 했다. “민주주의와 자유의 집단 기억”라는 행사명은 유엔대표부 가는 지하철 안에서 결정할 정도였다. 문제는 연사였다. 브루스 커밍스 교수와 항쟁을 취재한 AP 기자 테리 앤더슨 정도는 불러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바쁜 커밍스에 대해 자신은 없었다. 나는 도널드 그레그를 초청할 것을 제안했다. 5·18 당시에는 백악관 아시아 안보담당관인 그는 80년대말 주한 미대사를 지낸 인물 정도는 와야 구색은 갖출 것 같았다.

우리는 뉴욕 교외에 사는 그레그를 찾아갔다. 난색을 표하는 그에게 김양래 이사가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5·18 대해 아는 것만 이야기하면 된다. 특히, 북한의 개입이 있었는지 없었는지에 대해 명백히 말하면 된다.” 김양래 이사는 당시 독버섯처럼 퍼지고 있는 5·18 북한 개입설을 그레그의 입으로 막고 싶어했다. 결국 그는 연사 초청을 받아들였다. 우익 그레그가 오니, 좌익 커밍스의 성격 상, 거절하기 힘들어졌다. 결국 커밍스도 왔다.

행사는 매우 성공적이었다. 보수언론조차 대대적 보도했다. 앤더슨의 현장 증언에 청중들은 울었고, 커밍스는 스스로가 참여한 한국 관련 행사 가운데 최고라는 찬사를 했고, 그레그는 6개월 정도는 준비한 것 같은데 수고했다는 오해 섞인 과찬도 했다.

“이제 5·18 재단을 유엔 산하 비정부기구(NGO)로 정식 등록하는 일이 남았어.” 행사 후, 김양래 이사가 선언하듯이 한 마디를 툭 던졌다. 그는 5·18의 세계적 위상을 유엔의 권위로 재정립하고 싶어했다. 그래서 유엔 행사에 그렇게 집요하게 매달렸다.

행사가 끝나고, 광주의 절친인 미국 학자 조지 카치아피카스가 이해하기 힘든 비방을 시작했다. 그는 그레그 초청의 계기로 5·18 재단이 CIA의 외곽조직(front)이 됐다며, 그가 재단에 보낸 항의 이메일이 재단 측에 의해 그레그에 전달됐고 CIA 수중에도 들어갔을 거라는 황당한 주장을 퍼뜨렸다.

김양래 이사는 분노하기 보다, 지역 선후배들의 무반응에 섭섭해했다. 나야 저간 사정은 알 수 없지만, 김양래 이사와 그와 같이 이룬 성과를 지켜내고 싶었다. 결국, 나는 공개적으로 카치아피카스와 갑론을박을 했다. 김양래 이사 대신, 카치아피카스의 소아병을 감당해야 한다고 믿었다. 김양래는 그럴만할 가치가 있는 사람이었다.

김양래는 여전히 집요했다. 나는 그에게 미국 정부가 80년대 아르헨티나의 독재 관련 모든 기밀 문서를 삭제없이 제공한다는 소식을 알려줬다. 그는 즉시, 5·18 관련 기밀문서를 검열삭제없이 공개할 것을 미국정부에 요구했고, 마크 리퍼트 대사가 광주를 방문할 때, 공개적으로 그를 압박하기도 했다. 현재 5·18 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의 미국에 대한 온전한 정보 공개는 그의 추진력의 결과다.

그의 소천 소식에, 그가 이뤄낸 일 때문에 슬펐고, 그가 못다한 일 때문에 서러웠다. 광주와 5·18를 보는 전국의 시선이 예전만 못하다. 조폭이 5·18 단체장 되고, 사과도 없는 진압 공수부대와 화해하려 한다. 들불야학 자리에는 고급아파트가 들어섰다. 5·18 주변이 어지러워질수록, 우리를 망월동으로 안내하던 ‘하얀 셔츠 입은 훤칠한 사내’가 그리워지는 것은 나만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