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작가 에세이>“사물을 해석하는 다른 무엇을 찾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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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일보]작가 에세이>“사물을 해석하는 다른 무엇을 찾아야겠다”
임동옥 광주문인협회 이사
  • 입력 : 2024. 03.21(목) 10:48
임동옥 이사
정년 무렵부터 가톨릭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동양화를 배우고 있다. 붓에 먹물을 찍어 화선지에 수묵화를 그린다. 먹물의 농담을 살리고 성기고 빽빽한 이미지 배치와 여백을 살리는 거는 쉽지 않다. 그림에 덧대는 화제 글도 문제다. 고작해야 붓을 든 지 3년째다. 인류 역사와 함께한 예술의 세계를 취미로 넘보니 언감생심 아니겠는가. 그런데도 온종일은 아니어도 매일 붓을 들어 나만의 그 무엇을 찾아보려 한다.

현역 가왕 결승전이 열렸다. 2월 14일 화요일 밤이다. 현역 가수는 항변한다. ‘노래가 뭐길래’ ‘무대가 뭐길래’ 결코 놓지 못하고 노래하는 가수의 길, 무명 시절의 옹이 진 나날의 산물일 거다. 무대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노래로 보답하겠다는 말, 참 찰지게 들린다. 노랫말은 시적이다. ‘모란이 피면 모란으로/ (중략)/ 나에게 찾아와 꿈을 주고/ 너는 또 어디로 가버리나.’ 린의 노래는 나를 압도했다. 원곡 가수 남진의 평이다. ‘칸초네 풍의 노래라서 부르기 쉽지 않았을 텐데, 색다른 음색으로 (상사화를) 재해석한 가수가 있다는 게 놀랍다’라고 말하면서 엄지를 치켜세웠다. 가왕의 호평에 린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비음으로 눌러 부르는 린의 노래는 안정되었고 자기만의 음색은 빛이 났으며 진달래꽃 의상의 선은 감미로웠다. 뭔가 다른 그 무엇이 나를 일깨우는 시간이었다. 한밤중까지 가왕을 보면서 눈은 퀭했어도 마음은 그윽한 노래 향기로 충만했다.

현대미술의 아버지 폴 세잔 이야기다.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난 금수저다. 미술을 전공하기 위해 22세부터 38세까지 파리에서 유학했으나 55세까지 무명 화가였다. 39세에 고향으로 돌아와 ‘조롱과 은둔’의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만의 그림 세계를 위해 열정을 쏟았다. 사물에 비치는 빛의 차이를 인식했다. 인상주의가 놓친 균형과 질서도 찾아냈다. 2차원의 평면에서 3차원의 입체를 도입했다. 사과가 썩을 때까지 그림을 연이어 그렸다. 색의 재구성을 통해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을 탄생시켰다. 드디어 56세에 이름난 화가로 변신했다. 인상주의에서 혁명적인 미학의 관점을 꿰뚫었다. 보이는 데로 그리지 않고 자기 머릿속에 새롭게 구성한 세계를 덧칠했다. 전통 기법은 살리면서 입체로 재해석한 다면적인 세계를 화폭에 담았다. ‘세잔의 그림은 논리적이면서도 매우 감성적’이라는 평을 받는다. 바로 다른 그 무엇을 찾아냈다. 세잔만의 그 다름은 새로운 미술사조로 이끈 동인이다.

27일간 일기를 써 대문호가 된 연암뿐만 아니라 수많은 시인 소설가 수필가도 있다. 기록은 자신의 정신세계뿐만 아니라 역사 문화 사회적인 시대상을 나타낸다. 모두가 문학적 가치는 충분하지만, 시대를 뛰어넘는 글은 많지 않다. 난해한 시를 쓴 이상(1910~1937)은 뭔가 달랐다. 1931년에 등단하여. 대표작으로 시 ‘오감도’(1934), 소설 ‘날개’(1936), 수필 ‘권태’(1937) 등이 있다. 본질을 찾고 시각화한 3차원의 글 세계를 보여주었다. 이상은 조감도를 그리는 건축사인데 글에서는 조감도를 뒤틀어 ‘오감도’를 발표했다. 까마귀가 굽어보는 세상은 입체적이다. 막다른 골목에서 ‘13인의 아이들이 도로를 질주한다. 13인의 아이들이 모두 무섭다고 한다.’ 도시에 갇힌 불안감에서 벗어날 수 없는 현대인의 모습이랄까.

제4호는 ‘환자의 용태에 관한 문제’를 난수표 같은 숫자로 나열했다. 제5호는 직선으로 평면도 같은 그림에 덧댄 시제는 ‘날개가 성해서 죽지 못하고 눈이 커도 알지 못한다’. 폐병을 앓는 처진지 모르나 나 같은 범인은 해석 불가다. 지금도 난제의 수수께끼다. 수필 ‘권태’에서는 빈촌의 짖지 않는 개가 등장한다. 최 서방이나 김 서방은 둘 다 남루해서, 구수한 사투리까지 비슷하니 개는 짖지 않는 거란다. 짖지 않는 유전자를 지녔다는 내용은 죽음 앞에선 자신의 이야기일 수도, 암울한 시기 저항하지 못했던 우리의 처지를 비유했을 거라는 생각이 스친다. 당시를 생각하니 섬뜩하고 답답한 느낌이다.

현역 가왕의 노래, 세잔의 정물 사과, 이상 문학은 예술의 나라에서는 모두 형제이고 자매다. 이들은 기존의 예술가와는 차별화된 그 무엇을 찾아냈다.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옛것을 도탑게 익혀 새것을 알면 분명 스승이 될 수 있다. 연암은 웅변했다. 법고창신 하라. 박제가의 문집에 서문으로 써준 글이다. 진실로 옛것을 기준 삼으면서도 변통할 줄 아는 게 ‘법고’요 이로써 새로운 법이 비롯된다면 ‘창신’이 아니겠는가. 바로 법고창신은 예술가가 추구하는 장인 정신인 거다.

한 폭의 그림이 새로운 메시지로 거듭나고, 경험을 사유로 풀어내는 수필이 독자의 마음을 달뜨게 하는 멜로디였으면 좋겠다. 사물을 새롭게 해석하는 다른 그 무엇을 찾아야겠다. 예술가 양반! 새로운 시도를 하다 보면 “뭐가 달라도 다르겄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