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7일 광주 북구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창극단 35주년 기념작 ‘여울물 소리’가 끝난 뒤 이어진 커튼콜. 박찬 기자 |
![]() 지난 7일 광주 북구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창극단 35주년 기념작 ‘여울물 소리’. 박찬 기자 |
깊어져 가는 가을, 판소리의 성지 광주에서 130년 전 백성들이 외쳤던 동학의 자유정신이 깨어났다. 지난 7일 오후 7시30분 예술의전당 대극장은 광주시립창극단 35주년 기념작 ‘여울물 소리’를 관람하기 위해 찾은 관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자 모두 숨죽이며 무대에서 펼쳐지는 열연과 국악기·서양악기가 어우러진 힘 있고 감미로운 음향을 감상했다. 단원의 열정적인 솔로 무대가 펼쳐질 때면 기립박수를 쏟아내는가 하면 해학적인 장면에선 웃음소리를 내며 호응했다.
![]() 지난 7일 광주 북구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창극단 35주년 기념작 ‘여울물 소리’. 박찬 기자 |
![]() 지난 7일 광주 북구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창극단 35주년 기념작 ‘여울물 소리’. 박찬 기자 |
이신통이 연옥과 재회하자 큰절을 올리며 시작된 이야기는 과거로 돌아가 이들이 만나게 된 과정과 역경, 개인적이고 사소한 에피소드 등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이후 극이 막바지에 다다르자, 이들의 재회로 회귀한다.
수많은 인물의 서사와 방대한 이야기를 갖춘 원작을 한정된 시간 안에 전달하기 위해 사건들의 선별 배치와 압축이 이뤄졌다. 특히 시간과 공간을 소설의 전개와는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고 일부 새로운 사건을 추가해 극적 긴장감을 높였다. 당대 출신 신분으로 인한 한계와 현실을 꿰뚫고 이 때문에 자신의 학식과 재주를 숨기고 살아야 했던 한 인물의 삶을 ‘이신통’이라는 극 중 캐릭터로 보여준다.
혼란스러운 세상 속에서 희망을 찾는 대주제로 한 이야기꾼의 인생을 추적하며 또 다른 이야기로 이어지는 형식은 완성도를 높이고 메시지의 전달성을 강화한다. 제국주의의 침입과 함께 이식문화로 시작된 한국 근현대문학의 원류를 더듬어 현대화된 창극으로 재탄생된 작품을 감상하며 관객들은 잘 짜인 서사의 숲에 들어선 인상을 받을 것이다.
![]() 지난 7일 광주 북구 예술의전당 대극장에서 열린 광주시립창극단 35주년 기념작 ‘여울물 소리’. 박찬 기자 |
극의 분위기와 상황에 맞게 시시각각 변하는 무대 조명은 관객으로부터 몰입감을 높였고 섬세한 선율과 웅장한 음의 조화로운 결합은 어느새 혼란으로 가득했던 구한말 시대로 빠져들어 현장을 목도하는 경험을 선사했다.
중후반부 소리꾼들이 국악기를 신명 나게 연주하며 이신통이 이에 맞춰 돌기춤을 추자, 객석에서는 기립박수가 쏟아졌고 이어진 이신통이 홀로 ‘이야기란 무엇인가’를 주제로 노래하자 이날 관객들에게서 가장 큰 호응이 잇따랐다.
극이 후반부로 들어서자, 작품의 주제이기도 한 ‘여향’에 대한 언급이 많아진다. 여음 끝에 오는 고요, 비어 있기도 하면서 채워지기도 하는 끝없이 순환하는 자연의 섭리를 ‘여향’에 빗대 표현하며 소리꾼의 삶을 관조한다.
또 여향을 강조함으로써 끝없이 순환해 미완성의 상태에서 후대에 완성의 한 획으로 전해줄 것을 기대하는 ‘화수미제’의 질문을 남긴다.
이어 극은 모든 극단의 출연진이 주제를 관통하는 ‘하늘의 별들아 우리의 증인이 되어다오’, ‘우리의 이야기를 후세에 반드시 전해다오’를 부르면서 막을 내린다.
강기정 광주시장은 축사를 통해 “광주시립창극단은 광주가 직할시로 승격된 지 3년이 채 되지 않은 1989년 창단돼 광주의 새출발을 함께한 예술단이다. 그동안 국내외 다양한 창극 공연을 선보이며 문화도시 광주의 위상을 높여왔다”면서 “광주비엔날레는 ‘판소리, 모두의 울림’이라는 주제로 전시를 열었으며, 도시 곳곳에서 판소리 공연이 이어지고 있다. 이번 ‘여울물 소리’에서도 ‘광주의 힘’ 판소리를 바탕으로 멋진 공연을 선보인 광주시립창극단에 감사와 축하를 전한다”고 밝혔다.
‘여울물 소리’의 총감독·지휘를 맡은 박승희 광주시립국악관현악단 상임지휘자는 “그동안 광주시립창극단에서는 이순신 등 큰 업적을 세운 위인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작품들을 여럿 선보여 왔다. ‘여울물 소리’는 스펙터클한 연출보다는 인간 중심의 이야기를 디테일하고 완성도 높게 풀어낸 작품이다”며 “극의 배경이 되는 130여년 전과 현재에도 통용되는 인간에 대한 통찰과 ‘끊임없이 찾아오는 선택과 갈등의 순간 어떤 흐름의 삶을 살게 될 것인가’에 대한 담론을 제기했다. 시대를 거스른 공감성을 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동명의 원작을 선택해 각색하게 됐다”고 제작 배경을 밝혔다.
이어 “광주시립창극단은 예향의 도시 광주의 예술을 전국적으로 알리기 위해 대중성 확보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여울물 소리’를 향한 호평 사례에 힘입어 앞으로 서울 진출 등 전국적인 순회공연으로 이어질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길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