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타이거즈 곽도규가 지난달 28일 광주-기아챔피언스필드에서 열린 삼성라이온즈와 2024 신한 SOL뱅크 KBO 한국시리즈 5차전 6회초 2사 1루에서 이재현을 땅볼로 처리하며 수비를 끝낸 뒤 마운드를 내려오며 유니폼을 풀어헤쳐 이너웨어에 새긴 이의리의 이름과 등번호를 보이고 있다. KIA타이거즈 제공 |
올 시즌 KIA타이거즈에는 또 하나의 히트 상품이 탄생했다. 타석에서는 김도영이 ‘슈퍼스타’의 위용을 과시했다면 마운드에서는 곽도규가 ‘MZ 투수’로 존재감을 굳건히 했다.
경기장 안팎의 곽도규는 밉지 않은 개구쟁이였다. 스스로 철이 없었다고 말할 만큼 괴짜 같은 모습들을 선보였지만 동료들이나 팬들에게 결코 미움받을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렇게 많은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됐다.
물론 퍼포먼스만으로 선수가 사랑을 받을 수는 없다. 곽도규 역시 지난 2023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5라운드(전체 42순위)로 KIA의 지명을 받은 뒤 2년 만에 필승조로 발돋움할 만큼 실력을 갈고닦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곽도규는 프로 입단 직후인 2022년 제주 마무리 캠프와 2023년 함평 퓨처스 스프링 캠프에 합류해 제구와 구위 등에 대해 호평을 받았고, 2023시즌 시범경기를 앞두고 열린 자체 연습경기(흑백전)에서 소크라테스 브리토와 황대인, 김석환의 중심 타선을 삼자범퇴로 처리하며 김종국 전 감독에게 눈도장을 찍었다.
비시즌 기간 완벽한 준비를 결과로 증명한 곽도규는 시범경기 엔트리에 전격 포함됐다. 이어 시범경기 5경기에서 4이닝을 무실점으로 틀어막으며 신인 중에는 유일하게 개막 엔트리에 오르는 쾌거를 이뤘다.
곽도규는 2023시즌 71일간 1군 엔트리에 등록된 가운데 14경기에서 11.2이닝을 소화하며 승패 없이 평균자책점 8.49의 성적을 남겼다. 충분한 가능성을 엿보인 만큼 시즌 직후 호주 프로야구(ABL) 캔버라 캐벌리와 미국 드라이브라인에 파견돼 역량을 강화할 수 있는 기회도 받았다.
유학을 다녀온 곽도규는 이범호 감독과 손승락 수석 코치, 정재훈 투수 코치, 이동걸 불펜 코치 아래에서 필승조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올 시즌을 앞두고 시범경기 4경기에서 3.2이닝을 무실점으로 소화하며 다시 한번 ‘미스터 제로’의 위용을 과시했다.
정규시즌에 돌입한 뒤 곽도규는 71경기에서 55.2이닝을 소화하며 4승 2패 16홀드 2세이브와 평균자책점 3.56의 성적을 거뒀다. 장현식과 전상현, 정해영의 ‘J-J-J 트리오’와 함께 가장 믿음직한 불펜 자원으로 거듭난 것.
한국시리즈에서도 곽도규의 존재감은 여전했다. 1차전 서스펜디드 게임과 2차전, 4차전, 5차전에 모두 구원 등판한 곽도규는 4이닝을 무실점으로 책임졌다. 피안타는 두 개에 그쳤고 사사구는 전무했던 완벽한 투구였다.
특히 곽도규는 이번 한국시리즈에서 2승을 챙긴 유일한 투수가 됐다. 1차전에서는 0-1로 뒤진 7회초 2사 2루에서 구원 등판해 르윈 디아즈를 삼구 루킹 삼진으로 돌려세운 뒤 곧바로 4-1 역전에 성공했고, 5차전에서는 5-5로 맞선 6회초 시작과 함께 구원 등판해 실점 위기 없이 수비를 마친 직후 6-5 역전을 이뤘다.
화끈한 세리머니 역시 팬들의 마음을 울렸다. 1차전에서는 디아즈를 삼진으로 잡은 뒤 탈춤을 추는 듯한 모습을 연출했고, 2차전에서는 김현준을 뜬공 처리한 뒤 관중석을 향해 양손을 들어 주먹을 불끈 쥐어 보였다.
이어 4차전에서는 디아즈에게 병살타를 유도한 뒤 이의리의 번호가 쓰인 모자를 옆으로 돌려썼고, 5차전에서는 이재현을 땅볼로 처리하고 마운드를 내려오며 유니폼을 풀어헤쳐 이의리의 이름과 등번호를 내보이기도 했다. 우승 직후에는 SNS에 한 팬의 메시지와 함께 ‘누나 내가 해냈어’라는 익살스러운 자축 메시지도 업로드했다.
곽도규는 우승을 확정 지은 뒤 “감독님과 코치님께서 위기 상황에서 내보내 주셨는데 그 믿음에 보답한 것 같다. 경기에 나갈수록 더 감사한 마음이었다”며 “한국시리즈를 통해 조금 더 성장한 것 같다. 배운 점이 많았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내가 올라가서 잘 막으면 팀이 역전했는데 좋은 기운이 있었던 것 같다. 팀원들의 끈끈한 믿음도 있었다”며 “세리머니는 지금은 부끄러울지라도 나이를 먹었을 때 재밌는 추억이 될 것 같다. 다만 철없고 부끄러운 행동은 올해가 마지막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규빈 기자 gyubin.ha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