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화조도 병풍 중 봉황부분.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
![]() 대통령 휘장인 봉황과 무궁화. |
청와대 봉황문(鳳凰紋)은 단순한 문양이 아니라, 한국의 권위, 조화, 문화의 미의식이 시각화된 국가 아이덴티티의 결정체라고 말할 수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도입된 이 문양은 군사 쿠데타에 권위를 싣고 정당화하는 방책으로 도입됐다. 하지만 봉황문의 출처나 역사는 중국과 고구려 등 고대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설문해자’에는 신조(神鳥)로 표현됐는데, 기러기의 앞과 기린의 뒤, 뱀의 목과 물고기의 꼬리, 황새의 머리와 원앙의 뺨, 용의 무늬와 호랑이의 등, 제비의 턱과 닭의 부리, 날개가 오색이라고 했다. 천왕유가 쓴 ‘용봉문화의 원류’(동문선, 1988)에는 봉황의 변천을 세 단계로 구분해 뒀다. 첫째 현조기(玄鳥期)는 검은새에 약간의 변화를 가한 형상으로 매의 머리에 올빼미 귀, 맹금 부리와 맹금 발톱, 주살 모양의 높은 볏, 가위 모양으로 갈라진 꼬리 혹은 공작처럼 땅에 질질 끌리는 긴 꼬리를 하고 있다. 둘째 주작기(朱雀期)는 진한에서 수당에 이르는 시기로 준오(踆烏)나 주작(朱雀)과 구별이 없는 태양의 새로 묘사된다. 날아가는 모습을 취하고 있으며 고니류의 긴 다리, 뱀의 목, 화려한 몸 날개, 닭의 부리, 공작의 깃털관과 거대한 꽁지깃을 한 몸에 모으고 있다. 셋째 봉황기(鳳凰期)는 명청을 거치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봉황으로 확립되는 시기다. 이 3기의 봉황새는 주작의 기초에 닭을 원형으로 약간의 변이를 가한 것이다. 부리가 뚜렷하게 응화(應化)하며, 눈빛은 날카롭고, 머리와 발톱에 더욱 힘이 있다. 긴 다리에 뱀의 목, 몸체는 수탉의 모습, 공작 모양의 세 깃털로 된 큰 꼬리와 다섯, 일곱, 아홉 갈래로 된 꿩 모양의 꽁지깃, 혹은 나뭇가지를 감고 서로 연결된 꼬리 모양을 하고 있는데 대개 이것으로 암수를 구별한다고 했다. 용(龍)과 봉이 복합되는 과정에 대해서는 지면이 부족하므로 따로 다루겠다. 이 책에서 주목할 것은 이러한 정형화, 규범화 현상이 중원의 한(漢)민족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북방의 소수 민족에게서 시작되었다는 점이다. 요나라, 금나라, 원나라 등이 그것인데 모두 동이족의 봉조와 현조 등 조족(鳥族)의 후예라고 밝히고 있다. 고구려의 삼족오를 연상하게 하는 주장인 셈이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봉황으로 재구성된 새가 황제국인 중국의 용과 위상을 나누어 가지며, 제후국들의 봉황으로 정립되는 과정이 지난하다. 용의 발톱이 몇 개이니 봉황의 무늬가 어떠하니 하고 문제 삼는 기록들이 모두 이 때문이다. 대한제국기에 황룡을 국장(國章)삼았던 것은 중국의 제후국이 아니라 독립된 황제국임을 천명하고자 했다는 점 익히 알려져 있다. 이런 점에서 봉황문을 청와대의 상징으로 삼는 것을 비판하는 시선도 있다. 논쟁의 여지는 충분하지만 위에서 살펴봤듯이 고구려 삼족오를 연상하는 봉황의 뿌리를 생각해 본다면 봉황의 쓰임새를 굳이 용과 비교하여 폄하할 일은 아니다.
![]() 화조도에 나타난 봉황. 가회민화박물관 소장 |
한국적 이미지는 어디서 오는가, 청와대의 봉황문에서 K-봉황문으로
봉황문은 용과 더불어 동아시아 공통의 문화 코드다. 그럼에도 중국, 일본, 베트남 등과 차별되는 우리만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국장(國章)의 법제화가 미약하고 관습에 기대는 경향이 강하긴 하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정비해 나가면 될 일이다. 우리는 유교적 상징과 근대국가 체계, 나아가 민주주의적 상징이 혼재된 복합적 구조를 갖고 있다. 박정희 정권 때 도입된 봉황문양은 전두환 정권에 이르러 간결화됐다. 대통령 차량이나 대통령기, 외빈 접견실 문양 등 표준화를 시도했다. 노태우 정권 때는 보다 정제화하고 날개와 꼬리 선이 정밀해진다. 김영삼 정부 때는 ‘국민의 정부’라는 국가 상징물로 강조됐다. 김대중 정부 때는 현대적 곡선미를 강조하고 무궁화를 중앙에 배치하여 조화를 꾀했다. 노무현 정부 때는 크게 변화 없이 기왕의 패턴이 유지됐다. 이명박 정부 들어 봉황문에 대한 거부감이 일어났다. 박근혜 정부 들어 대통령 상징으로 재부각됐다. 박정희의 권위를 복원하고 싶었을까? 문재인 정부 때는 봉황문을 시민 문화적 상징으로 해석하려는 시도들이 있었다. 기념주화, 찻잔, 만년필 등 휘장을 실용적으로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그렇다. 윤석열 정부 들어 용산으로 대통령실을 이전하면서 봉황문의 사용이 제한됐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먼저 국가상징에 대한 법적 위상을 세우는 일부터 검토해야 한다. 국장에 대한 헌법적 정의를 정비하고 상징물 활용 지침을 일원화하거나 민주화된 시민의 정체성과 감수성을 반영하는 연구와 재해석을 하는 일이다. 그래서 청와대의 일월오봉도와 봉황문양에 대한 추적이 긴요하다. 염두에 둬야 할 것은 현재 봉황문양이 음양의 조화 없이 권위를 강조하는 형식으로 구성됐다는 점이다. 고래로 봉(鳳)을 수컷으로 황(凰)을 암컷으로 구성했던 것은 음양 이론을 전제했기 때문인데, 이를 무시하거나 예컨대 수컷으로만 구성해 버린 결과가 됐다는 뜻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꼬리가 구불구불한 형태는 수컷인 봉으로 여기고 뻗은 형태는 암컷인 황으로 구별하기도 하고 또 이와는 정반대로 해석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청자나 민화 등에 그려진 봉황을 보면 날개나 볏(벼슬) 혹은 색깔 등으로 암수의 조화를 꾀했음을 알 수 있다. 여성과 노약자들의 인권이 신장되고 양성평등 의식이 정착되는 지금, 문양의 시대정신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청와대의 상징물로 봉황문양이 채택된 의미를 성찰하고 국가권위와 한국적 품격의 문화 아이콘으로 변화해 온 내력을 상고한다. 다음 정부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는 모르겠지만 청와대의 봉황에서 K-봉황으로 변화할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봉황은 기왕의 용이 가지는 위압적이고 권위적인 상징보다는 온화하고 평화로운 리더십을 상징할 수 있다. 과거 청와대의 장식물이 아니라 대한민국이 추구하는 조화의 철학과 격조 높은 문화, 품격 있는 세계국가로의 정체성을 담은 상징물로 재구성되기를 기대한다. 내 전공 때문이겠지만 김영일 교수 등 지인들의 주문과 최근 한국민화학교(교장 정병모) 특강을 하면서 갈무리한 일월오봉도와 봉황문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 봤다. 봉황의 암수를 구분해야 하는 것은 법고창신으로서의 음양과 시민성이 공존하는 권위와 의미를 담아내기 위함이다. K-컬처 시대에 맞는 디자인을 요구하고 주장해야 한다. 동아시아를 품은 문양에서 한국다움을 선명하게 드러내는 디자인으로 재구성할 것을 주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