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적십자사 광주전남혈액원 원장 김동수 |
필자 역시 연말에 적십자 회비 모금을 위한 캠페인에 참여하면서 시민들을 향해 웃으며 인사하고 손을 흔든 적이 있다. 목적은 다르지만, 누군가의 눈길을 끌고 바라봐 주길 바라는 마음은 같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득 우리 일상에서 미소와 인사가 사라지고 있지 않은가 하는 생각이 든다.
경기가 어려워져 마음도 각박해진 걸까?
길고도 긴 코로나 비대면 시대를 거치며, 마스크에 가려졌던 미소조차 잃어버린 것은 아닐까?
주변을 둘러보면 버스를 탈 때도, 식당에서도, 예전엔 자연스럽게 오가던 인사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식당은 이제 외국인 근로자나 무표정한 키오스크가 손님을 맞이한다. 미국에선 로봇 택시 상용화가 임박했다. 이처럼 기계가 사람을 대체하는 세상이 성큼 다가오고 있다.
한 번은 어떤 사무실을 방문했는데, 전 직원이 일어나 밝게 인사하는 바람에 당황하면서도 기분이 좋았던 기억이 있다. 다소 부담스러웠지만, 존중받는 느낌이 분명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즘은 안내 데스크에서도 먼저 인사하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한때는 친절 교육이 사회 전반에 성황을 이루던 시절도 있었다. 백화점이나 은행, 관공서 등에서 기본적으로 미소와 인사법을 교육했고, 그것이 서비스의 핵심이라 여겨졌다. 필자도 오래전, “지위와 상관없이 먼저 보는 사람이 인사하는 것”이라는 상사의 가르침을 받은 적이 있는데, 지금도 유효한 인사법이 아닌가?
최상준 전 광주전남적십자사 회장은 나이가 팔순에 가까웠지만, 기부자나 봉사자에게 허리를 깊이 숙여 인사를 하곤 하셨다. 그 짧은 인사 속에는 인간에 대한 존중, 삶에 대한 예의, 그리고 겸손이 담겨 있었다.
요즘도 지나가던 학생들이 인사를 건네면 절로 미소가 나오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든다. 광주 월광기독학교에서는 “사랑합니다”라는 인사말을 사용한다. 초등학생들의 해맑은 인사를 보면 웃음이 저절로 번진다.
인사는 ‘절’이라고도 한다. 절하면 떠오르는 인물이 성철스님이다. 그를 만나려면 삼천 배를 해야 한다는 일화는 유명하다. 처음 들었을 땐 다소 권위적으로 느껴질 수 있지만, 절을 반복하다 보면 그 의미가 단순한 인사를 넘어선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절은 자신을 낮추는 행위이다. 세상 앞에, 진실 앞에, 나 자신 앞에 나를 겸허히 내려놓는 방법이기도 하다. 그러기에 인사는 나눔의 시작이며 바탕이 될 수 있다.
강원석 시인은 ‘풀꽃이 춤출 때’라는 시에서 “풀꽃이/언제 춤추는지 아니?/네가 웃으며 쳐다볼 때”라며 풀꽃조차 미소를 보면 춤을 춘다고 묘사했다.
하물며 사람은 어떨까.
누군가 미소 지으며 인사할 때, 적어도 기분이 나빠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세상이 각박하더라도 먼저 인사를 건네보자. 아니, 서로 인사를 나누어 보자.
‘곳간에서 인심 난다’라는 옛말처럼, 우리의 일상에 미소가 가득할 때
친절과 존중, 배려와 나눔이 함께 피어날 것이라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