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짱뚱어 지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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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짱뚱어 지키기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5. 06.26(목) 16:56
이용환 논설실장
“짱뚱어를 이대로 죽일 것인가.”, “짱뚱어를 살리자고 사람을 죽일 것인가”. 지난 1997년 일본 정치권이 난데없는 짱뚱어 논쟁에 휩싸였다. 쌀 생산을 위해 규슈 이사히야 만에 대규모 간척사업을 벌이면서 그곳에 서식하던 짱뚱어가 대거 폐사했기 때문이다. 착공 당시부터 환경파괴와 세금낭비라는 비판이 제기됐던 간척사업. 하지만 물막이 공사가 끝난 이후 거북등처럼 갈라지고 말라가는 광대한 갯벌은 일본인에게 충격이었다. 물을 찾아 퍼덕이다 죽어가는 짱뚱어의 모습도 섬뜩했다. 이른바 ‘이사히야만 짱뚱어 사건’. 비록 결론은 바뀌지 않았지만 이 사건은 전세계에 갯벌과 환경의 중요성을 각인시키는 계기가 됐다. 개발이 우선이었던 시절, 죽어가는 짱뚱어들이 지불한 ‘비싼 수업료’였다.

2016년 여수MBC가 방영한 다큐멘터리 ‘갯벌에 물들다’는 순천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생물들의 삶과 죽음을 다룬 작품이다. 약육강식의 현장인 갯벌은 무수한 생명체가 꿈틀대는 생명의 터전이었다. 경쟁하고 싸우고, 먹고 먹히면서도 서로가 공존하는 화엄의 세계이기도 했다. 특히 그곳에서 만난 최고의 생명체는 단연 짱뚱어였다. 살아남기 위한 짱뚱어의 집요하고 처절한 노력,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 갯벌을 박차고 도약하는 모습에는 힘이 넘쳤다. 영역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리고, 대를 잇기 위해 짝짓기에 나서는 모습도 경이로웠다.

짱뚱어는 전남 서·남해안 갯벌에 사는 망둥어과의 물고기다. 아가미와 허파로 숨을 쉬고 겨울이면 뻘에 들어가 겨울잠을 자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민첩성도 뛰어나 짱뚱어를 잡으려면 일명 ‘훌치기’ 낚시를 해야 한다. 갯벌 위에 낚시를 던져 조심스럽게 끌면서 재 빨리 낚아채는 방법이다. 못생겼다는 것도 짱뚱어의 특징이다. 그래도 짱뚱어는 가슴과 꼬리에 붙은 강한 지느러미로 어떤 물고기보다 힘차고 멋진 포즈를 만들어낸다. 썰물 때면 뻘 밭에 나와 폴짝폴짝 뛰는 모습도 ‘갯벌의 재간둥이’라는 별명에 제격이다.

순천시가 사라져가는 짱뚱어 잡이인 ‘훌치기’ 보존을 위해 국가 중요 어업 유산 신청에 나섰다. 훌치기 짱뚱어 잡이는 지난 2021년에 도전했으나 현장 평가에서 탈락하면서 이번이 두번째 도전이다. 훌치기는 장대에 10m 안팎의 낚시를 달아 짱뚱어를 훑어 낚아채는 방식이다. 몸을 던져 가족과 영역을 지키려는 짱뚱어의 특성을 활용한 낚시인 셈이이다. 약육강식의 세상, 자신보다 약한 생명체를 잡아먹고 사는 짱뚱어와 생업으로 그 짱뚱어를 잡아야 하는 어부의 운명은 자연의 이치다. 전통을 계승해 발전시키는 것도 지금 세대에 주어진 중요한 과제다. 먹고 먹히는 생존의 법칙이 짱뚱어에만 예외일 수 없지만, 전통의 계승과 관광을 이유로 또 다시 수업료를 내야 하는 짱뚱어를 지키려는 대책도 함께 추진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