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서울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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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
서석대>'서울난민'
곽지혜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5. 07.13(일) 16:25
곽지혜 기자
“수도 장안에서 벼슬한 지 20년, 가난한 삶이나마 즐길 만한 거처가 없네.

집 가진 달팽이가 외려 늘 부러웠고, 제 몸 건사할 줄 아는 쥐가 차라리 더 나을 판.

오직 바라는 건 송곳 꽂을 만큼의 작은 땅, 목각 인형처럼 떠도는 신세만 면했으면.

-백거이(白居易·772~846), ‘집 장만(卜居)’ 중

1000년 전 당나라의 시인 백거이도 수도에서 벼슬살이를 20년이나 했으면서 정작 머물 수 있는 집이 없이 달팽이와 들쥐를 부러워했다. 1000년 전이나 1000년 후나 등에 집을 짊어지고 다니는 달팽이를 부러워하는 무주택자들의 한숨은 이어지고 있다.

매달 월급으로는 집 한 채는커녕 방 한 칸도 감당하기 어려운 시대다. 광주지역 민간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3.3㎡(한평)당 지난 2015년 821만원에서 지난해 1991만원으로 10년새 140% 상승했다. 그나마도 수도권에 비하면 양반이다. 서울의 84㎡ 신축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17억원을 넘긴 지 오래고, 평당 가격은 4500만원에 육박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대 평균 월소득은 263만원, 30대는 386만원에 불과하다. 세금, 식비, 월세도 내지 않고 1년을 꼬박 모아도 20대는 서울의 아파트 한 평조차 손에 넣을 수 없고, 30대는 겨우 가능하다. 인프라가 구축돼 있고, 직장과 가까운 곳에서 살고 싶다는 소망은 사치가 된지 오래다. 조금 더 싼 집값을 찾아 도심 외곽으로 내몰리는 청년들은 이미 백거이가 피하고 싶다던 ‘목각인형처럼 떠도는 신세’다. 집값 때문에 서울을 떠나 경기도나 인천 등으로 이주하는 사람들을 칭하는 ‘서울난민’이라는 용어가 생겼을 정도다.

청년들이 바라는 것은 ‘송곳 하나 꽂을 만큼의 땅이라도 좋다’는 백거이의 바람과 다르지 않다. 그저 맘 놓고 몸을 뉘일 집 하나는 있었으면 하는 것이지만, 이미 국내 부동산 시장에서 주거는 생존의 수단이 아닌 투자 수단으로 변질됐다.

월급으로 집을 살 수 없는 구조는 더 이상 정상적이라고 할 수 없다. 이재명 대통령은 대선 후보 시절 “과거 정부의 부동산 부양 정책이 경제를 왜곡시켰다”고 지적하는 등 과도한 집값 상승에 비판적인 입장을 강조해 왔다. 그 말이 공허한 선언으로 남지 않으려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빈틈없는 시장을 구축해야 한다. 부동산 정책은 단기적일수록 부작용이 크다. 규제를 강화하면 풍선효과가, 수요를 억누르면 튀어 오르는 반작용이 반복된다. 당장의 규제로 실수요자들마저 막차를 타려 달려들고 있는 현실을 살펴야 한다. 출발선을 힘차게 나선 현 정부의 발걸음 끝에 드디어 한국이 ‘부동산 신화’에서 벗어났다는 소식이 들려오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