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호두의 재발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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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호두의 재발견
이용환 논설실장
  • 입력 : 2025. 07.10(목) 17:32
이용환 논설실장
키르기스스탄 서북쪽 잘랄아바드 인근 아르슬란밥은 웅장한 꽃이 만발한 오아시스로 유명하다. 동서로 길게 이어진 바바쉬아타 산맥을 따라 드넓게 펼쳐진 숲에는 수많은 꽃이 사시사철 피어나 천상의 화원을 연출한다. 해발 1700m의 고지 곳곳에 숨겨진 언덕과 계곡 사이 사이에 자리잡은 호두 숲도 장관이다. 전체 면적이 전라남도의 56.7%에 이르는 70만 헥타르가 넘는다는 이곳 호두 숲은 지구상에서 가장 큰 호두 숲이다. 이곳에서 자라는 호두나무도 최대 30m에 달하고 나이는 1000년이 넘는다. 그야말로 세계 최고와 최다를 자랑하는 호두 숲이다.

기원전 330년 경, 정복자 알렉산더가 중앙아시아 텐샨 산맥 남쪽까지 내려왔다. 수많은 전쟁을 통해 전 세계에 70여 개의 도시를 건설했던 그가 그곳에 새로운 도시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고산지대인 데다 오랜 전쟁에 지친 병사들이 이름 없는 병으로 쓰러져 갔다. ‘후퇴할 것인가 강행할 것인가’를 고민하던 알렉산더는 때 맞춰 찾아온 현자의 도움으로 아르슬란밥 호두 숲에서 채취한 호두를 병사들에게 먹여 질병을 치료할 수 있었다. 이후에도 알렉산더는 중앙아시아를 넘어 북부 아프리카에 이르는 방대한 정복전쟁에 나설 때면 아르슬란밥 호두를 마차에 싣고 다니며 즐겨 먹었다고 한다.

페르시아가 원산지인 호두는 칼로리가 높아 가난했던 시절 생명을 지켜주던 중요한 먹거리였다. 단백질 함유량이 육류보다 많고 지방 또한 돼지고기의 두배에 이르지만 모두 불포화 지방산이어서 성인병에 걸릴 염려도 없다고 한다. 호두에 풍부한 오메가-3 지방산이 뇌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불포화지방산과 항산화 물질도 콜레스테롤 수치를 낮추고 혈압을 조절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호두나무의 쓰임새도 다양하다. 가볍고 유연하며 물에 젖어도 변형이 없고 충격에도 강한 호두나무는 예로부터 귀한 목재로 이름이 높았다. 2차 세계대전에서 활약한 전투기에도 호두나무가 사용됐다고 한다. 과거 중국에서는 황제의 시신을 넣던 관을 재궁(梓宮)이라 해서 호두나무로 만들었다.

최근 하루 한 줌의 호두가 대장암 위험을 획기적으로 감소시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호두에 포함된 식물성 화합물이 장내 미생물에 분해되는 과정에서 강력한 항염증 효과가 나타난다는 것이다. 뇌와 심혈관 건강에 효과가 뛰어나고, 제2형 당뇨병 환자의 심장병 위험도 낮춘다고 한다. 호두의 재발견이다. 호두는 따뜻한 햇볕을 좋아해 재배지로는 전남이 최적이다. 상대적으로 관리가 수월해 전남으로 귀농하거나 은퇴한 이들이 선호하는 작목이기도 하다. 한여름 시원하게 뻗는 가지와 무성한 잎새가 만드는 그늘도 지구 온난화를 줄이는데 제격이다. 맛과 멋은 물론이고 건강과 탄소감축까지…, 모든 덕목을 갖춘 호두의 재발견이 반갑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