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화산 연기ㆍ1만2000개 흑초 항아리 접목' 관광상품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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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일별칼럼
'활화산 연기ㆍ1만2000개 흑초 항아리 접목' 관광상품화
허시명의 발효기행 (1) 日 가고시마 흑초 맛보다
  • 입력 : 2015. 03.06(금) 00:00
흑초항아리에서 숙성된 흑초를 맛보고 있다. 흑초를 이용한 요리를 흑초양조장의 레스토랑에서 맛볼 수 있다.
흑초, 검은 식초를 맛보러 일본 규슈 가고시마를 찾아갔다.

우리가 아는 식초는 노릇노릇한 빛이 도는 투명한 액체다. 식초는 석유에서 추출한 순도 99% 아세트산인 빙초산에 물을 희석하여 신맛만 낸 것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반세기 전만 해도 부뚜막 초병에 담긴 천연발효식초를 양념으로 사용했다. 헌데 우라질, 중국집 단무지와 치킨무를 적시고 있는 대부분의 식초가 석유의 부산물인 빙초산이라니! 그래서 천연발효식초를 사용하고 있는 식당을 발견하면, 그 식당을 단골로 삼고 싶어진다.

●1만2000개 항아리 장관

규슈 가고시마시내에서 해안도로를 타고 가고시마만을 시계 방향으로 45㎞를 가면 기리시마시 후쿠야마 마을의 츠보바타케(壺畑) 흑초정보관이 나온다. 때로 관광지든 사건이든 사진 한 장으로 모든 것을 보여주는 경우가 있는데, 가고시마 흑초 제조장도 그런 곳이다.

흑초정보관을 운영하는 사카모토 양조장-양조(釀造)라는 말을 술, 간장, 된장 등 발효식품을 만드는데 포괄적으로 사용한다-의 레스토랑 창밖으로 수천 개의 항아리가 도열해 있었다. 마치 마스게임을 하기 위해 동원된 학생들 같았다. 이 양조장의 밭에 놓인 항아리가 1만2000개 쯤 된다고 했다. 항아리밭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고 수평선이 펼쳐지는데, 그 수평선을 깨뜨리고 희뿌연 연기를 품는 사쿠라지마 활화산이 그림처럼 떠 있었다.

정보관의 이름은 츠보바타케(壺畑), 항아리밭이다. 흑초를 담는 항아리로 이미지를 완성하고, 차별화시켰다. 항아리는 한국 항아리와 질감이 다르다. 항아리는 화병을 키워놓은 듯, 밑단은 좁고 어깨는 높고 넓은 편인데 입은 좁았다. 항아리의 어깨 부분에 네 개의 고리가 있는데, 이는 들짐승들이 항아리 뚜껑을 열지 못하게 끈으로 묶을 때 사용한다. 항아리 겉면은 약간 갈색이 도는 밤색인데 유약을 발라져 번들거린다.

●200년 전통의 흑초식초

후쿠야마 마을이 흑초 고장으로 특화된 것은 오래된 일이 아니다. 이 고장 곡물 식초를 흑초라고 부른 것은 1975년 사카모토 양조장에서 처음이다. 흑초시대가 열린 건 40년 밖에 되지 않았다. 하지만 에도시대 1800년경부터 이 마을에서 식초를 빚었다고 하니, 그 전통은 200년이 넘는다. 전통이 새롭게 만들어지고 해석되고 있는 셈이다.

후쿠야마 흑초와 같은 곡물 식초가 우리에게도 있다. 대표적인 게 막걸리 식초다. 다만 후쿠야마 흑초는 우리보다 앞서 특성화되고, 관광자원화 됐다. 흑초는 어떻게 다른지 유심히 살펴보았다.

막걸리 식초는 오래두면 묵은내와 군내가 난다. 흑초도 마찬가지. 흑초는 한 발 더 나아갔다. 아예 현미를 재료로 쓰고 더 묵혀서 검은 빛이 돌게 했다.

흑초를 만들려면 먼저 가을에 흑초용 술을 빚는다. 이때 일본 청주와 달리, 진국(振麴)이라 하여 항아리에 담긴 술덧 위에 쌀누룩 한줌을 엷게 덮듯이 뿌려줬다. 이 과정은 숙련된 장인이 담당할 정도로 중요하게 여긴다. 10일 정도 탄산가스가 발생하면서 알코올 발효가 진행되면 단맛 도는 향이 난다. 항아리에 든 술덧을 야외에서 6개월 이상 숙성시킨 다음, 이듬해 여름 무렵 식초로 산도를 맞추고 초균이 들어있는 종초를 넣어 초산 발효에 집중한다. 초산 발효가 진행될 때 공기가 잘 들어가도록 매일 저어준다. 초산 발효가 끝나면 항아리에 초를 가득 채우고 살균하지 않은 상태로 밀봉한 상태에서 숙성시킨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년동안 밭에 두고 숙성시켜 상품화 한다. 숙성이 진행될수록 맛이 부드러워지고 색이 진해지는데 가격은 올라간다.

그래도 내게 남는 궁금증은 야외의 온도 변화가 심한 곳에서 흑초를 숙성시키면 셀룰로오스막이 생기거나 산도가 떨어질 텐데 어떻게 할까 였다. 그 답까지 듣지는 못했다. 다음에 가면 그 궁금증을 풀어보고 싶다.

●연구논문 90편 게시

가고시마현은 흑초 붐을 일으키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했다. 국립대학이나 식품종합연구소와 연계하여 흑초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 분석 자료를 내놓았다. 홍보관에는 1983년부터 이뤄진 90편의 흑초 연구 논문 목록을 게시해 놓고 있었다.

또한 흑초의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휴대용에서부터 음료용까지 다양한 상품을 개발해 놓았다. 초밥용 드레싱용 등 흑초를 활용한 여러 가지 요리법도 책으로 내놓았다. 쉽게는 과일주스와 우유와 섞어 마셔도 좋다고 후쿠야마 마을의 흑초 전문점에서 적극 홍보하고 있었다.

가고시마 흑초가 유명해진 데는 활화산에서 분출되는 연기, 밭에 놓인 수만 개의 항아리, 3년 숙성된 깊은 맛, 마을의 전통적인 제조법, 흑초의 성분 분석 자료, 흑초 전문 매장과 레스토랑, 다양한 흑초 요리 레시피 개발, 용량이 다른 흑초 상품들, 음료용으로 개발된 과일흑초 등 다양한 콘텐츠가 기여하고 있었다.

음식을 맛만으로 파는 것이 아니라, 복합 문화로 판다는 것을 가고시마 흑초가 잘 보여주고 있었다.

■ 허시명

막걸리학교 교장. 조대부고, 서울대 졸업. 한국술을 문화로 풀어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 서울 삼청동에서 막걸리학교를 운영하면서 술강좌(소주ㆍ청주ㆍ식초ㆍ맥주ㆍ양조장 학교 등)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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