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싼 밥값 내면 주는 '기사' 작위에 씁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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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혜경의 와인커피
비싼 밥값 내면 주는 '기사' 작위에 씁쓸
손혜경의 커피&와인 이야기-'와인 기사 작위'의 허와 실
  • 입력 : 2016. 11.15(화) 00:00
프랑스 샤또 뒤 클로 드 부조는 현재 전시관 겸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매년 이곳에서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뒤 따스트뱅' 기사 작위식이 거행된다.
가을이다. 단풍과 함께 붉게 익어가는 홍시의 계절이다.

홍시는 처음부터 그렇게 달콤하지는 않았다.

익기 전에 파릇한 땡감의 떫은 맛을 떠올려보라. 얼굴이 절로 찡그려진다.

지구상의 많은 식물들은 최고의 지능을 자랑하는 인간 이상으로 지혜로운 방법으로 살아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물인간'이니 '식물국회'니 라는 표현으로 식물을 동물들을 위한 소모품 정도로 여겨왔다.

일본어에서는 존재감을 나타내는 단어(いる/ある)를 사용함에 있어서 자기 의지로 이동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식물을 무생물처럼 취급하고 있다. 이를 두고 어떤 학자는 '이런 식의 표현에 화난 식물들이 광합성작용을 거부하고 산소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계속하여 무생물 취급을 할지 궁금하다'는 항의성 제안을 내놓기도 하였다.

감은 감꽃이 지고 몸을 불려가는 시기인 더운 여름에는 먹을 수 없을 정도로 떫다. 그러나 잘 익어서 씨가 단단해지면 붉게 익어 달콤한 맛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이런 맛과 컬러의 변화에도 감의 치열한 생존비법이 숨어있다. 처음부터 맛이 있었다면 씨가 여물기도 전에 모두 따먹어서 종족을 번식시킬 확률이 떨어질 것이다. 그래서 초기에는 녹색을 띄어 감잎과 구분이 안되도록 숨어있다가 씨가 잘 익은 가을이 되면 빨갛게 존재감을 드러내게 된다. 종족번식을 위하여 씨를 널리널리 퍼뜨리기 위한 자구책인 것이다.

이렇게 감을 지켜준 것은 '탄닌' 성분이다. 요컨대 탄닌이 천연방부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감이 썩지 않고 오래 유지될 수 있도록 함으로써 냉장고가 없던 시절에도 긴 겨울을 나기까지 좋은 간식거리가 되어준 것이다.

이 탄닌 성분은 포도의 씨와 줄기에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포도주를 담그면 처음에는 쓰고 떫은 맛이 두드러지지만 시간이 흐름에 따라 숙성되면서 감미로운 맛과 향을 보여준다. 마치 땡감이 홍시로 변화되었을 때처럼 말이다.

유럽의 대표적인 농업국가인 프랑스에서는 보르도와 부르고뉴를 비롯한 와인산지에서 포도농사를 지어 와인을 생산하고 있다. 이 와인이 맛있게 익어가면 샤또(양조장)에서는 좋은 가격으로 팔기 위한 필사의 노력을 한다. 프랑스의 경우 와인은 국가적 전략산업이므로 정부 차원에서 마케팅을 담당하기도 한다. 그 방법 가운데 하나로 와인의 품질 향상을 위한 연구자나 프랑스산 와인 판매에 공로가 큰 사람들에게 주는 작위를 들 수 있다.

작위 수여식이 이루어지는 곳 가운데 필자가 다녀온 곳은 '샤또 뒤 클로 드 부조'이다. 이곳에서 수여하는 '꽁프레리 데 슈발리에 뒤 따스트뱅'은 가장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지부를 두고 있다. '꽁프레리'란 한 지역에서 같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생산자들의 모임을 말하고, '슈발리에'는 중세 유럽의 기사 작위로 오늘날 프랑스 정부에서 주는 훈장이라 하겠다.

이 작위 수여식은 부르고뉴 지역 와인의 침체기에 옛 명성을 되찾기 위하여 시작되었다. 그 중심이 16세기에 설립된 수도원이었던 '샤또 뒤 클로 드 부조'이다. 마치 영화 '해리포터'의 촬영장처럼 고색창연한 와이너리를 돌아보면서 옛 건물을 잘 보존한 프랑스에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꾸며져 있고, 부르고뉴 와인의 상징적 건물로 매년 이곳에서 기사작위식을 거행된다. 프랑스의 시라크 대통령을 비롯하여 영화배우 공리와 성룡, 성악가 플라시도 도밍고가 이 작위를 받았으며, 한국에서는 임권택 감독, SM 이수만 대표, 영화배우 유지인, 와인수입상 나라식품의 이희상 대표, 까브드뱅의 유안근 대표 등이 받은 바 있다.

원칙적으로 이 기사 작위는 사회적 명성과 와인산업 발전에 공로가 있는 인물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비싼 식대와 와인값을 지불하면 기사 작위를 받을 수 있다는 안내자의 설명에 씁쓸한 미소를 감출 수 없었다. 실제로 부르고뉴, 보르도에 이어 론지역에서도 작위를 주더니, 이제는 세계적으로 와인 소비가 많은 국가에 지부를 두고 이른바 '출장 작위'를 주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와인을 홍보하고 판매를 촉진하기 위하여 시작된 이벤트이니 할 말은 없지만, 비싼 식대로 작위를 판다니 벼슬을 팔았던 매관매직과 크게 달라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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