엎드려 있던 자리 개펄도 맛있다는 새콤한 그 서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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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미영 음식이야기
엎드려 있던 자리 개펄도 맛있다는 새콤한 그 서대회
여수의 명물 '서대회'
백미영의 음식이야기
  • 입력 : 2018. 04.12(목) 21:00
영취산 진달래. 여수시 제공

봄이 되면 볼거리와 먹거리를 찾아 주말이 들썩거린다. 각 지역의 축제와 그 지역을 대표하는 음식을 함께 즐기려는 가족단위 관광객들로 전국의 이름난 곳들은 북새통을 이룬다. 계절마다 풍경과 먹거리가 달라진다. 북새통 속에서 대충 한 끼를 때우고 나중에 후회하지 않으려면 '철'을 알아야 한다.

여행에도 적기가 있다. 한마디로 '제철'에 떠나야 제대로 된 맛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음식맛 좀 안다는 사람들은 '여수에 가면 늘 부른 배를 두드리며 다닌다'고 한다. 먹을 게 지천이란 얘기다. 여수에서는 돈자랑을 말라고 했던가? 더불어 맛자랑도 삼가야 하는 곳이 여수다.

'麗水(여수)'는 문자 그대로 물이 고운 곳이다. 고려를 세운 왕건이 고운 물따라 '인심이 좋고 여인들도 아름다워' 붙여준 이름이라 한다. 여수를 에워싼 고운 물(바다)이 키워낸 산물, 그 산물이 어찌 맛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조선 후기 서유구(1764~1845)가 쓴 '전어지(佃漁志)'에서는 '서대'라는 물고기의 특징과 함께 '生西南海 每四月 捕石首魚時 同入網(서남해에서 매년 4월 조기를 잡을 때 함께 그물에 들어온다)'고 기록하였다. 언제 가도 입이 즐거운 곳이지만 특히 4월의 여수에서는 서대회가 제철을 맞기 시작한다.

서대회는 홍어회와 비슷하게 양념과 야채 등을 버무려 먹는 음식이다. 서대회라는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 요리는 서대라는 생선으로 만든다.

포를 떠서 얇게 저민 서대를 막걸리 식초에 주물러 놓고, 나박나박 썬 무를 소금에 절여 물기를 뺀 다음 갖은 양념이 들어간 초고추장으로 무친다. 여기에 서대, 대파, 풋고추, 붉은 고추를 넣고 버무리면 서대회무침이 완성된다.

서대회무침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밥 위에 푸짐하게 얹어 쓱쓱 비벼 먹어야 제 맛이다. 나른한 봄날 떨어진 입맛 돋우는 새콤함이 일품이다. 반주로 동동주를 곁들이면 술은 서대회 맛을 살려주고 서대회는 술맛을 더해준다.

이쯤 되니 서대회를 무칠 때 사용하는 막걸리 식초가 궁금하다.

예전에 여수로 시집 온 며느리들은 각 가정에서 전수되는 막걸리 식초 만드는 법을 배웠다. 큰 병에 막걸리를 붓고 솔가지를 꼽아 입구를 막은 다음 부뚜막 옆 따뜻한 곳에 자리를 잡아 발효를 시킨다. 발효된 막걸리의 윗물을 따라 내고 새 막걸리를 붓기를 반복하는 것이다. 잘 만든 막걸리 식초는 신주 모시듯 애지중지 간수해야 맛을 유지할 수 있었다. 막걸리 식초 맛이 변하기라도 하는 날에는 호랑이 같은 시어머니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그토록 막걸리 식초를 정성껏 관리한 것은 바로 서대회를 위해서였다.

식초는 생선회와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도 식초는 미각과 후각을 자극하고 뇌의 식욕 중추에 작용하여 식욕을 돋우며, 침샘을 자극하여 소화를 돕는다. 맛도 맛이려니와 방부와 살균 효능이 있어서 날생선을 먹을 때 꼭 필요하다. 초고추장에 찍어 먹는 생선회나 새콤한 회무침이 딱 맞춤한 예이다. 또 생선에 식초를 더하면 단백질의 응고를 촉진한다. 살짝 응고된 생선살을 씹을 때 최고의 식감을 느낄 수 있다.

서대는 살이 담백하여 음식에 다양하게 쓰인다. 도톰하고 싱싱한 서대를 소금에 절여 가자미처럼 꾸덕꾸덕 말렸다가 사용한다. 말린 서대는 쌀뜨물에 잠깐 재웠다가 건져서 석쇠에 굽거나 기름을 두르고 지져도 맛있다. 다진 파, 마늘, 고춧가루 등을 넣은 양념간장을 고루 발라 구워도 별미이다. 무와 감자를 넣고 조림으로 먹어도 그만이다.

서대는 여수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서남해안에서 고루 잡힌다. 하지만 서대를 회, 구이, 조림으로 다양하게 맛보기 시작한 곳은 여수다. 여수 사람들은 음식 재료를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하여 색다른 음식을 만들어 먹어온 것이다.

서대와 거의 똑같이 생겼지만 크기가 좀 더 큰 박대는 넉넉한 살집 덕분에 주로 반건조 상태로 말려 구이나 조림으로 즐겨 먹는다. 어떤 이들은 서대와 박대를 굳이 구분하지 않고 명칭을 혼용하기도 하지만 엄연히 잡히는 지역이나 활용되는 요리법이 다르다.

박대는 넓적하고 길쭉한 모양과 한쪽으로 심하게 몰린 눈 등 못난 모양 때문에 문전박대를 당했다고 하여 '박대'라 부르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군산 등 서해 연안에서 주로 잡히는 박대 맛이 어찌나 좋았는지 "시집간 딸에게 박대를 선물하면 그 맛에 친정에 자주 들른다"라는 말이 생겨났을 정도이다.

서대는 넙치나 가자미와 함께 저서성(低棲性) 어류로 분류된다. 주로 바다의 밑바닥에서 생활하기 때문에 등 색깔이 해저 바닥과 비슷한 회색 또는 모래 색을 띤다. 때로는 모래나 펄 속에 몸을 숨기기 위해 바닥에 납작 붙어 양쪽의 지느러미로 모래를 끼얹는다. 자신 있게 위장을 한 후에는 포식자가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더 이상 몸을 숨길 수 없다고 판단하면 순간적인 추진력으로 도망을 간다. 사냥을 할 때에도 마찬가지다. 먹잇감이 다가올 때까지 꼼짝하지 않고 기다리다가 사정권 안에 들어오면 튀어 나간다.

이러한 습성 때문에 여수의 명물 서대를 두고 '엎드려 있던 자리 개펄도 맛있다'는 말이 생겨났다.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는 서대를 장접이라 하고, 모양이 가죽신 바닥과 비슷하다 하여 속명을 혜대어라 하였다. '전어지(佃漁志)'에는 '셔대'라 하고 설어(舌魚)로 기록하고 있다. '재물보(才物譜)'에는 서대ㆍ북목어(北目魚)ㆍ혜저어라고 하였다.

서대는 생긴 모양이 신발 또는 혀를 닮아 영어로는 'red tongue sole', 일본어로는 '赤舌' 또는 '牛の舌'라고 하는 등 우리나라 뿐 아니라 다른 나라에서도 재미있는 이름으로 불린다.

서대의 얼굴 생김새는 가자미와 비슷하다. 양쪽 눈이 몰려있고 입도 한쪽으로 쏠려 있다. 납작한 모양도 거의 같지만 가자미보다는 길쭉한 편이다. 서대는 우리나라 서남해 연안 얕은 바다에 벌과 모래가 섞인 바닥에서 주로 서식한다. 비린내가 나지 않기로 유명한 서대는 60~70년대만 해도 흔한 생선이었지만 요즘은 어획량이 줄어 몸값이 오르고 있다.



오동도 동백과 영취산 진달래



입이 즐거웠다면 이제 눈이 호강할 차례이다. 여수에는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동백과 진달래 군락지가 있다. 바로 오동도와 영취산이다. 봄이 되면 그야말로 울긋불긋 꽃대궐이 상춘객들을 유혹한다.

오동도는 입구 주차장에서 약 15분 정도, 방파제 길을 따라 걸으면 도착한다. 이 길은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 선정된 바 있다. 동백을 이야기할 때 여수 오동도를 빼놓을 수 없다. 섬 전체에 고루 자라고 있는 3000여그루의 동백나무는 1월부터 꽃이 피우기 시작해 3월이 되면 만개한다.

우거진 동백숲 터널은 소중한 사람과 함께 걷기 좋은 장소이다. 미로 같은 산책길 옆으로 병풍바위와 소라바위, 지붕바위, 코끼리 바위 등 기암절벽이 어우러져 절경을 이룬다.

영취산의 키 작은 진달래 군락은 산 중턱에서부터 시작된다. 꽃으로 뒤덮인 산은 시쳇말로 '활활 불타오르는 듯'한 장관을 연출한다. 햇빛을 유난히 좋아하는 진달래 군락이 있는 곳은 키 큰 나무들이 없어 더욱 화려하다. 최고의 진달래꽃 군락지는 바위 봉우리 부근과 정상아래, 진래봉 부근이며 이 군락지를 즐길 수 있는 등산로는 상암초등학교에서 시작해 450m 봉을 거쳐 봉우제와, 영취산 정상을 오른 뒤 흥국사 방향으로 내려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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