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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따라 백제의 흔적들을 찾아다니면서 충청남도 서산에 있는 마애여래삼존상 앞에 서게 되었다. 용현리 산기슭의 바위에 새겨진 이 삼존상은 섬세하기도 하지만 조각상의 미소가 일품이어서 '백제의 미소'를 대표하는 국보로 지정된 문화유산이다. 이곳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부여로 가던 행로상에 있으며, 600년경 이름 모를 석공에 의해 조성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이 삼존상이 세상에 알려지게 된 일화가 재미난다. 1959년 부여 문화재 관계자가 근처의 보원사지의 답사를 마치고 이 근방을 지나다가 나뭇꾼 한 분을 만났다. "혹 ...
편집에디터2020.12.03 13:01세상의 온갖 것들이 야단법석을 떨면서 우리를 힘들게 하지만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계절은 어김없이 반복되고 있다. 가을인가 싶더니 어느 새 겨울의 문턱에 들어서는 것인가. 여행도 마음대로 떠나지 못하는 이 답답한 시절이지만 이 또한 흐르는 시간 속에 묻혀서 지나 갈 것이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는다. 이맘 때 쯤에 두만강변을 떠돌던 생각이 났다. 강이라기 보다는 동네의 개천이라고 해야 할 정도지만 우리 민족의 눈물을 모아 흐르는 한(恨) 많은 강이지 않던가. 힘들게 살아간다는 북한 동포들의 삶도 지척에 보이는 중국 쪽 '숭선'의 조선...
편집에디터2020.11.19 12:41연해주 크라스키노의 벌판이다. 온 사방으로 드넓게 널려있는 갈대숲을 헤집고 다녔다. 이 근처 어딘가에 성터의 흔적이 있을 것으로 생각하고서. 하지만 잃어버린 천 년의 세월은 천명(天命)을 받든 이 몸에게도 감당키가 만만치 않았다. 두만강 하류의 북한과의 국경이 지척인 곳이다. 배낭을 메고 카메라 삼각대를 총처럼 들고 다니는 것이 오해 받기 쉽겠다는 생각이 번뜩 들었을 때 일은 이미 터졌다.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포위망이 좁혀 온 것이다. 위기에 처한 황제의 밀명을 받들고 적진으로 뛰어든 것도 아니면서 꼴사납게 되었지 뭔가. 그들은 ...
편집에디터2020.11.05 13:33고구려 유민들이 망국의 한(恨)을 딛고 다시 세운 나라가 발해(渤海)다. 하지만, 그 또한 대가 끊긴 폐허 위로 천 년이 넘는 세월이 흘렀다. 남아 있는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무언가 남아 있기를 기대하는 그 자체가 모순일 것이다. 지금은 남의 땅이 되어버린 그곳에서 잡초속의 토성(土城)들의 흔적과 주춧돌들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하지만 무엇을 보여주자는 것이라기보다는 그 느낌을 전달하는 것에 무게가 있기에 허허로운 벌판에 서서 들풀에게, 나무에게, 그리고 지나가는 바람에게 말을 건다. 연해주 우수리스크 지역의 발해성터...
편집에디터2020.10.22 13:07요즘 코로나19로 전 세계가 곤욕을 치루고 있다. 이 난리가 앞으로도 얼마동안 이어질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기회에 우리 인간들의 삶을 되돌아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 세계의 꼼꼼한 곳들을 찾아다니면서 작업을 하며 즐거움을 찾던 일도 벌써 옛 일이 되어가는 듯 해 아쉬움이 많다. 몇 해 전에 다녀 온 트레킹으로 유명한 북인도의 잔스카르의 여행을 떠올려 본다. 아직도 문명의 손길이 크게 미치지 못한 오지에서의 순수한 삶들을 보면서 많은 것을 생각게 했던 기억들이 새롭다. '빠둠' 인근의 '카르차' 사원의 원경이다. ...
편집에디터2020.10.07 11:17최근 일는 아니지만 백두산 나들이를 나섰을 때의 기억이다. 가을색 짙어가는 시기였고, 천지에 올랐던 그 날이 또 추석날이었다. 그래서 인지 한복을 차려입은 조선족 동포들이 여럿 눈에 띄였다. 기상이 변화무쌍하기로 유명한 곳이지만 천지신의 기분이 좋았던지 그날 따라 화창하고 바람 또한 비단결 같았다. 비록 새련된 모습은 아니지만 민족의 영산으로 소풍나온 그들과 함께 함이 가슴 뜨겁게 하고 우리에게서 흘러가버린 세월의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느껴볼 수 있어 더 없이 좋은 날이었다.
편집에디터2020.09.17 18:09검푸른 바다색에 하얀 파도가 부서지는 동해 바다. 그 바다가 바라보이는 곳에 서면 몰아치는 찬바람에 옷깃을 여미면서도 우리는 낭만을 얘기하곤 한다. 하지만 바라만 보는 것을 너머 그 바다 속으로 뛰어 들고, 파도를 타고 수평선을 넘다보면 어느 틈에 낭만은 뒷전으로 밀리고 배 멀미의 울렁거림과 함께 가슴 깊이 밀려드는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동해의 그 깊은 바다에 외롭게 떠있는 섬들은 유난히도 외로워 보이는 것일까. 울릉도와 그 부속 섬들이 그렇고,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독도가 더욱 그렇다. 또 아침 햇살을 제일 먼저 받는 ...
편집에디터2020.09.03 18:28중국 화북성의 서남쪽에 태항산이 있다. 이 산은 험난하고 깊은 오지여서 예로부터 이곳을 기준으로 동쪽을 '산동(山東)'이라 불렀고, 서쪽을 '산시(山西)'라 불러오면서 역사 속에 자주 등장하는 유서 깊은 명산이다. 이곳의 자연이 비경이기는 하지만 그것에 홀리기 보다는 우리는 또 다른 이유로 이 산을 찾을 필요가 있다. 일제하의 암울한 시절에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해 청춘을 바쳐 싸워 나간 우리 독립군들의 눈물이 베이고 그 흔적이 곳곳에 산재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용군'이 바로 그들이다. '호가장 전투', '십자령 전투'가 ...
편집에디터2020.08.06 13:31중앙아시아에는 스탈린 시절에 연해주에서 강제 이주해간 우리 동포들이 많이 살고 있다. 일명 '고려인'이라 부른다. 이주 초창기에 있었던 그들의 한(恨)맺힌 삶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서 어느 정도 알고 있고, 이제 꽤 많은 세월이 흘러서 그들도 현지 생활에 적응하면서 기반을 다져오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막과 초원, 그리고 만년설을 이고 있는 산맥이 어우러져 있는 키르기즈스탄에도 고려인들이 몇 군데 흩어져 살고 있다. 그 중에 '까라발타'의 변두리에 있는 한 고려인 집에 들렸다. 할머니와 아들, 손녀가 반갑게 맞이해 준 이 집은 ...
편집에디터2020.07.23 11:20영산강을 따라 산책을 하고 있었다. 갖가지의 초목들 사이에서 들꽃들이 난무하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부럽지 않는 풍경이다. 무엇을 찾아가는 것도 아니고 누구를 만나러 가는 것도 아닌 지금 이 발길이기에 좋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언제부턴가 이런 들녘에서 일하는 사람들 모습을 보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모든 게 변하기 마련이라고 하면 그만이지만 그래도 일하는 사람이 들어있는 풍경이 그립다. 양어장이 있었다. 물고기가 들어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왜가리 한 마리가 설치해 놓은 실 덫에 걸려 죽어 있었다. 인간의 먹...
편집에디터2020.07.09 13:02바람을 따라서 원추리, 엉겅퀴 피어있는 풀밭사이를 걷다가 산딸기 따먹고, 벼랑 끝의 바위 위에 걸터앉아서 꽃나비와 친구하며 망망한 바다와 저 아래 암벽에 부서지는 백파를 바라본다. 혼탁한 속세에서 벗어나 먼 곳에 와 있음을 실감케 함은 물론이요, 세상에 지친 영혼을 잠시나마 쉬게끔 하는데 제격이다. 만일 이런 곳에 귀양살이 왔다면 그건 호사스러운 것이다. 한국 영토의 최서남단인 가거도. 상하이에서 닭우는 소리가 들린다는 곳이다. 일제시대 때 '소흑산도'라 명명되어 불려오기도 했지만 원래의 이름은 '아름다운 섬'이라는 뜻의 가가도(...
편집에디터2020.06.25 13:036.25 직후 빨치산 토벌작전이 한창일 무렵, 가족 관계이거나 또는 부득이하게 그들에게 도움을 줄 수밖에 없었던 민초들이 있었다. 그러나 세상은 냉혹해서 정치나 이념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어린 자식들에게 까지 화를 미쳤다. 빨치산에 당한 앙갚음 때문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토벌군에 의해 마을 양민들이 집단으로 학살된 비극이 있었다. 그 중의 하나인 산청군 사천면 외공리 암매장터의 십여 년 전 발굴 현장이다. 유해의 대부분은 어린이들이었다.
편집에디터2020.06.11 13:24여기 저기 빈집들이 보인다. 아니 버려진 집들이다. 누군가의 시간이 녹아 역사를 이루었을 그곳이지만 이제 아무도 찾는 이들이 없어 자연으로 돌아가는 그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한다. 모두들 어디론가 떠나기에 세상에는 변하지 않는 것이 없다고 했다. 특히 농어촌의 공동화 현상이 심각하다. 늙은 부모가 떠나고 나면 그 자리를 자식들이 이어받아 오다가 언제부터인가는 떠난 자식은 돌아오지 않는다. 단지 기억 속에 묻어둘 뿐이다. 누군가 떠난 빈자리 버려진 집들이 오늘도 눈물짓는다.
편집에디터2020.05.28 13:11만주 지역인 랴오닝성 랴오양과 등타시 사이에 있는 백암산성은 현지에서는 '엔쪼우성'이라 부르는 고구려 산성이다. 태자하가 흐르는 것을 굽어보고 있는 산정에서 1500년의 세월을 견디어 오면서도 비교적 다른 성에 비해 남아있는 성벽의 상태가 양호한 곳이다. 또한 기단 부분을 보면 전형적인 고구려식 들여쌓기 형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549년에 돌궐의 1만 군대의 집중 공격에도 함락되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봐서 규모는 크지 않지만 이 성벽의 견고함을 짐작케 한다. 일부 무너져 내린 성벽의 틈바구니로 나가 잡목과 가시덤불 사...
편집에디터2020.05.14 16:49여기 저기서 거대한 돌덩이들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그것도 놀랄 만큼의 아주 오랜 세월을 말이다. 당연 돌덩이들이야 억겹의 시간을 응축하고 있는 것이지만, 그냥 돌덩이들이 아니고 인간의 입김을 쐬고 손길이 미친 것들이기에 우리는 그것을 '고인돌'이라 부른다. 세계 도처에 거석문화의 하나로 이 고인돌들이 산재하고는 있지만 우리 한반도에 제일 많고, 특히 남도에 집중 분포되어 있다보니 과히 고인돌 왕국이라는 말도 서슴치 않는다. 청동기 시대의 산물이라고 말하지만 그 시간 또한 얼마나 거슬러 올라가야 될지 아직도 수수께끼에 싸여있는 ...
편집에디터2020.04.30 1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