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채 가시기 전인 이른 새벽부터 순례자들의 순례가 시작된다. 순례자들 사이에 끼어서 첫 번째 가파른 언덕을 오르니 광활하게 펼쳐진 황무지 너머 멀리 만년설의 고봉 ‘구르라 만하타(Gurla Mandhata 7728m)’가 웅대한 자태를 뽐내고, 그 밑에 ‘마나사로바’ 호수가 검푸른 바다색으로 가물거리고 있다. 이렇게 수미산을 걸어 도는 것을 ‘코라’ 또는 ‘파리카라마’라 하는데, 보통 시계 방향으로 시작하지만 반대 방향으로 도는 무리들도 있다. 이곳 순례자들은 대부분 멀리서부터 걸어온...
2023.09.14 12:18지난 8월 20일에 종료 된 서울시립미술관 서소문 본관에서 개최 된 에드워드 호퍼의 국내 첫 개인전 ‘에드워드 호퍼-길 위에서(Edward Hopper: From City to Coast)’ 전시회는 초기부터 말년까지 전 생애에 걸친 회화·드로잉·판화·수채화 160여점과 아카이브 등 총 270여점을 선보이며 작가의 삶과 예술세계를 큰 틀에서 조망하는 대규모 회고전 성격을 띄고 있었다. 전시 기간 중 매회 많은 관람객들의 방문으로 매진 사례를 이끌며 에드워드 호퍼의 인기를 실감 한 올해의 전시로 기억된다. 에드워드 호퍼(Edward...
2023.09.10 14:12“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열두 구비/ 마지막 고개를 넘어간다/ 아리랑 고개는 탄식의 고개/ 한번 가면 다시는 못 오는 고개” 비애와 수심에 가득 찬 아리랑 한 대목, 님웨일즈가 김산의 구술을 받아 쓴 책 『아리랑』에서 몇 구절 가져왔다. 만주로 중앙아시아로 뿔뿔이 흩어져 독립운동을 했던 이들이 마지막 넘었던 고개다. 일본으로 미국으로 산산이 흩어져 넘어야 했던 또 다른 문경 고개다. 떡 바구니를 인 어머니가 호랑이에게 팔다리를 떼어주고 목숨까지 바치며 넘어야 했던 스무고개다. 아리랑 노래의 ...
2023.09.07 14:35종합예술인 오페라는 시대를 투영하는 가장 장대한 예술 프로젝트다. 우리에게도 널리 알려진 이집트 수에즈 운하 개통 기념으로 만들어진 베르디의 가 그 좋은 예라 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해외 못지않게 근래에 지역의 정신을 담는 대표적인 오페라를 만들려는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대전이라는 도시 브랜드 스토리를 위해 만들어진 , 제주 4·3 사건을 다룬 , 우리나라 최초의 성악가인 윤심덕의 이야기를 다룬 영남 오페라단의 , 전주 호남 오페라단의 와 정읍의 동학 농민운동을 소재로 한 등이 있다. 다양한 실험적 작품들이 만들어지고 ...
2023.09.07 09:23이진은 그리 알려진 마을이 아니다. 독특한 볼거리가 있는 것도 아니다. 국보나 보물 같은 문화유산도 없다. 큰 도로의 나들목이나 교차로가 지나는 곳도 아니다. 하지만 알고 보면, 속이 꽉 찬 마을이다. ‘알토란’ 같다. 일본에 맞선, 항일의 ‘대표주자’로 불릴만한 곳이다. 역사도 깊다. 정유재란 때 이순신 장군도 들렀다. 1597년 8월 20일(양력 9월 30일), 회령포에서 배를 타고 울돌목으로 가는 길이었다. 뱃속이 요동을 치고, 머리는 깨질 듯이 아팠다. 구역질과 구토가 계속됐다. 몸을 가눌 수 없었다. 날마다 강행...
2023.08.31 15:04지난 1세기 수많은 장르가 쟁패를 거듭했다. 역사, 종교, 사회, 문화, 풍속 등 거의 전 분야에 걸친 파란이었다. 내부적인 요인도 있지만, 열강들의 각축이라는 외부 충격이 컸다. 하나의 양식이 바뀌기까지 수 세기가 소요된 이전의 사회에 비한다면 불과 한 세기에 혁명적인 전환이 일어났다. 음악 장르라고 다를 바 없다. 간단없는 파고를 일반인들이 눈치채지 못했을 뿐이다. 일제 강점기를 지나면서 승자가 갈렸다. 오늘날 우리 음악에서 어떤 장르가 득세하는가를 보면 그 일단을 엿볼 수 있다. 예컨대 전통음악 쪽에서는 판소리와 산조가 국악계...
2023.08.31 14:47러시아 용병 바그너 그룹 수장 프리고진이 항공기 추락사고로 사망했다. 우크라이나와의 전쟁의 상황에서 러시아에서 무장반란이 일어난 지 꼭 2개월 만이었다. 6월 23일 저녁 프리고진은 러시아 국방부 부대가 용병 캠프에 미사일 공격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러시아 연방의 군사 지도부와의 실제 무력 충돌이 있었다. 6월 24일 프리고진은 로스토프 나돈누 남부 군관구의 본부 및 여러 행정 건물을 바그너 그룹의 통제 하에 두었고, 그의 군대는 보로네시 지역에서 모스크바로 향했다. 그는 이를 ‘정의의 행진’이라고 칭했다. 바그너의 행진에 각지...
2023.08.31 13:02먼저, 참으로 부끄럽고 애통하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옛날, 즉 1402년인 조선 초기에 세계 최초로 아프리카까지 그려 천하를 넘어 또 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던 것이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다. ‘좌의정 김사형’, ‘우의정 이무’, ‘참찬 권근’, ‘검상 이회’ 이 네 분이 당시 최고의 세계지도를 그려낸 그 주역들이다. 그러니까 희망봉이 발견되기 훨씬 전이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다고 야단법석을 떨던 때 보다 무려 90년 전이다. 물론 지금 시각으로 이 지도를 보면 곳곳에서 엉뚱...
2023.08.31 12:37~간다 간다 나는 간다/에이야라 술비야/ 울릉도로 나는 간다/에이야라 술비야/ 울릉도로 향해보면/에이야라 술비야/ 고향생각 간절하네/에이야라 술비야/ 고향산천 돌아오면/에이야라 술비야/ 부모처자식 반가와라/에이야라 술비야~ 거문도 술비소리 중 한 대목이다. 놋소리, 월래소리, 가래소리, 썰소리 등을 포함하여 거문도 뱃노래라 한다. 1972년 전남 무형문화재 제1호로 지정되었다. 남도 민요 중에서 첫 번째로 지정한 의미가 있겠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는 술비소리를 거문도 뱃노래의 하나로 설명한다. 하지만 ...
2023.08.24 12:48한때 사나이의 가슴을 웅장하게 만들었던 드라마 는 안방극장을 점령했다. 주먹세계의 이야기를 다뤘던 이 드라마에서 낭만시대 보스들의 결투로 자웅을 가리는 장면들에 시청자들은 환호를 보냈다. 이러한 상남자들의 결투는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전통적으로 내려오고 있다. 서유럽에서 권총 두 자루로 20보씩 뒤돌아 걸은 후 상대방을 향해 쏘는 방식과 이탈리아 시칠리아에서 상대방의 귀를 물어뜯고 결투를 신청한 후 죽을 때까지 칼로 싸우는 방식, 미국 서부 총잡이들의 결투 등은 해외 영화나 드라마를 통해 우리에게 널리 알려져 있다. ...
2023.08.24 09:30대황강변 석곡에서 하룻밤을 보낸 이순신은 보성강을 건넌다. 아직도 어두운 이른 새벽, 강변의 새벽바람은 차가웠다. 계절은 초가을이지만, 강바람은 초겨울이었다. 사방이 어두운 탓에, 어디가 강이고 땅인지 분간할 수 없을 지경이다. 횃불을 밝힐 수도 없는 처지다. 언제 어디에서 일본군의 정탐꾼이 엿보고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대곡나루에서 배를 타고 대황강을 건넌 이순신은 어둠 속을 달렸다. 목적지는 창촌에 있는 부유창(富有倉)이었다. 이순신은 정찰을 다녀온 군관 이형립을 통해 이복남의 부대가 부유창으로 이동한 사실을 이미 알고 ...
2023.08.17 17:02사할린 동포 ‘배도흘’의 안내를 받아 ‘코르사코프’라는 남쪽 항구에 갔다. 언덕 위에 오르니 부둣가 저 멀리까지 바다가 가없다. ‘망향의 언덕’이란다. 일제가 패망하자 돌아가는 일본인들을 부러운 눈으로 보면서 이곳 동포들은 너나없이 이 언덕에 올랐다. 자신들을 조국으로 실어다 줄 배가 오리라 믿고 기다리고 기다렸지만 배는 끝내 오지 않았다. 조국이 이들을 버렸다기 보다는 애당초 기대를 말았어야 했다. 그때가 벌써 78년 전 일이다. 꽤 많은 시간이 흘렀음이다. 그...
2023.08.17 16:08현재 ‘남도’라는 용어 혹은 개념은 광주와 전라남도에 한정해 사용된다. 지금의 용처로만 따지면 남도가 곧 광주와 전라남도다. 그중에서도 전라남도에 비중이 있다. 하지만 출처는 다르다. 그간 ‘남도 인문학’을 표방하고 수년간 남도의 범주나 범위에 대해 밝혀두었다. 그러함에도 오늘 다시 일러두는 까닭은 남도가 결코 광주와 전라남도에 한정되는 지리적 용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남도라는 말은 도대체 어디서 온 말이고 어떻게 사용되었을까? ‘남도’라는 이름의 출처와 고 지춘상의 기억 국어사전에서는 ‘남도’를 이렇게 설명한다. 첫...
2023.08.17 15:152023년 제14회 광주비엔날레가 4월 7일에 시작하여 7월 9일에 막을 내렸다. 조금 늦었지만 이번 행사 중에 눈에 뛴 것은 한국과 세계 미술기관의 네트워크 확장을 위해 실시한 광주비엔날레 파빌리온이었다. 이 파빌리온에는 우크라이나, 폴란드, 네덜란드 등 총 9개국이 참여하였다. 특히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은 국립아시아문화전당(ACC)에서 매주 토요일마다 3편의 영화를 상영하는 것이었다. 상영작은 , , 였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의 참여 기관은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이었다. 우크라이나 파빌리온의 제목은 ‘우크라이나, 자유의 영...
2023.08.17 12:51세계 어디를 막론하고 불륜은 드라마 소재로 각광을 받는다. 남미, 스페인, 미주, 아시아권 등 해외의 불륜 드라마는 격정적이고 19금을 넘나들며 파격적인 내용으로 자국의 안방극장의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한다. 한국에서는 불륜에 막장까지 더해 한층 묘한 매력을 발산하며, 또 다른, 격정의 장르로 사랑과 배반, 복수를 절절히 풀어내 한국의 안방극장을 넘어 또 다른 영역의 드라마 한류로 세계 속에서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오페라 안에서도 불륜은 가끔 차용되는 관심의 대상이며, 특히 사실주의 오페라에서는 끔찍한 죽음의 비극적 결말을 통해...
2023.08.10 14: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