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인ㆍ군인ㆍ현인의 합종연횡으로 본 인류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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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인ㆍ군인ㆍ현인의 합종연횡으로 본 인류 역사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 저 | 이유영 옮김| 원더박스 | 1만9800원
자본이 지배하는 사회
상인 중심의 역사 재구성
  • 입력 : 2016. 07.08(금) 00:00



영국 옥스퍼드대 사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프리스틀랜드는 신간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에서 인류 역사를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을 보탠다. 그는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에서 '카스트'라는 고대의 틀을 소환해 역사의 동력을 이해하는 새로운 관점을 제안한다.

저자는 오늘의 역사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상인, 군인(전사), 현인이라는 세 카스트의 역할과 가치를 파악해야한다고 역설한다.

상업적이며 경쟁적인 동기를 앞세운 상인집단, 귀족적이며 군국주의적 동기를 앞세운 군인(전사)집단, 그리고 관료제적 또는 사제적 성향의 현인 집단이 바로 그것이다. 세 카스트는 서로 대립하거나 협력하면서 노동자 집단을 억누르거나 구슬리며 권력을 쟁치하고, 지배질서를 형성해왔다.

책은 고대부터 근현대, 동양과 서양, 경제제 이론부터 문학 작품까지 다양한 범주를 넘나들며 역사의 주요 장면들을 새롭게 포착한다. 그리고 이들 세 카스트가 어떻게 합종연횡하며 권력의 부침과 순환을 만들어왔는지 명쾌하게 설명하고 있다.

상인 집단이 패권을 쟁취하는 과정을 기둥으로 저자는 역사를 다음과 같이 재구성한다.

1장 '카스트 투쟁'에서는 고대 및 중세 농경사회를 지배했던 카스트들을 간략하게 살핀다. 그리고 오랫동안 미천한 신분으로 제약받던 상인이 수백 년에 걸쳐 어떻게 그 속박을 뚫고 부상했는지를 보여준다.

2장 '철의 주먹과 벨벳 장갑'에서는 19세기에 이르러 영향력이 커졌지만 여전히 귀족 출신 지배 엘리트들의 말단 동업자에 지나지 않았던 상인 집단의 모습을 살핀다.

하지만 19세기 중엽에 이르러 독일과 일본 같은 신흥 강대국이 부상한다. 현인-테크노크라트(과학적 지식이나 기술을 소유해 사회 또는 조직의 의사결정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관료)와 상인 집단의 도움으로 중공업 기반 경제체제를 이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인 집단이 융성하기 위한 조건인 '평화로운 세계'는 전사 집단의 독주 탓에 파탄에 이른다. 제1차 세계대전이다. 전쟁을 일으킨 귀족-전사 집단은 대중의 신뢰를 잃었고, 제국들도 힘을 잃었다. 덕분에 오히려 상인을 위한 독무대가 마련된다.

3장은 '오만과 파국'이다. 1920년대 미국이 압도적 패권국으로 부상하며 상인 집단이 지배력을 확장해 간다. 그러나 치세는 짧았다. 상인의 시장 근본주의, 노동자와 관료제 등에 배타적인 태도 때문에 사회 안정을 구축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자산 거품과 부채, 사회적 불평등도 몰락에 기여했다. 1918년 1차 세계대전이 귀족 지배 체제를 무너뜨린 시발점이 되었듯, 1929년 대공황이 터지고 상인 집단은 사회적 신뢰를 잃었다. 대공황이 야기한 혼란은 결국 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졌고, 권력의 축은 다시 이동한다.

4장은 '똘똘이'들의 시대다. 세계가 극우와 극좌로 나뉜 사이, 스칸디나비아 반도와 미국에서는 비교적 지속 가능하고 포용적이며 균형잡힌 모델이 출현했다.

사회민주주의다. 이 모델은 전사 집단의 역할을 축소하고 노동자와 상인 집단의 역할을 키우려 했다. 체제의 궁국적인 관리 감독 기능은 현인-테므코크라트 집단이 맡고, 자유민주주의 제도가 체제 전반을 지탱하는 방식이다. 이 같은 '현인'적 모델이 2차 대전이후 세계를 장악한다. 이른바 '똘똘이'들의 시대다.

상인들의 반격도 시작된다. 현인 체제가 냉전이라는 버팀목에 과도하게 의지하면서 전사 집단이 다시금 고개를 들고 무력 갈등을 야기한 탓이다. 대표적인 예가 베트남전쟁이다. 또 경직된 현인-노동자 체제는 1970년대 발생한 여러차례 경제 위기와 후기 산업사회로의 이행 과제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다.

이를 틈타 1960년대 냉전 질서에 반기를 들었던 학생운동 집단을 끌어들인 상인집단이 1970년대 들어 다시금 패권을 되찾기 시작한다.

냉전 시대를 거치면서 전사와 현인집단은 물론 공산권 붕괴로 노동자 집단마저 사회적 신뢰를 상실한 처지였다. 견제할 만한 적수들이 사라지고 상인 집단이 단일 패권 시대를 위한 최적의 환경이 조성된 것이다. 바야흐로 상인의 가치가 전 세계를 집어삼기는 '다보스맨의 독주'가 시작된다.

지금 우리는 상인이 지배하는 세계의 현실을 보고 있다. 최대 희생자는 노동조합이라는 노동자의 성채와, 정부와 공공부문이라는 현인 집단의 거점이었다. 탈규제 정책과 대량 실업으로 노동조합은 힘을 잃었고, 금융권은 대출을 거부하고 통화 공격을 감행하는 방식으로 정부를 길들였다. 복지 지출의 대량 삭감, 보건과 교육 등 공공부문의 영리화로 이어졌다. 30년간 족쇄 풀린 상인집단이 독주한 결과 부의 불평등, 사회 불안이 정점에 치닫고 있다.

저자는 '왜 상인이 지배하는가'를 통해 한 집단이 배타적으로 독주할 때 권력의 수례바퀴는 반드시 다시 돌아가기 시작함을 보여준다. 권력의 지각 변동은 이미 시작됐다. 다음은 어떤 카스트가 왕좌에 오를지 또는 노동자를 포함한 각 카스트가 권력을 나누는 평화의 시대가 도래할 지, 자연스럽게 추론으로 이끄는 것이 이 책이 주는 선물이자 과제다.

홍성장 기자 sjhong@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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