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층 ‘핫플’에 넘쳐나는 일본어 간판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사회일반
젊은층 ‘핫플’에 넘쳐나는 일본어 간판
광주 동구 동명동·남구 양림동
메뉴도 일본어·엔화 표시까지
한글 병기 안 하면 ‘불법’인데
처벌 조항 없어 계도 그칠 뿐
  • 입력 : 2023. 03.30(목) 18:25
  • 강주비 기자·장아현 수습기자
광주 동구 동명동 일대 한 일본식 식당에 메뉴가 모두 일본어로 표시돼 있다. 장아현 수습기자
광주 남구 양림동 일대서 발견한 한 일본식 식당의 간판이 한글 없이 일본어로만 표기돼 있다. 강주비 기자
“분명 ‘○○○’으로 오라고 했는데 그런 가게가 없어서 한참을 찾았다니까요. 알고 보니 간판이 일본어로 돼 있어서 못 알아봤던 거예요.”

이지영(33)씨는 최근 광주 동구 동명동에서 약속을 잡았다가 20분을 늦었다. 친구가 알려준 가게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씨는 해당 장소가 일식집이라는 것을 전달받고 나서야 겨우 일본어가 적힌 가게를 찾았지만, 인근에 일본어 간판이 너무 많아 또 한참을 헤매야 했다.

김씨는 “한글 없이 일본어만 표기해놓으면 거기가 어떤 가게인지 알고 들어가라는 건지 모르겠다. 영어도 잘 모르는데 일본어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라고 토로했다.

최근 광주 거리에 일본어 간판이 난립하고 있다.

특히 한글이 병기돼 있지 않거나, 메뉴와 가격까지 일본어로 표기된 경우도 있어 자정이 필요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지난 28일 젊은 세대들의 ‘핫플레이스(사람들이 많이 찾는 인기 장소)’로 불리는 광주 동구 동명동과 남구 양림동 일대를 돌아보니 의미를 해석할 수 없는 간판들이 곳곳에서 발견됐다.

그중에서도 생소한 일본어로 쓰인 간판들이 눈에 띄었는데, 일부는 주소, 메뉴와 가격까지 일본어·엔화로 표시돼 있었다. 물론 이 경우 따로 한글 메뉴판을 마련해 놓은 것으로 확인됐지만, 외부에서 보기엔 어떤 업종인지조차 파악하기 어려워 보였다.

간판에 작게라도 한글을 함께 써 놓은 곳도 있었지만 가까이서 봐야 겨우 알아볼 수 있는 정도여서 효용성은 떨어졌다.

시민들은 우후죽순 들어서는 낯선 일본어 간판에 불편함을 느끼는 표정이다.

시민 이모(54)씨는 “양림동은 얼마 전 3·10 운동 행사도 열리지 않았나. 그런 역사적인 곳에 일본어로만 가득한 간판이 들어서 있는 게 좋아 보이진 않는다”면서 “일식 가게라고 해서 실내 장식이나 메뉴까지 일본어로 할 필요는 없는데 과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20대 조아영씨는 “외국인이 몰려있는 특정 지역이 아닌 이상 주 고객은 한국인일 텐데 메뉴나 설명까지 일본어로만 돼 있으면 ‘일본어 모르는 사람은 안 받겠다’는 의미라고 생각한다”며 “노인들은 특히 인터넷 검색도 잘 못해 점점 더 소외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가게 주인들은 일본어 간판이 오히려 손님을 끌어오기 위한 ‘전략’이라는 입장이다. 동명동에서 일식집을 운영하는 한 사업주는 “한식집의 경우 전통 한옥 건물의 모양새를 갖추고 있으면 더 전문적으로 보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며 “특히 동명동 등 젊은 세대들이 많은 곳은 인스타에 사진 올리기 좋은, 소위 ‘인스타 감성’이 있는 곳이 장사가 더 잘된다. 일본어 간판 등 현지 느낌이 나는 인테리어로 실제로 외국에 와 있는 듯한 기분도 느낄 수 있고, ‘인스타 감성’도 채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외국어 간판에 대한 제약은 없는 것일까. 외국어 간판은 위치를 설명하기 어려워 가게 이용에 어려움이 많고, 위급 상황 시 대응이 지체되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어 지자체의 관리 대상이다. 그러나 관련 법령에 처벌 조항이 없어 단속이 쉽지 않은 실정이다.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 제12조2항에 따르면 ‘특별한 사유 없으면 외국어 사용 간판은 한글과 함께’ 적어야 한다. 다만 이에 따른 처벌 조항은 따로 없고, 지자체서 기준에 맞지 않은 간판에 대해 제거, 허가 취소 등 조처를 할 수 있다. 지자체 명령을 어기면 500만원 이하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지자체들은 단속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면적 5㎡ 이상이거나 4층 이상에 설치된 간판은 지자체 신고 대상이여서 한글 병기 등을 확인·규제할 수 있지만, 신고 대상이 아닌 간판은 일일이 규제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 대부분이 소상공인이다 보니 민원이 들어와도 강제성 있는 명령이나 행정처분이 보다는 현장 계도 수준의 조치를 취하는 분위기다.

한 자치구 관계자는 “외국어 간판과 관련 1년에 20여 건의 민원이 들어온다. 지난해부턴 일본어 간판이 많이 늘어나 관련 민원도 늘어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면서도 “단순히 ‘한글 병기’라는 일반적 표시 방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소상공인을 상대로 이행 강제 등의 조치를 하기는 어렵다. 아울러 일일이 단속하기엔 이미 너무 많은 간판이 외국어를 사용하고 있다. 현재는 민원 발생 시 현장 계도 등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주비 기자·장아현 수습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