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8일 휠체어 이용자 김승일씨가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광주 북구 한 의원에 방문하기 위해 경사로를 오르고 있다. 강주비 기자 |
해당 병원은 2층에 위치했는데, 승강기가 없었기 때문이다. 계단 앞에서 망연자실한 표정을 짓던 김씨는 “이런 곳을 ‘장애 주치의 병원’이라고 할 수 있나”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같은 날 김씨는 북구에 위치한 또 다른 장애 주치의 병원을 찾았다. 그나마 이곳은 건물 1층에 있고, 경사로도 있어 병원 안까지 무사히 들어갈 수 있었다. 하지만 다음부터가 문제였다. 진료 대기 중 화장실을 이용하려던 김씨 앞에 높은 문턱이 등장했다. 김씨는 의료진에게 장애인 화장실 여부를 물었으나 ‘없다’는 대답만 돌아왔다. 남은 진료 대기시간은 30여 분. 결국 김씨는 또다시 진료를 포기하고 병원을 나왔다.
장애인에 지속·포괄적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 주치의 사업 참여 병원’ 대다수가 경사로, 승강기 등 편의시설이 마련돼 있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지고 있다. 장애 주치의 병원이란 중증장애인이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장애 주치의로 등록된 의사 중 1명을 선택해 만성질환 및 건강 상태를 지속·포괄적으로 관리받을 수 있도록 하는 제도다.
장애인은 장애 주치의 병원으로 등록된 의료기관을 방문해 상담을 진행한 후 주치의를 선택, 서비스 이용을 신청할 수 있다.
주치의를 통해 장애인이 제공받을 수 있는 주요 서비스는 △건강 포괄평가 및 계획수립 △교육·상담 △맞춤형 검진바우처 제공 △방문 서비스 등이다. 장애인은 진료 비용의 10%만 지불하면 되며, 의료기관은 관련 서비스 제공에 든 비용을 공단에 청구할 수 있다.
![]() 지난 18일 휠체어 이용자 김승일씨가 장애인 건강주치의 의료기관으로 등록된 광주 북구 한 의원을 찾았으나, 승강기가 설치돼 있지 않아 2층으로 올라가지 못하고 있다. 강주비 기자 |
국민건강보험공단 홈페이지가 제공하는 장애 주치의 병원 상세 정보를 분석한 결과, 광주 장애 주치의 병원 절반 이상이 편의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장애 주치의 병원 33곳 중 18곳(54%)의 주 출입구에 자동문, 경사로 등이 설치되지 않았다. 또 대다수가 1층 이상에 위치함에도 불구, 17곳(51%)에 승강기가 없었다.
장애인 화장실과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지 않은 병원도 19곳으로 57%를 차지했다. 대기실에 시각장애인을 위한 청각안내장치를 구비하지 않은 곳은 26곳(78%), 청각장애인을 위한 영상모니터가 없는 곳은 25곳(75%)이었다. 사실상 시각·청각 장애인이 이용할 수 있는 장애 주치의 병원은 10곳도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편의시설이 전혀 없는 병원은 6곳(18%)이었다.
전남의 경우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전남 장애 주치의 병원 16곳 중 주 출입구에 자동문, 경사로 등이 없는 곳은 8곳(49%), 승강기가 없는 곳은 12곳(51%)이다. 7곳(57%)엔 장애인 전용 화장실이, 11곳(68%)엔 장애인 전용 주차구역이 마련돼 있지 않았다. 2곳(12%)은 편의시설이 하나도 없었다.
더욱이 방문 진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장애 주치의 병원은 광주 5곳·전남 3곳뿐이어서 장애인들의 이용률은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광주공공보건의료지원단의 보고서에 따르면 광주 등록 중증장애인 2만7795명 중 주치의 사업 이용자는 124명으로 0.45%에 불과했다. 해당 보고서는 장애인들의 낮은 이용률에 대해 ‘주치의에 참여하는 의료기관들의 편의시설 설치 현황을 살펴본 결과, 미설치율이 최대 92%에 이른다’고 분석했다.
전문가들은 사업의 활성화를 위해선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이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배영준 광주장애인차별철폐연대 상임활동가는 “현재 장애 주치의 사업의 참여 조건은 ‘주치의 교육 이수’가 거의 전부다”며 “실효성 있는 제도가 되려면 지자체에서 조례 제정을 통해 편의시설에 대한 최소한의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공공보건의료지원단장을 맡고 있는 권순석 전남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는 “장애인의 경우 비장애인보다 복합 질환을 가지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 정기적인 검진이 필수적인데, 정작 검진율은 비장애인보다 10%가량 낮다”며 “사업 활성화를 위해선 편의시설 설치·유지를 위한 정부와 지자체의 재정 지원이 필수적이다. 지자체와 유관기관의 고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강주비 기자 jubi.kang@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