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일보]기고·김요수>우정의 정치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테마칼럼
[전남일보]기고·김요수>우정의 정치
김요수 광주연합기술지주 대표
  • 입력 : 2023. 10.09(월) 14:12
김요수 대표
재래시장에 가면 어묵이나 떡볶이 먹는 재미를 빼놓을 수 없다. 팥죽이나 칼국수 또한 혀끝을 간지럽게 하고, 전과 튀김도 군침을 돌게 한다. 어렸을 때 엄마가 장을 보러 간다하면 손부터 잡으려는 마음이 생기기도 했다.

오죽하면 ‘지게 지고 장에 간다’는 익은 말(속담)이 생겼을까. 5일장은 옛날에 가장 멋진 문화생활이었을 게다. 새롭고 신기한 세상이 펼쳐지고 궁금증은 더해지고, 그러니 남이 장에 간다니까 두엄 지게를 메고 자기도 모르게 장에 따라 가게 되었을 것이다.

두엄은 풀이나 가랑잎에 동물의 똥오줌을 섞어 만든 거름을 말한다. 일본의 근대화인 ‘메이지 유신’을 본뜬 ‘박정희 유신’ 때는 두엄이란 우리말을 버리고 ‘퇴비(堆肥)’라는 말을 썼다.

아무튼 해야 할 일을 잊고, 아무 혜윰(생각) 없이 그냥 따라 나서게 하는 일은 많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도 있는 걸 보면 말이다. 강남은 옛 중국 양쯔강의 남쪽을 말하는데, 먹고 살기에 넉넉하고, 날씨도 좋아 살기 좋은 곳을 가리킨다. 지금 대한민국 서울의 강남도 아마 그렇게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그런 말은 미국에도 있었다. 서부 개척 시대에 금광을 찾아 떠날 때 마차에서 음악을 연주했던 모양이다. 무작정 마차 음악을 따라 나서던 일을 ‘밴드 왜건(Band Wagon) 효과’라 했다. 줏대 없이 그냥 누군가를 따라하는 일이니 ‘부화뇌동(附和雷同)’과 같은 뜻이겠다.

선거 때가 되면 우리나라 정치인은 재래시장에 어묵과 떡볶이를 먹으러 간다. 검은 비닐봉지에 생선이나 과일을 담기도 한다. 얼핏 ‘나는 서민이로소이다’를 드러내려 하지만 코스프레다. 코스프레(코스튬 플레이)는 게임이나 만화의 주인공처럼 꾸미는 일이다.

그런데 어묵과 떡볶이를 먹고 돈을 내지 않는다면? 강탈(强奪)이거나 약탈(掠奪)이다. 한때 재래시장에서 장사하는 일을 지켜준다면서 돈을 걷어가거나 행짜를 부린 놈들이 있었다. 자릿세란 이름을 달고 힘으로 을러메어 빼앗았다.

우리는 그들을 건달이라고 불렀다. 혼자가 아니라 여럿이서 그 짓을 하면 ‘깡패’라 했다. 마치 지켜주는 것처럼 ‘의리’란 말로 포장했지만 폭력이다. 힘으로 제 잇속만을 챙긴 야만이다.

심지어는 제 뱃속을 채우려고 다른 나라의 힘을 끌어오기도 했다. 일본을 등에 업은 갑신정변, 청나라와 일본군을 끌어들인 동학농민혁명의 역사 안에 있다. 우리의 독립운동사에도 셀 수없는 ‘깡패의 정치’가 숨어있다.

깡패의 정치에는 자존심을 뭉개는 깐족거림이 있고, ‘까라면 까라’는 억지가 있고, 수단을 가리지 않는 폭압이 있다. 깡패의 정치에는 힘없는 사람을 걱정하는 배려가 없고, 잘못을 느끼는 부끄러움이 없고, 옳고 그름을 구별하는 양심이 없다. 다만 제 잇속만 있다.

정치는 물론이려니와 법 또한 어렵고 힘든 사람을 지켜줘야 맞다. 그런데 가진 놈들의 재산과 권력만 지키는 법은 깡패의 법이다. 생활양식을 바꾸면 될 일을 법으로 만들어 법의 잣대를 들이대며 겁박하는 일 또한 깡패의 법이다.

법 공부를 시작할 때 어렵고 힘든 사람을 돕겠다던 법조인들이 돈과 권력이란 강물에 그 다짐을 떠내려 보낸 사람이 많다. 돈과 권력에 빌붙은 법은 누구를 감싸고돌까, 혹시 깡패는 아닐까? 바람만 불어도 눕는 풀잎사람(서민)들은 깡패의 정치와 깡패의 법 앞에서 골병들거나 무너진다.

그래서 강기정 광주광역시장의 ‘우정의 정치’가 반갑다. 우정의 정치는 돈과 권력이 아니라 대중의 경제를 생각하는 책임 정치, 상생과 분배를 생각하는 포용 정치, 문화융성과 세대교체를 말하는 미래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