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용환 논설실장 |
하지만 정작 비극의 주연은 바이러스가 아닌 세균성 박테리아였다. 스페인 독감에 감염된 환자들은 면역 체계가 무너져 세균성 폐렴 등 2차 감염에 취약했고, 대부분의 사망자는 박테리아가 원인인 세균성 폐렴으로 생명을 잃었다. 당시 의학계도 ‘적절한 항생제가 없었던 상황에서 바이러스와 박테리아가 그동안 쌓아왔던 인류의 의학 능력을 한껏 조롱했다’고 토로했다. 얼마 전 지구촌을 뒤흔든 코로나19도 바이러스 감염에 의한 사망보다 폐렴에 의한 사망이 훨씬 많았다.
숙주 없이 살아갈 수 없는 바이러스와 달리 박테리아 등 세균은 스스로 에너지를 만드는 독립적인 생명체다. 지구 상에서 가장 수가 많고 적응력도 뛰어나다. 수심 1만m 아래 바다 속부터 원전 폐기물 저장탱크까지 지구상에서 세균이 살지 못하는 곳도 없다. 세균은 또 생명체에게 양날의 칼이다. 일부 박테리아와 세균이 생명체의 생존을 돕고 농업과 환경을 보호해 주는 반면, 일부는 폐렴구균처럼 위협적이다. 유전공학자 버나드 딕슨은 이런 세균을 두고 ‘보이지 않는 권력자’라고 했다. 인류와 공존하면서 적이자 동지로서 인류에 엄청난 영향을 끼쳤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최근 인도 마드라스 공대와 NASA연구진이 우주정거장에 있는 박테리아에서 지구와는 전혀 다른 돌연변이를 발견했다고 한다. 극한의 우주환경에 장기간 노출되면서 변이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게 연구진의 추정이다. 진화와 적응을 거쳐 대기권 밖에서 살 수 있는 첫 생명체의 가능성도 내놨다. 딕슨은 박테리아를 두고 ‘변신의 천재이면서 생명의 본체’라고 했다. 생명체라곤 없는 우주에서 이 박테리아는 변신의 천재답게 새로운 생명으로 진화를 계속할 수 있을까. 우주개발이라는 인간의 탐구욕이 만들어낸 상상할 수 없는 ‘우주형 박테리아’가 인류와 지구 생태계에 어떤 변화와 충격을 가져올 지 두렵다. 이용환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