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새야 새야 파랑새야'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서석대>'새야 새야 파랑새야'
최도철 미디어국장
  • 입력 : 2024. 05.13(월) 17:08
최도철 미디어국장
순창에서 사는 지인에게 호박 모종을 얻어오면서 녹두도 조금 가져왔다. 녹두는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니 5월말이나 6월초 아무 데나 뿌려놓으라며 한 움큼 봉지에 담아줬다.

작고 단단한 진녹색 알을 보니, 백 가지 독을 다 풀어준다는 녹두의 효능과 함께, 어릴 적 의미도 모른 채 불렀던 민요가 생각났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 녹두밭에 앉지 마라/ 녹두꽃이 떨어지면/ 청포장수 울고 간다”

나중에 알았지만, 이 민요는 동학농민혁명 당시의 민중가요였으며, 죽은 자를 애도하는 구슬픈 만가(輓歌)였다.

만가는 상여꾼들이 상여를 메고 나아가면서 부르는 조곡을 말한다. 싸우다가 숨져버린 남편이 애처러워, 동학군의 아내들이 상여를 따르며 흐느꼈던 노래가 ‘새야 새야 파랑새야’이다.

노래에 나오는 파랑새는 푸른색 군복을 입은 일본군을 의미하고, 녹두밭은 전봉준이 이끄는 동학군을, 청포장수는 백성을 상징한다.

동학농민혁명은 1894(고종 31)년 녹두장군 전봉준이 중심이 되어 일으킨 민중 항쟁으로, 낡은 봉건제도 아래 신음하던 농민들이 부당한 현실과 외세의 침략에 자주적으로 대항한 역사적 사건이다.

비록 실패로 막을 내리긴 했으나 동학농민혁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평등한 세상’을 열기 위한 사회개혁 운동이며, 인간 존중 사상과 자주정신을 일깨워준 최초의 민중항쟁이다.

이들의 외침은 나중 3·1운동, 항일 의병 활동, 4·19혁명, 5·18민주화운동, 6·10민주항쟁, 촛불시민혁명으로 면면히 이어져 왔다.

동학농민혁명은 그 역사적 중요성을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아 지난해 5월 18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올해는 동학을 창시한 수운 최제우 탄생 200주년이며, 동학농민혁명 130주년을 맞은 해다. 국가는 2019년 황토현 전승일인 5월 11일을 동학농민혁명기념일로 제정했다.

지난 주말 기념일을 맞아 국가유산(사적)으로 지정된 동학농민혁명 4대 전적지(정읍 황토현·공주 우금치·장성 황룡·장흥 석대들)를 비롯해 전국에서 행사들이 잇따라 열렸다.

꽃이 진 자리, 그 상처 위에 열매가 맺히는 것처럼 ‘사람이 하늘이 되고, 하늘이 사람이 되는 살맛나는 세상’을 꿈꿨던 그 날의 함성을 기억하고, 그들의 눈빛을 기록하는 동인들이 쉼없이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