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이국적 세계로 갈 수 있다면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문화일반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이국적 세계로 갈 수 있다면
전남도립미술관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
벨기에 출신 ‘리너스 반 데벨데’
공상적 회화·영상·설치 등 선봬
작가 도플갱어 ‘하루의삶’ 눈길
“일상 탈피한 무한한 상상의힘"
  • 입력 : 2024. 05.29(수) 10:36
  •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
리너스 반 데 벨데 작 하루의 삶, 단채널 비디오. 전남도립미술관 제공
상상과 허구 사이의 미학.

전남도립미술관은 현실과 허구를 가로지르는 순환적 내러티브를 통해 확장적 회화를 구축하는 벨기에 출신 작가 리너스 반 데 벨데의 전시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를 오는 8월 18일까지 연다. 이 전시는 글로벌 동시대 미술 플랫폼인 ‘아트선재센터’의 기획을 시작으로, 서울 아트선재센터와 스페이스 이수에 이어 전남도립미술관에서 두 번째로 열리는 자리다. 벨기에 앤트워프에서 주로 활동하는 리너스 반 데 벨데(Rinus Van de Velde, 1983~)의 회화, 영상, 조각, 설치 등 독특하고 실험적인 작품 세계를 엿볼 수 있다.

리너스 반 데 벨데는 자신의 작업실 안에서 상상과 공상만으로 어디든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의미로 스스로를 ‘안락의자 여행자’라 소개한다. 또한 작가는 직접 밖으로 여행을 떠나는 대신 책과 영화, 뉴스와 잡지, 미술 서적과 역사서 등 다양한 매체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으며 이를 작품 속 스토리로 활용한다. 작업 초기에는 주로 드로잉 작품을 선보였지만 이후 회화, 설치, 조각 등 점차 작품 세계의 확장을 이루며, 2019년부터는 가상공간을 배경으로 한 비디오 작품들을 본격 선보였다.

전시의 제목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는 작가의 ‘나는 해와 달과 구름이 지나가는 것을 보면서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2023)’라는 작품 제목에서 인용된 것으로, 이 문장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 ~ 1954)가 그림 그리기 좋은 빛을 찾기 위해 프랑스 남부로 여행을 떠났을 때 했던 말이다. 이 제목은 문자 그대로, 여행을 떠나지 않고도 자신의 집, 따뜻한 욕조에 몸을 담근 채 이국적인 세계로 상상의 여행을 떠날 수 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강조한다.

이번 전시에서는 작가의 대표 작업으로 알려진 대형 목탄화 외에도 신작 오일 파스텔화 및 색연필화와 동시에 영상, 조각, 설치까지 최근 신작들을 집중적으로 소개할 예정이다.

특히 세 편의 영상 ‘마을 사람들(The Villagers)(2017-2019)’, ‘라 루타 내추럴(La Ruta Natural)(2019-2021)’, ‘하루의 삶(A Life in a Day)(2021-2023)’ 작품은 철저히 작가의 작업실 안에서만 촬영된 ‘스튜디오 영화’로 가상과 현실, 모험과 일상을 드나드는 허구의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영화 속 주인공은 작가의 얼굴을 본뜬 마스크를 쓰고서 작가의 도플갱어를 연기하며 가상과 실재, 모험과 일상, 삶과 죽음을 되풀이하며 저마다의 ‘하루의 삶’을 살아간다. 또한 영상 속 등장하는 장치들은 모두 작가가 직접 제작한 것들로, 이번 전시에서는 실물 크기의 세트장과 다양한 소품을 재현한 대형 설치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다.

반 데 벨데의 작업은 상상과 현실, 가짜와 진짜, 미술과 언어 등이 충돌하며 긴장을 일으키고 또 서로 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함으로써 삶과 예술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다면적 시야를 열어준다. ‘나는 욕조에서 망고를 먹고 싶다’를 통해 때로는 터무니없는 공상같지만, 때로는 진지한 예술적 고민을 담은 작가의 내적 모험에 동행한다. 작가의 상상적 여행을 통해 익숙한 일상을 새롭게 만드는 상상력이라는 무한한 힘이 우리를 어디까지 이끄는지 경험해 본다.

이지호 전남도립미술관 관장은 “서울에서 개최한 전시를 더 많은 지역민과 향유하여 동시대 미술의 현주소를 폭넓게 이해하고자 마련하게 되었다”며 ‘작가의 예술 여행에 함께 동참함으로써 우리의 일상을 새롭게 바라보는 상상력의 무한한 힘을 느껴보길 바란다’고 밝혔다.
도선인 기자 sunin.do@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