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부 제2하나원 ‘하나마음쉼터’는 지난 1일 오후 해남 산이면 산이정원에서 전남지역 탈북민들의 마음건강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윤준명 기자 |
시원한 가을비가 내리던 지난 1일 오전 11시께 해남 산이면 산이정원에는 전남 각지에서 찾은 특별한 손님들이 모여들었다. 통일부 제2하나원 ‘하나마음쉼터’가 주관한 탈북민 심리치유 프로그램인 ‘하나마음 프로그램’에 참여하기 위해서다.
바쁜 일상을 보내느라 서로 연락과 왕래가 뜸했던 참가자들은 각자 타고 온 차량에서 내리자마자 오랜만에 만난 고향사람들이 반가운 듯 서로의 손을 부여잡고 안부를 물었다.
이번 프로그램은 거리상의 이유로 교육 참여가 제한적이었던 전남지역 탈북민들을 위해 강원도 화천에 위치한 제2하나원이 직접 지역을 방문해 심리치유교육을 진행하는 첫 사례라는 점에서 의미를 더했다.
행사에는 지역에서 탈북자들과 긴밀한 소통을 이어오고 있는 신변보호담당관들의 추천으로 선정된 탈북민 36명이 참여했다. 이들의 출신 지역은 황해도, 평안도, 함경도 등으로 다양했지만, 거주지는 모두 전남으로 같았다.
교육은 음악치유를 통한 자존감 회복과 미술치유를 통한 자기 감정의 이해 등 2개 프로그램으로 나뉘어 진행됐다.
음악프로그램은 참가자들의 명상에 이어 각종 민요와 대중가요에 맞춰 함께 율동하며 마음의 여유를 찾는 시간 등으로 이뤄졌다. 잔잔한 클래식 음악이 실내에 울려퍼지자 참가자들은 편안한 표정으로 심신을 달랬다. 한 참가자는 음악소리에 몸과 마음을 맡기다 과거 한국에 정착하고 적응해 나가는 과정에서 힘들었던 시절이 떠올랐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이후 스피커에서 인기 가수의 트로트가 나오자, 참가자들은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 박자에 맞춰 춤을 추며 웃음꽃을 피우는 등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통일부 제2하나원 ‘하나마음쉼터’는 지난 1일 오후 해남 산이면 산이정원에서 전남지역 탈북민들의 마음건강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사진은 미술 치유 프로그램에서 참가자들이 각자 받고 싶은 선물을 그린 모습. 윤준명 기자 |
스스로에게 ‘금버들’이라는 이름을 붙인 한 참가자는 받고 싶은 선물로 ‘사랑과 기쁨’을 적은 뒤 “이북에 있을 때부터 한국에 정착한 이후까지 늘 남을 위해 살아왔던 것 같다”며 “이제 남은 인생은 자존감을 가지고 나를 사랑하며 나를 위해 살고 싶다”고 소망을 밝혔다.
탈북 당시 뱃속에 있던 아이가 어느덧 중학생이 돼 함께 행사에 참석한 모녀도 있었다. 목포에 거주 중인 박모(57)씨는 “이북에 있는 자강도(북한 행정구역 체계)에서 살다가 13년 전 탈북했다. 한국에 와서 적응할 때 서로 의지가 됐던 고향사람들을 오랜만에 만나게 돼 반가웠다”며 “고향사람들에게 딸을 소개시켜주고 함께 바깥 바람도 쐬며 추억을 쌓아 보람차다”고 말했다.
황해도에 살다가 탈북 후 여수에 정착한 지 10년이 넘은 조모(75)씨는 “탈북민 관련 행사 때마다 고향사람들을 만나 많은 위안을 받고는 한다. 그동안 거리 등의 문제로 자주 참석하기가 쉽지 않았는데 제2의 고향과도 같은 하나원이 전남까지 찾아와줘 너무 감사하고 행복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통일부 제2하나원 ‘하나마음쉼터’는 지난 1일 오후 해남 산이면 산이정원에서 전남지역 탈북민들의 마음건강 회복을 지원하기 위해 심리치유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윤준명 기자 |
시민단체에서 평화활동가로 활동하고 있는 안모(55)씨는 “20여년 전 처음 탈북했다가 중국 공안에 의해 강제 북송됐다. 2년간의 옥살이 후 재탈북을 감행한 끝에 어렵사리 한국에 오게 됐다”며 “최근 남북관계가 경색되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 북한의 파병사실이 확인돼 고향에 두고 온 딸과 남동생에 대해 우려된다. 어떤 상황에서도 폭력과 전쟁이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수에서 온 임모(64)씨도 “이북에서 너무 가난하게 살아서 20여년전 딸들과 함께 탈북하게 됐다. 부인과 친척들은 모두 북에 남아있지만 소식을 알 길이 없다”며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전쟁에 북한이 군대를 파병했다는 소식을 듣고 북에 있는 조카들이 전쟁에 참전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마삼민 통일부 제2하나원 교육운영팀장은 “탈북민들은 재북시절과 탈북과정, 탈북 이후 적응 과정 등에서 ‘삼중고’ 트라우마를 겪어 심리적인 어려움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며 “탈북민들이 우리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데 필요한 심리적 지원을 제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