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괴담과 사회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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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괴담과 사회불신
곽지혜 취재2부 기자
  • 입력 : 2025. 06.01(일) 17:15
곽지혜 기자
“라면 국물만 먹어도 광우병에 걸릴 수 있습니다. 성장 이상과 생식기능 저하를 겪을 수 있습니다.”

2008년 대한민국은 미국산 소고기와 광우병에 대한 공포가 온 사회를 지배했다. 라면 스프에 흔히 사용되는 소고기 분말을 놓고도 ‘미국산’과 ‘광우병’이라는 키워드가 따라붙었다. 특정 라면업체에는 ‘광우병에 걸린 소뼈를 갈아 넣어 스프를 만든다’는 괴담까지 퍼지며 불매운동을 벌이자는 움직임까지 일어났다. 관련 식품업계를 휘청이게 할 정도의 파동이었지만, 지난해 국내 수입육 시장의 미국산 소고기 점유율은 48.1%로 당시의 공포는 흔적조차 없는 것이 현실이다.

대선을 앞둔 최근의 대한민국을 가장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공포 중 하나는 ‘부정선거’다. 지난달 29일과 30일 진행된 제21대 대통령 사전투표에서 투표소 밖으로 반출된 투표용지 등으로 현재도 논란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음모론이라고 치부해 버릴 수도 없는 시점이다. 반대로 지난 총선부터 12·3 계엄, 탄핵정국에서까지 지속적으로 극우 보수 세력의 든든한 먹잇감으로 존재해 온 부정선거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처럼 이슈화되는 분위기에 반감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논란이 거세지자 “부정선거를 감시하겠다”며 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자가 침입하거나, 부정선거를 주장하는 이들이 선관위 직원을 폭행하고, 선관위 직원들이 부정선거를 시도했다는 허위 신고까지 잇따르는 등 진위를 떠나 이미 우리 사회는 ‘부정선거’라는 프레임 안에서 혼란과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공포감을 가장한 괴담 확산의 목적에는 언제나 경제적, 사회적 이익이 자리 잡고 있다. 선의나 정의 실현 등 가치를 내세우고 있지만, 결국 그 이면에는 특정 진영의 이익이 뒤따라오기 마련이다. 우리는 과거 부정확한 정보들이 모여 그럴싸하게 만들어진 공포가 누군가를, 혹은 수십년간 쌓아온 기업의 명성을 무너뜨릴 수 있다는 것을 수차례 확인했다. 이것이 하나의 집단이나 기업을 넘어 국가와 민주주의라는 체제나 이념이라면 그 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선거 시스템이 부실해 관리와 보안이 강화돼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만, 부정선거의 프레임 안에서 선거제도 자체를 부정하며 허우적거리는 것은 부정선거를 믿는다, 믿지 않는다와는 차원이 다른 문제다.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고 불신하는 것은 사회를 유지시킬 수 없도록 만든다. 독재 국가에서는 부정선거 자체가 필요치 않다. 더 이상은 음모론에 휩쓸리는 우민(愚民)이 되지 않도록 눈을 똑바로 떠야 할 때이자, 정부 역시 민주주의 국가에서 국민들이 선거 시스템을 믿을 수 있도록 해주는 장치를 새로이 모색해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