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학동 참사 4주기 "기억하고 책임 물어야 참사 반복 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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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광주 학동 참사 4주기 "기억하고 책임 물어야 참사 반복 막아"
●이진의 유가족협의회 대표
4년 지나도 정신적 후유증 '여전'
'아픔 알기에'…9개 재난가족 연대
엄중한 처벌·책임의식 미비 비판
"법안 마련·안전 강화로 예방해야"
9일 광주 동구청 광장서 추모식
  • 입력 : 2025. 06.08(일) 17:20
  •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
지난 2023년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제4개발구역 인근에서 열린 ‘학동 참사 2주기 추모식’에서 이진의 유가족 협의회 대표가 추도사를 낭독하고 있다. 전남일보 DB
“책임이 있는 자에게 마땅한 처벌이 내려지고, 사회가 끝까지 기억할 때 비로소 참사의 반복을 멈출 수 있습니다.”

어느 평범한 오후, 우리 사회에 만연한 ‘안전불감증’이 빚은 인재(人災)로, 집을 나섰던 평범한 이웃들은 끝내 귀가하지 못했다. 전 국민에게 큰 충격과 지울 수 없는 트라우마를 남긴 ‘광주 학동 참사’가 어느덧 4주기를 맞았다.

시간은 흘렀지만, 책임은 여전히 제자리에 맴돌고 있고,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낸 이들의 일상 역시 멈춰 서 있다. 유가족협의회 이진의 대표를 만나 그날 이후의 시간과 남은 과제, 그리고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것들에 대해 들어봤다.

이 대표는 “사고 현장 건너편 동네에 살았지만, 어머니를 떠나보낸 뒤 결국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지금도 그 동네를 지나야 할 일이 생기면 일부러 우회하고는 한다”며 “각종 공사가 이뤄지는 현장도 지나치지 못한다. 치료도 받고 있지만, 극복하기에는 갈 길이 멀다”고 털어놨다.

짧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남아있는 가족들의 상처는 옅어지지 않았다. 일부 유가족은 사고 이후 섬망 증상과 불안 증세 등 심각한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이들을 포함한 사회적 참사 유가족들은 서로가 서로를 지탱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내고 있다.

이 대표는 “유가족들의 연령대도 다양하고 각자 생업이 있어서 자주 모이기 쉽지 않지만, 꾸준히 소통을 이어가며, 연대 활동도 하고 있다”며 “지난 2023년부터는 ‘우리함께’라는 참사 가족 연대를 통해 세월호 유가족을 비롯한 9개 재난 참사 피해자 가족들과 교류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추모 행사와 세미나, 정기 모임을 통해 가족 외에는 꺼내기 힘든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다. 그 자체가 치유의 과정이기도 하다”며 “어떤 피해자 가족은 ‘그날이 꿈에 나타나지 않으려면 20년은 지나야 한다’고 말하더라. 그만큼 오랜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지난 2021년 6월9일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제4개발구역에서 철거 중이던 건물이 붕괴돼 시내버스 등이 매몰된 가운데 119구조대원들이 중장비를 이용해 구조작업을 펼치고 있다. 전남일보 DB
사고 조사 결과, 불법 하도급 구조와 무리한 철거 일정, 관리·감독 부재 등이 참사의 원인으로 지목됐다. 언제, 누구에게 닥쳐도 이상하지 않은 예견된 ‘후진국형’ 사고였지만,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처벌도, 진정한 사과도 없었다고 이 대표는 지적했다.

그는 “책임자 처벌은 법원의 몫이라지만, 결과를 보면 참담할 뿐이다. 죄를 나눈 건지, 죄가 없다고 본 것인지, 관계자들에게 내려진 가벼운 형량을 납득할 수 없다”며 “사죄는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보여야 하는데, 지금껏 원청 HDC현대산업개발과 하청업체, 재개발 조합 측의 진정한 사과가 이뤄졌다고도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고 있지만, 유족들을 위한 실질적인 지원은 여전히 부족하다. 사고가 난 운림 54번 버스의 경우 영구 보존의 방향으로 가닥이 잡혔지만, 이를 전시할 장소가 마땅치 않은 상태다. 시민들이 학동 참사를 함께 기억하고 추모할 수 있는 공간 역시 진통 끝에 사고 현장 인근에 위치가 정해졌으나, 조성까지는 아직 요원하다.

이 대표는 “지자체 지원은 추모제에 한정돼 있고, 활동과 치유 과정은 유가족들의 사비로 진행되고 있다. 행정당국은 우리를 민원인 취급하며 소외시키고 있다”며 “업체 측은 추모 공간을 혐오시설로 여기는 태도를 보여왔다. 구두로 합의했던 ‘추모 나무’조차 실제 조성까지는 적잖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토로했다.

참사 이후에도 유사 사고는 반복되고 있다. 인명 피해로 이어지거나, 아슬아슬하게 대형 참사를 피한 사례들이다. 그럴 때마다 학동 참사의 아픔은 다시 소환된다. 이 대표는 책임자에 대한 강력한 처벌이 반복되는 인재를 막기 위한 가장 확실한 예방책임을 거듭 강조했다.

이 대표는 “‘보상만 하면 된다’는 식으로 생명을 경시하는 구조는 반드시 사라져야 한다”며 “참사 발생의 근본적 원인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법 제정과 사회적 기억이 필요하다. 각종 안전시스템 관리·감독 강화와 사고 발생 시 무거운 처벌이 담긴 법안이 마련돼야 기업과 행정 모두가 책임을 다할 수 있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지난 2021년 6월9일 오후 4시22분께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 제4개발구역에서 철거하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시내버스 등을 덮쳐 9명이 숨지고 8명이 다쳤다. 4주기를 맞은 9일 오후 4시10분 동구청 앞 광장에서는 유가족협의회 등 참사 유가족과 시민들이 참석한 추모식이 열린다.
윤준명 기자 junmyung.yoon@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