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거 후 본공사 지연…조합·시공사 갈등에 행정도 ‘뒷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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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일반
철거 후 본공사 지연…조합·시공사 갈등에 행정도 ‘뒷짐’
●학동 참사 그후 4년 <4·끝>갈 곳 잃은 사람들
조합원, 정기총회 절차상 하자 주장
저소득층·고령자·영세상인 등 피해
시·구 “공사일정 개입 못해 소극적
서울시·광주 북동 '공공 참여' 해결
'공공환수형 재개발' 행정력 발휘를
  • 입력 : 2025. 07.29(화) 18:11
  • 정유철·정성현 기자
광주광역시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 부지. 정유철 기자
2021년 6월 9일 발생한 광주 학동 붕괴 참사 이후, 학동4구역 재개발 사업은 4년째 멈춰 있다. 철거는 완료됐지만 본공사 착공은 시공사와 조합 간 공사비 증액 분쟁으로 미정 상태다. 이 사업의 장기 지연은 원주민과 취약계층의 주거·생계 기반을 허물었다. 그러나 행정은 법적 권한 한계를 이유로 실질적 개입을 미뤘고, 도시정책은 이들을 보호하지 못했다.

원주민 이상민(69·가명)씨는 “조합이 준 자산 권리가액은 시세의 60% 수준이었다. 임대 수익도 끊기고 복지 혜택에서도 제외돼 생활이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생업이었던 셀프세차장을 접은 김성찬(77·가명)씨도 “평생 일군 사업이 재개발 지연으로 무너졌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보상도 없다”고 말했다. 이들의 사례는 재개발이 단순한 개발사업이 아닌 시민의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임을 보여준다.

공사 지연은 공사비 책정과 관련한 문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주택재개발은 공사비와 분양가 조정 등 재개발 추진 상황을 공유하는 정기총회를 연 1회 하도록 돼 있는데, 시공사와 조합장 측·원주민을 포함한 일부 조합원 간 내부 갈등도 이유로 꼽히고 있다. 일부 조합원들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을 지키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며, 절차상 하자를 지적하고 있다. 원주민 박해원(60·가명)씨는 “도정법상, 최근 정기총회 안건 7건 중 4개의 안건은 알리기 전에 조합원들과 사전 의결하는 것이 원칙이다”며 “조합장측이 도정법 위반 등으로 신뢰를 잃은 상황에서 이와 같은 총회 운영방식은 불투명하다”고 주장했다. 김진욱(65·가명)씨도 “시공사측은 사업 초기에 원가와 판매가 차이 없는 노마진 공사와 확정공사비, 미분양물건 변제로 홍보했다. 이러한 약속과 달리 지금 제안은 완전히 다르다”며 “계속 관련 기관에 탄원서를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와 같은 내·외부 갈등으로 개발이 장기화 될수록 가장 큰 피해를 입는 것은 저소득층·고령자·영세상인 등 사회적 약자다. 그러나 행정은 ‘민간 갈등’이라는 이유로 조정자 역할을 회피하고 있다. 동구청과 광주시는 각각 “행정 감사 외에는 공사 일정에 개입할 수 없다”, “인허가 권한은 기초단체에 있다”며 책임을 서로 떠넘기는 입장을 보여왔다.

지자체의 개입에는 법령상 권한의 한계도 분명하다. 국회 도정법 개정안이 지난 6월 4일 시행됐으나, 광주광역시 등 지역 행정은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광역시는 정비계획 수립과 조례 제정 권한을 가지지만, 정비구역 지정과 사업 인허가는 기초지자체에 전담돼 있다는 입장이다. 이로 인해 광주시와 동구청은 각각 책임을 떠넘기듯 소극적 대응을 보이며 행정 공백이 장기화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광주 전역에서는 현재 17곳의 재개발이 추진 중이지만, 대부분이 민간 주도다. 행정은 인허가와 형식적 감독에만 머물 뿐, 조합 운영이나 비위 의혹에 대한 실질 개입은 이뤄지지 않는다. 광주시는 2011년 ‘공공관리제’ 조례를 도입했지만, 실제 적용 사례는 드물고 시민 체감도 역시 낮다.

반면, 일부 지역에서는 행정이 적극적으로 개입한 사례도 있다. 광주 북동구역은 ‘사전공공기획’을 통해 정비계획 수립 단계부터 행정이 참여해 주민 의견을 조율했다. 북동성당 존치·공원 조성·상가 배치 조정 등에서 실질적 합의를 이끌었고 도시·경관심의도 조건부로 통과됐다. 동서작구역은 LH가 시행자로 참여해 광주 최초의 공공주도 재개발로 진행 중이다.

서울시도 2010년부터 ‘공공지원제’를 도입해 추진위 구성, 시공사 선정 등 주요 절차에 직접 관여하며 투명성과 공공성을 확보하고 있다. 분양가 안정과 주민 신뢰 회복에 기여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또한, 서울시에서는 개정안 이전부터 총회의 투명성을 보장하는 전자투표활성화 시범계획을 세워 작년부터 4차에 걸쳐 진행해 조합 사업에 행정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공공이 개입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주민 수용성, 사업성, 행정 신뢰 등 여러 요소가 얽혀 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럼에도 지금처럼 행정이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에서는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장기 미개발 구역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는 저소득층과 고령층 등 취약계층을 보호하기 위해 ‘공공환수형 재개발’ 등 공공 주도의 대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는 민간 조합 대신 지방정부나 공기업이 직접 사업을 주도해 개발이익을 공공이 환수하고 이를 임대주택 공급이나 기반시설 확충에 재투자하는 방식이다.

지역 도시재생지원센터 관계자는 “임시거주비 확대, 공공임대 연계 등 피해 주민의 생활 재정착 지원이 시급하다”며 “주거·복지권 강화를 위한 제도 정비 및 장기 미개발 구역에 대한 특별법 제정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항집 광주대학교 도시·부동산학과 교수는 “조합사업이라는 것이 대부분이 민간 사업이라 예상치 못한 변수들이 발생하면서 통제가 어려운 상황이 발생한다”며 “서울특별시는 주택재개발과 관련해 행정력을 발휘, 적극 참여하는 구조다. 사회문제로 확산되고 있기 때문에 체계를 갖춰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정유철·정성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