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아닌 답사, 그 깊이에 빠지다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여행이 아닌 답사, 그 깊이에 빠지다
[신간]선생님, 지도엔 없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시죠
노승대│불광출판사│3만2000원
  • 입력 : 2025. 06.12(목) 17:25
  •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
노승대 작가가 화순 운주사를 답사할 때 촬영한 전경. 불광출판사 제공
선생님, 지도엔 없는 이야기 하나 들려주시죠
답사는 결국 오래 걷고 깊이 바라보는 일이다. 대부분의 여행이 유명 관광지를 좇아 스쳐 지나가듯 흘러간다면, 답사는 어떤 공간이 가진 특별한 이야기를 간직하며 누구에게나 들려줄 기억의 조각을 쌓아 올리는 일인 셈이다.

국내 최고의 답사가 노승대 작가의 신간이 출간됐다. 그간 사찰 속 신비로운 그림과 조각은 물론, 그 용도나 의미를 알지 못했던 사찰의 문화유산에 관해 소개하며 독자들의 사랑을 받아 온 그는 이번 신간을 통해 지난 42년의 답사 인생을 되짚는다. 저자가 전국 팔도를 누비며 두루 답사한 끝에 꼽은 ‘내 인생의 장소’에 관한 인문 여행 에세이로, 16개 지역의 명승지와 고적, 문화유산에 관한 역사와 그곳이 품은 시간, 기억, 정서를 함께 담아낸 역작이다.

“길을 가다 멈춘 곳에 이야기가 있다.”

노 작가는 장소의 유명세보다 공간이 가진 특별한 이야기를 중심으로 이 책을 구성했다. 인터넷 검색, 문화유산 안내문 등을 통해 접할 수 있는 도식화된 정보 너머, 잘 알려지지 않은 ‘살아 있는 역사’에 관해 이야기하고자 했다. 답사지에서 마주한 도반과의 옛 기억, 사라진 숲길에 대한 회고, 산장에서 만난 산꾼과의 추억 등 따뜻하고 흥미진진한 에피소드가 담겼다.

도시의 소음보다 작은 마을 한 귀퉁이에 자리한 돌장승의 기억에 귀 기울이고, 사람이 찾지 않아 풀이 무성한 절터에 숨겨진 사연을 더듬는 느린 여행은 겉핥기식 관광이 아닌 깊이 있는 인문 여행의 매력을 독자들에게 되새기게 한다.

노승대 작가가 답사했던 화순 쌍봉사. 불광출판사 제공
화순 운주사 와불. 불광출판사 제공
그의 스승인 고(故) 조자용 박사(에밀레박물관 설립자)는 “책상머리에서 글 쓰지 마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두 발로 직접 다니며 생생한 문화유산의 현장을 보는 건 스승의 당부로 시작된 노 작가의 숙명이었다. 그의 답사 인생도 어느덧 4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지금도 길 위에 서 있는 그는 살아있는 역사의 결을 전하기 위해서는 현장의 생명력과 온기를 담은 글이 필요하며 이는 오래 걷고, 오래 바라본 사람만이 발견할 수 있다고 믿는다.

문화유산을 답사하고 공부하는 것이 금생의 의무라 생각하는 저자는 역마살이 이끄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화순, 나주, 삼척, 완주, 김천, 남원, 안동, 보은 등 전국 16개 지역의 숨은 이야기는 그곳이 품은 시간 속에 자연스레 펼쳐진다. 이렇게 들려주는 노 작가의 이야기는 때로 옛이야기 들려주는 할아버지처럼, 때로 흥미로운 답사 여행을 제안하는 오랜 친구처럼 느껴진다.

기존의 답사기에서 다루지 않았던 ‘고려 건축물이 어떻게 냉혹한 시대를 견뎠는지’, ‘사찰 경내에 유학자의 비석이 있는 이유는 무엇인지’, ‘절터에 있었던 국보급 승탑이 어떤 경로로 국립중앙박물관에 오게 됐는지’ 등의 내용을 수록해 탐구하고 해설이 미진했던 지점들을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

이제는 사라진 숲길에 대한 회고와 설악산 산장에서 만난 산꾼들과의 특별한 밤, 출가인 시절 도반과 함께한 탁발의 추억까지, 사람 냄새와 숨결이 느껴지는 따뜻한 에세이다.
박찬 기자 chan.park@jnilbo.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