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토사구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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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석대>토사구팽
최동환 논설위원 cdstone@jnilbo.com
  • 입력 : 2025. 07.01(화) 16:49
최동환 논설위원 cdstone@jnilbo.com
토사구팽(兎死狗烹). 사냥이 끝나면 사냥개는 쓸모가 없다며 삶아 먹는다는 이 고사성어는 시대를 뛰어넘어 여전히 강한 울림을 준다. 춘추전국시대 월나라 재상 범려는 구천을 도와 오나라를 멸망시키는 데 결정적 공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구천이 고난은 함께할 수 있어도 영광은 함께할 수 없는 인물이라 판단해 스스로 나라를 떠났다. 이후 범려가 문종에게 ‘비조진 양궁장 교토사 주구팽(飛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拘烹: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 탈출을 권유했다. 끝내 남은 문종은 범려의 충고를 무시하고 자리에서 쫓겨나 죽임을 당했다.

역사에만 머무는 얘기가 아니다. 조선 건국의 일등공신 이방원조차도 정도전·남은을 제거했고, 한나라를 세운 유방은 명장 한신을 반역죄로 몰아 죽였다. 일단 필요할 땐 앞세우고, 목적이 달성되면 의심하거나 버리는 구조는 권력의 민낯이자 인간의 민낯이다.

최근 프로축구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됐다. 광주 금호고 출신의 프랜차이즈 스타 기성용 선수가 FC서울을 떠나 포항 스틸러스 유니폼을 입게 됐다. 기 선수는 2006년 서울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해, 유럽 무대를 거친 뒤에도 팀을 위해 돌아온 인물이다. 10년간 같은 팀 유니폼을 입었던 레전드다. 하지만 이제는 ‘전력 외’로 분류됐고, 은퇴 권유까지 받았다. 선수로서 마지막 불꽃을 태우고자 이적을 택했지만, 남겨진 팬들의 감정은 참담하다. “예우가 부족하다”, “이게 대접인가”라는 비판이 쏟아진다.

기성용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노쇠하면 버려지는 구조는 기업과 조직, 정치판에서도 비일비재하다. ‘성과’만을 기준으로 모든 관계가 판단되는 냉정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 헌신의 무게, 그리고 한 사람의 인간적 가치까지도 함께 지워도 되는 걸까.

사람은 도구가 아니다. 쓸모로만 사람을 판단한다면, 우리 사회는 결국 신뢰를 잃고 서로를 불신하는 관계로 치닫는다. 범려가 미리 자리를 떠난 지혜, 문종이 끝내 죽음을 맞이한 비극, 그리고 기성용이 택한 선택을 되짚으며, 한 사람의 역할과 기여를 끝까지 기억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우리 사회에 필요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느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