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석대>낀 세대의 운명
  • 페이스북
  • 유튜브
  • 네이버
  • 인스타그램
  • 카카오플러스
검색 입력폼
서석대
서석대>낀 세대의 운명
김성수 취재2부장
  • 입력 : 2025. 06.29(일) 15:32
김성수 취재2부장
그들은 ‘신세대’로 불리며 등장했다. 1990년대 후반, 사회는 그들을 ‘X세대’라 칭했다. 산업화 세대의 금욕과 86세대의 이념을 벗어나 자유와 감수성을 중시하는 ‘한국형 개인주의 세대’. MTV와 잡지를 통해 자율을 배우고, IMF의 먹구름 아래서 사회에 첫발을 내디뎠다. 그들은 기존 질서에 순응하면서도 속으로는 다른 삶을 꿈꾸었다. 자신만의 방식으로 버티고, 치이고, 다시 일어섰다. 그들이 바로 우리사회의 허리춤인 70년대생.

그러나 이들에겐 늘 자리가 부족했다. 앞세대는 이미 자리를 선점했고, 뒷세대는 새로운 언어와 속도로 무장해 다가왔다. 위로부터는 ‘기득권의 그림자’가 드리워졌고, 아래로부터는 ‘혁신의 압박’이 밀려들었다. 70년대생은 그렇게 ‘낀 세대’가 됐다. 조직의 중간 허리이자, 가족의 생계 책임자이며, 정치적 대의에서조차 뚜렷한 대변자를 갖지 못한 세대. 조용히 책임을 다해왔지만, 늘 중심에서 비껴선 자리였다.

그리고 지금, 그들에게 또 한 번의 그림자가 드리운다. 최근 카드업계를 중심으로 번지는 구조조정의 칼날이 이들을 정조준하고 있다. 신한카드를 시작으로, 1968~1979년생 직원을 대상으로 희망퇴직이 단행됐다. 지난 세기 외환위기 때 사회에 진입했던 이들이, 이번엔 ‘비용 절감’이라는 이름으로 퇴출당하고 있다. 몇십 개월치 급여로 포장된 퇴직금은 일종의 작별 수당일 뿐, 더 이상 ‘당신은 필요하다’는 신호는 아니다.

이들은 정치적으로도 고립되고 있다. 40대는 여전히 가장 진보적인 성향을 보이지만, 동시에 무당층 비율도 가장 높다. 민주당의 팬덤 정치에 실망했고, 보수정당의 권위주의에도 냉소적이다. 이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정치는, 결국 미래를 품지 못한다.

사회학자 김호기 교수는 70년대생을 “86세대와 2030세대를 잇는 교량 세대”라고 평가했다. 민주주의에 대한 공감 능력과 개인주의적 감수성을 동시에 가진 유일한 세대. 그러나 지금 그 교량은 무너지고 있다. 기업도, 정치도, 사회도 이들을 떠밀고 있다.

퇴장은 조용하지만, 상실은 크다. 70년대생은 여전히 이 사회의 허리다. 고통과 전환의 경험을 모두 지닌 마지막 아날로그 세대, 그리고 연결과 공감의 감각을 가진 첫 디지털 세대. 이들이 단지 비용의 대상으로, 조용한 퇴장 행렬 속에 묻히게 놔둔다면, 한국 사회는 또 하나의 미래 자산을 놓치는 것이다. 김성수 취재2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