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준명 취재1부 기자. |
전라남도 화순군 청풍면 백운마을에서 만난 한 어르신의 말끝에는 오랜 세월 터전을 지켜온 이의 깊은 연민과, 자취를 감추는 고장을 바라보는 체념이 고스란히 서려 있었다.
이 마을의 주민은 이제 70여명 뿐. 실제로 머무는 이는 겨우 60명 남짓에 불과하다. 그마저도 70~80대 어르신이 대부분이고, ‘가장 어린’ 50대 주민은 한손에 꼽을 정도다.
하루 네차례뿐인 버스는 주민들이 생필품을 사러 읍내를 오가는 유일한 수단이다. 병원이라도 다녀오려면 하루를 온전히 비워 광주광역시까지 다녀와야 한다. 버스 한 대가, 마을과 세상을 연결하는 마지막 동아줄이다.
용이 흰 구름을 타고 승천하는 모습을 닮아 이름 붙여진 마을은, 한때 젊음의 활기로 가득 찼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며 사람은 떠났고, 이곳은 점점 적막에 잠겨갔다.
비단 백운마을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전남 전역이 비슷한 처지에 놓였다. 청년은 떠나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사라진다. 소멸위험지수는 전국 최하위다.
이미 22개 시·군 가운데, 행정 중심지와 거점 도시를 포함한 20곳이 소멸 위기에 들어섰다. 의료와 교육, 교통 등 사람이 살아가기 위한 최소한의 기능조차 무너진 마을도 속출한다. 공동체 자체의 존립이 위태로운 지경이다.
도시라고 다를까. 호남 최대 도시인 광주는 150만명을 넘었던 인구가 불과 수년만에 140만명 아래로 떨어졌다. 전국에서 청년 인구가 가장 빠르게 빠져나가는 도시가 됐다.
소비 여력이 있는 젊은층이 떠나며, 거리에는 빈 상가만 늘어간다. 골목마다 불야성을 이뤘던 수많은 번화가 역시 ‘임대문의’가 덕지덕지 붙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낸다. 사람의 발길이 끊긴 텅 빈 거리는 늘 고요하고 쓸쓸하기만 하다.
지방 소멸이라는 소리 없는 재난 앞에 우리의 고향이 속절없이 무너져가고 있다. 사람이 떠난 곳에는 일자리가 없고, 일자리가 없는 곳에는 다시 사람은 오지 않는다. 그렇게 악순환이 구조화되며, 지역의 숨결이 서서히 멎어간다.
단지 우리 지역만의 문제도 아니다. 국토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지방의 붕괴는 결국 국가의 지속가능성과 균형을 뒤흔드는 망국적 징후로 작용하고 있다.
청년이 정착하고 삶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고부가가치 산업을 균형 있게 육성하고 생활 인프라를 촘촘히 확충해야 한다. 수도권과의 격차를 좁히고, 정주 여건의 양극화를 해소할 종합적이고 구조적인 전환책 마련이 시급하다.
지방이 살아야 나라가 산다. 더 늦기 전에,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해 전방위적이고, 실효성 있는 혁신에 나서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