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당선 후 대통령께 직언했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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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J 대통령 만들기 일등공신… "당선 후 대통령께 직언했더니…"
■ 오길록 재경 해남향우회장
  • 입력 : 2014. 06.19(목) 00:00
오길록 재경 해남향우회장
오길록 재경해남향우회장(71ㆍ해남중ㆍ고 12회ㆍ전 재경해남중고총동창회장)은 현 권노갑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의 권유로 서울로 상경, 1971년 DJ의 대통령 선거를 도왔으나 실패하자 부동산업에 종사하면서 상당한 재력을 쌓았다. 이후 민추협에 참여, 이중재 전 국회의원을 도와 또다시 정치에 참여했고, 이때 동교동과 인연을 맺어 제1야당이던 새정치국민회의 종합민원실장 등으로 활동하며 DJ를 가장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면서 대통령이 되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 DJ가 대통령이 된 뒤에는 정치적 역할을 하지 못하고 일반인으로 돌아와 사업전선에 나서 강원도 평창유스호텔을 건립,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최근 해남 항일독립운동 희생자 추모 사업회 회장을 맡아 추모비 건립과 해남항일운동사 발간에도 매진하고 있다.

-DJ를 대통령으로 만드는데 일등공신 역할을 했다는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청와대 장학노 부속실장 비리사건을 파헤쳐 정권을 약화시켰고, 1997년 대선에서는 당시 신한국당의 연수원 담보 500억 불법 사채조달 사건을 폭로하면서 DJ가 대통령에 당선되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왜 정치적으로 성장하지는 못했나.

△당시 김대중 대통령에게 아들들에 대한 정치 참여 문제를 직언했다는 이유로 일절 직책을 받지 못했고, 당시 1번이던 전국구도 승계받지 못했다.

-향우회 참여와 활동은.

△1977년 서울 강남에서 부동산업으로 잘 나가던 때 참여했다. 이후 부회장만 16년을 했고 지난해 17대 회장으로 취임했다.

-고향발전을 위해 한 말씀한다면.

△군세에 비해 중앙을 상대로 한 예산확보나 사업유치가 안돼 지역발전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해남은 대법원장과 국회부의장을 배출한 곳이고 4ㆍ19직후에는 민선도지사(민영남)까지 배출한 곳이다. 그런데도 지금 와서 군세가 쇠락하는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강덕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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