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문가의 재능 기부를 통해 제작된 전남일보 공프로젝트 3월 작품. 전남일보 홈페이지 지면보기 3월2일자 20면을 클릭하면 실제 신문에 게재된 콘텐츠를 볼 수 있습니다. 사진 변순철 작가 . |
각계 전문가들이 재능을 기부해 매월 소주제를 정해 제작되는 공프로젝트는 우리 사회에 만연해있는 '허세(虛勢) 문화'를 3월 주제로 다룬다. '허세'의 사전적 의미는 실속이 없이 겉으로만 드러나 보이는 기세다. 쉬운말로 없으면서 있는체하고, 못났으면서 잘난체하는 것을 말한다.
인생의 중대한 선택을 할 때조차 우리는 타인의 시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이런 예는 우리 일상 생활 속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개인의 희망보다 타인의 평가에 맞춰 대학은 서울로, 직장은 대기업, 결혼은 조건을 따지는 것 등이 그것. 친구가 명품백을 들었으니 카드 할부로라도 구입해야 직성이 풀리고 , 고가 패딩이 유행하니 따라 입어야 같은 부류에 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사는 사람이 우리 주변엔 의외로 많다. 이런 따라하기 풍조는 비단 개인 차원에만 머물지 않는다. 기업들도 무슨 사업 아이템이 유망하다고 하면 다들 따라하기 바쁘다. 독창성이 없다보니 과잉경쟁을 벌이다 문을 닫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런 현상은 유교 문화와도 관련이 있다고 말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어떤 이상적인 사회 규범을 정해놓고 그 기준에 벗어나지 않아야 사람대접을 받다보니 한국인은 늘 남과 비교하는 행동 특성이 몸에 뱄다는 것이다. 특히 SNS는 소통의 혁명을 가져온 총아라는 평가와 함께 허세 문화를 증폭시키는 기폭제가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SNS상에서는 '나의 본모습'보다는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가'하는 자신의 이미지에 더 집착하기 때문이다. 자기PR시대에 겸손은 미덕이 아니라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 있어 어느 정도 허세를 부리는 것이 요즘 사람들의 모습이라고 볼 수 있다. 일부는 허세를 통해 자기만족과 행복감을 맛보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허세는 남들에게 자신이 어떻게 비칠까 하는 두려움에서 비롯된 만큼 진정한 행복과는 거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 삶의 기준이 내가 아닌 남이니 결국 남의 삶을 사는 것인 까닭이다. 이번 공프로젝트는 무엇이 삶의 질과 행복을 담보하는지 개인의 삶의 본질 문제를 조명한다.
저명한 철학자나 사상가, 전문가의 가르침과 조언을 통해서가 아니다. 프로젝트팀은 지방소재 중견기업에 다니는 평범한 직장인을 만나 그들의 진솔한 삶의 이야기를 들어봤을 뿐이다. 조선내화㈜ 광양공장 생산직으로 근무중인 김윤곤(58)ㆍ건우(24) 부자가 그 주인공이다. 이들은 허세가 판치는 세상에 휘둘려 그것을 부리지 않고 버림으로써 행복을 추구하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직업이란 그것을 선택한 사람의 가치관과 인생관이 반영될 수밖에 없는만큼 이들 부자의 직업관을 들어봄으로써 현시대가 요구하는 바람직한 삶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다함께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기를 기대한다.
다음은 프로젝트팀이 지난 12일 조선내화 광양공장에서 김씨 부자와 가진 일문 일답 내용.
-먼저 자기소개부터 한다면.
김윤곤(존칭 생략) 1986년 조선내화에 입사해 올해로 29년째 접어들고 있다. 현재 생산부 제조팀 부정형 공정에서 캐스터블 (castable)제품을 생산ㆍ관리하는 기장으로 근무중이다.
-캐스터블이 무엇인가.
김윤곤 캐스터블이란 모래와 시멘트 가루를 섞은 것처럼 일정한 형태가 없는 내화 제품을 말한다.
-기장이 일반인들에게 생소한 개념인데.
김윤곤 처음에는 반장이었는데 회사 인사 방침에 따라 기장이란 칭호가 만들어졌다. 기장은 어떻게 보면 현장 생산 공정의 리더이다. 즉 제가 맡고 있는 캐스터블 공정의 최고 노하우를 가지고 있는, 기능인으로서는 최고의 자리이다.
-아드님도 자기 소개를.
김건우 올해 1월 입사를 해서 이제 두 달을 보낸 신입사원으로 현재 생산부 제조팀 성형 공정에서 일하고 있다.
-1947년 설립된 조선내화는 국내 내화물 업계의 1등 기업으로서 코스피에 상장(1978년) 되어있는 중견기업인데, 특별한 입사 동기가 있는지.
김윤곤 창원 기능대학 졸업후 학교 추천으로 구미에 있는 전자회사에 합격했지만 입사를 망설이던중 목포 공고 출신 대학 동료로부터 조선내화(과거 본사 목포 소재)가 알짜기업이라는 것을 알게 되어 입사를 마음먹었다. 당시 결혼한 몸이었고 입사 후 바로 직원 사택에 입주할 수 있어서 고민없이 직장을 선택할 수 있었다.
김건우 취업을 하기로 마음먹고 4년제 대학을 중도 포기한 상황에서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서 생산직을 모집한다기에 누구보다도 회사에 대해 잘 알고 있었던 터라 선택의 여지없이 지원서를 냈다. 내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일터라는 믿음감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사회적 시선과 분위기를 고려할때 4년제 대학을 중도에 포기하기가 쉽지 않았을텐데.
김건우 육군 만기 제대후 취업이 쉬운 기술대학에 진학할 지와 복학을 할 것인가를 놓고도 고민했다.복학 결정 후 대학생활에 한창 재미가 붙었다. 하지만 마음 한켠으로는 취업이 쉽지 않은 학과 출신으로 4년제 대학을 나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불안감도 컸다. 결국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다는 생각에 불확실한 미래보다는 확실한 현재를 선택하는 편이 낫다고 판단, 2학년 과정을 마쳤지만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김윤곤 생산직 직원으로 30년가까이 일했는데, 아들에게 똑같은 인생을 살도록 하는 것에 대해 고민을 많이 했다. 특히 애 엄마는 아들 결혼을 생각하면 남들 다 가진 4년제 대학 졸업장은 있어야 한다며 강하게 반대했다. 반면 중소기업에 다니고 있던 건우 누나들은 취직이 하늘의 별따기인데 그까짓 졸업장이 대수냐며 취업이 우선이라고 동생과 언쟁을 벌였다. 저는 조심스러운 부분이라 강권하지 않았지만 건우가 아버지 삶과 누나의 조언 등을 종합해 현명한 결정을 했다.
-조선내화 입사 이후 개인의 삶의 기준이나 가치관이 어떻게 달라졌나.
김윤곤 입사한 뒤 4개월만에 반장으로 승급하고 곧바로 기장이 되니 자부심과 자긍심을 갖게 됐다. 인도네시아 현지공장 파견근무도 해보고, 대학 학자금 지원제도를 통해 세 자녀 교육 문제도 해결했다. 여기에다 아들 취업까지 됐으니 제겐 가족 , 아니 아버지 같은 회사다. 열심히 직장 생활을 하다보니 전문성도 확보해 자신감과 만족감도 얻을 수 있었다. 대학 교수인 친구가 우리 집을 부러워한다고 말할 때 위안을 받고, 내가 선택한 인생이 그래도 괜찮았구나 생각하고 있다.
김건우 솔직히 낭만적인 대학생활에 대한 미련을 완전히 떨쳐내진 못했다. 그러나 취업을 빨리 하기를 잘했다는 생각이다. 특히 주변 친구들이 '나도 네가 다니는 회사에 취직하고 싶다'는 말을 들었을 때 더욱 그렇다.
아버지와 함께 같은 일터에서 일한다는 부담감도 없지 않지만 실제 직장생활을 하면서 학생때 느끼지 못했던 아버지에 대한 존경심이 생기게 됐다.
-최근 청년실업률이 9%대로 역대 최고치에 달해 심각한 사회문제다. 이런 현실은 대기업 구직자는 넘쳐나지만 정작 중소기업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고용시장 현주소가 반영된 결과이기도 하다. 대기업만 번듯하고 그럴듯한 직장으로 생각하고 좇는 실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김윤곤 누구나 사회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좋은 직장을 열망하고 꿈꾸는 것이 당연하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세계 경제는 저성장에서 헤어나지 못해 새로운 안정적 일자리 창출이 어려운 현실에서 계속해서 그런 직장만 고집한다면 본인과 가정 모두 시간만 낭비하고 절망감만 맛보게 될 것이다. 취업 여건이 나아지기를 기다리기 보다는 사고를 전환하는 편이 빠를 수 있을 것이다. 눈높이를 낮춰 자신의 수준을 빨리 판단해 진로를 결정하는 것이 오히려 낫다고 본다. 물론 사회구조적으로 중소기업의 처우가 개선된다면 젊은이들의 취업관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개인적으로 조선내화와 같은 중견기업이 많아 나와 젊은이들이 많이 들어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김건우 중소기업의 경우 임금도 임금이지만 근무 환경이나 복지 등이 좋지 않은 게 현실이다. 대기업과의 격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면 젊은층도 중소기업에 눈을 돌리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제는 대기업과 비슷한 여건의 중소기업이 많지 않는데 있다.
이기수 기자
김윤곤은
>>1957년 순천 출생
>> 1976 년 순천공고 졸업
>>1980년 육군 하사 만기 전역
>>1985년 창원기능대 졸업
>>1986년 조선내화(주) 광양공장 생산부 입사
>>2010년 생산부 기장
김건우는
>>1991년 순천 출생
>>2010년 순천 효산고 졸업
>>2010년 순천대 입학
>>2011년 3월~2013년 10월 육군 병장 만기 전역
>>2014년 순천대 복학후 2년 중퇴
>>2015년 조선내화 광양공장 생산부 입사
■성현들 가라사대
"나를 남과 비교하지 말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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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인생이 고달프다고 말한다.많은 성인과 철학자들이 그 이유에 대해 사유했다. 이기심이라는 인간의 원초적 욕구 때문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석가모니는 비움을 , 예수는 사랑을, 공자는 극기복례(克己復禮ㆍ자기를 극복하고 예를 따르는 것)를 , 노자는 거피취차(去彼取此ㆍ저것을 버리고 이것을 취하는, 즉 바람직한 것을 버리고 바라는 것을 취한다)를 '인간의 길'로 제시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본능적으로 남과 비교하는 삶에서 벗어날 수 없고, 그 도가 넘친 것이 허세일 것이다. 허세와 관련된 저명한 인물들의 통찰들을 모아봤다. 미국의 사회학자 찰스 호튼 쿨리는 '거울 자아 이론'을 통해 "인간은 타자와의 상호작용에서 타자에게 비추어진 내 모습과 반응 속에서 자아가 형성된다"고 사회화 과정을 설명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마음의 평화를 유지하고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유지하려면 남과 비교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17세기 프랑스 작가인 라 로슈푸코는 "사람들은 자기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더 애를 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쓰지만 않는다면, 스스로에게 만족하기란 그리 힘든 일이 아니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는 허영심 때문에 자기 앞에 있는 진짜 행복을 놓치는 수가 있다"고 갈파했다.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은 '신화와 인생'이란 책에서 "인간은 굶어 죽지 않을까와 남들에게 어떻게 비칠까 하는 두가지 원초적 두려움을 겪는다"면서 "남들이 어떻게 생각할까라는 생각을 치워버려야 희열이 온다"라고 조언했다. '토크쇼 여왕' 오프라 윈프리도 '다른 사람들이 당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걱정하는한 당신은 그들에게 소유된 셈이고 외부의 승인을 필요로 하지 않을때 비로소 당신은 스스로 주인이 될 수 있다'는 종교작가 닐 도널드 월시의 말에 용기를 얻었다고 했다. 이기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