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소남은 월남 파병 시절 밥 호프, 글렌 캠벨, 잭슨 파이브&마이클잭슨 등이 출연한 위문공연을 보고 큰 감동을 느꼈다. 사진은 1966년 가수 패티김의 월남전 위문공연 모습. 피케이프로덕션 제공 |
미국 최고의 코미디언 밥 호프의 사회로 베트남 위문공연은 시작됐다.
글렌 캠벨이 통기타로 'Time'과 'Turn around Look at me', 그리고 캐럴송을 멋드러지게 부른다. 앵콜곡으로 갈베스톤이 이어지고, 나는 심장이 멈춰버리는 줄 알았다. 미국 통기타 음악은 컨트리가 아니던가. 그의 하이톤 목소리는 나를 더더욱 놀라게 했다. 통기타를 꽤 친다고 자부했던 나는 후일 미국 이민생활 중에 통기타의 메카로 알려진 중동부 테네시주의 네쉬빌을 수없이 찾은 적이 있었다. 그 통기타의 진짜 매력은 컨트리라고 하는 장르의 음악속에서 더 빛을 발하게 되어있는 만큼 글렌 캠벨의 기타와 노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었다. 나는 그 순간만큼은 천국에 있었다. 캠벨이 치던 통기타 지판엔 자신의 이름 이니셜(G. Campbell)을 자개로 새겨 놓았다. 기타가 너무나도 멋져 보였고, 후일 나도 기타 제작시에 성씨인 '국(KOOK)' 이니셜을 새겨 넣어 제작했다. 지금도 그 기타를 소장하고 있다.
그날 베트남 무대에는 안 마가렛도 있었다. 영화 '멋대로 놀아라'에서 엘비스 프레슬리와의 공연으로 국내 팬들에게 잘 알려진 배우이자, 가수, 그리고 팔등신 미녀다. 'Slowly' 하면 그녀가 생각이 나는데, 그 현란한 춤 솜씨에 그야말로 공연장은 형언할 수 없는 황홀감과 박수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그녀의 몸동작, 손과 발짓 하나하나에 모두가 넋을 잃었다. 피끓는 젊은 군인들의 속셈이야 더 말한들 무엇하랴. 그 순간만은 모두가 그녀의 애인이요, 껴안고 싶은 여자였던 것이다.
그리고 공연의 대미는 '잭스 파이브&마이클 잭슨'이 장식했다. 마이클 잭슨이 58년생이니 당시 열두살짜리 소년임이 틀림없다. 얼마나 노래와 춤을 잘 추던지. 이런 생각마저 들었다. '하나님도 저렇듯 노래를 잘하진 못할 거라고.' 특히 그의 매력은 흑인 특유의 감성이 묻어있는 음색과 정점을 찍는 듯 정확한 음을 자유롭게 불러내는 데 있었다. 신의 경지에 다다른 노래였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저물어 갔다. 나에게 그날은 평생 잊지 못할 밤으로 가슴깊이 각인됐다. 그런 분위기속에서 여군장교, 간호사들로부터 수많은 포옹과 입맞춤을 받은 그날. 나는 또 다른 생각에 잠겼다. 저 자유분방하고 멋드러진 병사들이 살고 있는 나라에 가서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먼 훗날 1992년 소원처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된다. 그날 크리스마스 이브는 그렇게 저물어갔다.
'크리스마스 이브' 광주 충장로
흔히들 '때가 때이니 만큼'이란 표현을 일상에서 자주 쓴다. 크리스마스 이브는 우리나라에도 예외없이 그야말로 떠들썩한 밤이었다. 과거나 지금이나 그날 밤이 되면, 더욱이 눈이라도 내릴 양이면 그날 밤은 밤새 북적였다.
TV나 라디오는 뉴스 시간에 거리의 표정을 읽어댄다. 서울의 명동성당 취재는 1순위고, 명동이나 종로거리 등 온통 사람들의 북새통에 온 나라가 난리라도 난 듯 했다. '시골' 광주의 충장로도 그랬었다. 전쟁터를 방불케하는 그야말로 광주시민 전체가 캐롤 송이 곳곳 상가에서 흘러나오던 충장로 가로등불 아래로 몰려나왔던 그때가 기억난다. 충장로 1가 우체국에서 3가 충장파출소까지 가는데 소요시간이 족히 30분은 걸렸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크리스마스는 미국에선 큰 축제의 날이기도 하다. 'Independence Day(독립기념일)', 'Thanks giving Day(추수감사절)', 'Christmas Day(성탄절)'을 3대 명절로 꼽을 수 있는데, 우리와 문화가 다른 미국에서는 그날밤(크리스마스 이브)만큼은 허탈을 벗어 던지고 노래와 춤, 낭만이 있는 밤을 즐기는 날이기도 하다. 기독교적으로는 아기예수 탄생을 기리는 날, 축하하는 날이기도 하다.
흑인상사 데이비드 비넬을 찾아서
세월이 흐른 뒤, 나는 미국 이민생활 중 비지니스 관계로 미국 전역을 돌아다녔다. 30년이 훌쩍 지나버린 1999년 늦가을 쯤, 월남에서 서로를 구해줬던 흑인상사 데이비드 비넬을 찾아보기로 결심했다. 그가 졸업한 인디아나 폴리스 주립대학교를 먼저 찾아갔다. 그러다 월남참전 군인회 등을 찾아다니다 주소를 알아내 그의 집을 방문하기에 이른다.
그의 집은 인디애나주 최남단 서쪽끝에 위치한 에반스빌이라는 경치좋은 강변마을이었다. 데이비드의 집에 도착한 순간, 건물 발코니 화분 앞에서 엎드려 일을 하던 그의 부인이 허리를 펴며 나를 본 순간 "Oh my god"을 외친다. 그의 예쁜 아내 미세스 데이비드가 두팔을 벌려 나를 안으며 맞이해준다. 허나 데이비드는 세상에 없었다. 앞마당을 지나 멀지않은 화이트 강변 작은언덕, 큰 비자나무 아래 잠들어 있었다.(1997년 사망)
데이비드의 아내가 나를 처음 본 순간 이미 찾아올 것을 예견이라도 한 것 같았다. 머리카락이 검고, 황색인종인 동양사람이 찾아올리 만무한데 남편과 월남에서 생사를 같이 했던 '따이한(한국 병사를 월남말로 일컫는 말)'이 지금 그녀 앞에 서 있는 이방인이란걸 직감했을터.
그리고 국소남의 오른손가락에 끼고 있던 반지를 보는 순간, 그녀는 슬픔을 억누르지 못하고 흐느껴 울었다. 그 반지는 국소남이 귀국하려 퀴논 병원을 나설 때 데이비드가 소지하고 있다가 건네준 것이었다. 인디애나주립대학 졸업반지였다. 아이러니하게도 2003년 3월10일 데이비드가 줬던 그 반지의 알맹이(보석)가 빠져 없어진 걸 친구인 박건수가 내게 알려준 순간, 미국에서 남동생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사랑하는 나의 어머니의 부고소식이었다.
아직도 기타치며 그 노랠 하세요?
시간은 흐르고 헤어져야 할 시간. 미세스 데이비드와 가볍고 그러나 뜨겁고 긴 포옹이 있은 후 차에 오르려는 순간 그녀가 내게 한 말은 "아직도 기타치며 그 노랠 하세요?"였다.
그 노래는 뮤지컬 영화 '오클라호마'의 주제가인 'Oh! what a beautiful morning'이란 노래로 가끔 병상 생활중에 데이비드에게 들려주곤 했었다. 데이비드의 고향은 오클라호마이고 대학을 인디아나에서 마치고 그곳에 정착했던 걸로 기억된다. 그 노래는 결국 데이비드의 가슴을 어루만져주는 그의 고향노래로 이해됐다. 그리고 그의 아내가 내게 그렇게 물어봐준 게 고맙게 느껴지기만 했다. 이별의 시간이 되고, 데이비드 부인의 주름진 볼에선 눈물이 흘러내리고 차에 올라선 나의 얼굴에도 눈물이 흘렀다. 뒷거울에 비치는 데이비드 부인은 한없이 손을 흔들고 있었다.
뮤지컬 영화 '오클라호마'주제가 중 주요 멜로디 '오! 아름다운 아침이여'의 노랫말과 곡을 외우기 위해 중학교 3학년 어린시절 여름방학 때 나의 누이와 함께 영화관에서 아침 조조 관람부터 저녁까지 4회 연속 관람한 기억이 있다.
이 취재는 지역신문발전기금을 지원받았습니다
통기타 가수ㆍ문화공연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