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향기>예측할 수 없는 밥 딜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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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부칼럼
<문화향기>예측할 수 없는 밥 딜런
안재영 광주교대 교수.서울시의회 정책위 부위원장
  • 입력 : 2018. 07.31(화) 21:00
  • khkim@jnilbo.com
영화 ‘청년 마르크스’의 엔딩 영상에는 밥 딜런의 ‘라이크 어 롤링 스톤(Like a Rolling Stone)’이 흘러나온다. 엔딩 영상은 밥 딜런의 곡과 함께 다양한 장면들이 나열된다. 공장의 노동자들과 노예시장, 시위 현장, 국경을 넘는 난민들, 하늘을 나는 미사일과 폭격을 맞는 땅, 체 게바라, 존 F. 케네디, 마가렛 대처, 넬슨 만델라, 주식시장과 불타는 화폐의 모습, 냉전 등이 연달아 등장한다. 냉전과 매카시즘, 민권 운동과 인종 차별 등 수많은 가치가 뒤섞이고 뒤틀렸던 시대 가운데 밥 딜런의 목소리는 체제에 저항하는 투사의 목소리였다. 사실 밥 딜런은 자기가 저항가수로 불리는 걸 별로 안 좋아했다지만 저항정신을 빼고 그를 설명하기는 어렵다. 밥 딜런은 록음악이 주류를 차지하던 당시, 포크기타를 들고 돈과 유행을 좇지 않는 음유시인으로 일컬어졌다.

미국의 반전 운동이나 흑인 인권 운동, 히피들이 국가 권력에 탄압에 반대할 때 밥 딜런의 노래가 울려 퍼졌고 여성운동엔 밥 딜런의 ‘No Woman No cry’가 울러 펴졌다. 과학에 인문학을 입혔다고 평가받는 스티브 잡스도 생전에 밥 딜런의 열성적인 팬이었다. 그는 자신이 만든 애플사에서 쫓겨났을 때 밥 딜런의 ‘the times they are a-changin’를 틀어놓고 멍하니 있었다고 한다.

아일랜드의 록 그룹 U2의 보컬이자 리더인 보노가 2005년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된 바 있지만 밥 딜런은 대중가수 최초로 2016년 10월 스웨덴 한림원에서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1901년 제정된 노벨상의 역사상 처음으로 노래 가사가 ‘시’로 인정받아 문학상을 받은 것이다. 사실 밥 딜런은 1997년 처음 노벨문학상 후보에 추천되었다. 이후에도 몇 해 동안 계속 노벨문학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한국에서는 시인으로서의 면모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의 노랫말은 미국의 고등학교와 대학의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문학적 가치를 인정받았다.

이처럼 밥 딜런의 가사는 문학과 음악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들어 낸다. 반전과 인권을 노래하는 뮤지션으로 출발해 문학의 개념까지 확장시킨 밥 딜런은 미술에서도 탄탄한 역량을 발휘하고 있다. 데뷔 이래 그림을 그려온 그의 작품은 뛰어난 구성과 색채로 대중스타 중 으뜸으로 꼽힌다. 사회저항의식이 물 흐르듯 배어 있는 작품은 미술관과 화랑들이 앞 다퉈 전시되고 있다.

밥 딜런. 가장 미국적인 천재 뮤지션. 한 때 사회 현실에 대한 노래로 저항하는 포크 가수였지만 저항가수로 불리길 거부했고 포크로 유명해졌지만 포크를 버리고 락을 선택하기도 또 버리기도 했다. 그는 한 가지의 정형화된 이미지로써 보이기를 거부했다. 그 조차도 자신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그의 인생도 그를 찾아가는 여정인지 모른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그 여정 속에 자신이 바라는 모습대로 그가 남아있기를 바랬을 뿐 그는 거기에 없을 수 있다. 예측할 수 없는 밥 딜런. 지난달 27일 서울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에서 8년 만의 내한공연으로 한 여름날 음악팬들의 기대를 충족 시켰다.

우리의 일상은 언제나 원인과 목적이 뚜렷하다. 공부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운동은 예쁜 몸을 만들고 싶어서 하지만 목적이 있는 행동은 성과는 있을지언정 그만큼 피곤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밥 딜런의 음악, 문학, 미술을 보면 좋아하고 즐기고 자유로운 세계를 갈망하는 그 자체가 목적이기에 예측 할 수도 없고 변화무쌍한 것이다.
khkim@j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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